소식
2019년 1월 29일,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의 주최로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미투’가 말한 것, 말하지 못한 것 – 성폭력피해상담과 지원과정 분석 연구포럼 ->이 열렸습니다. 이 연구포럼은 울림에서 여성가족부 연구용역으로 수행한 “성폭력피해상담 분석 및 피해자 지원방안 연구”의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습니다. 전국 4개 상담소의 총 15,000여개의 상담일지를 분석한 이 연구는 성폭력 피해상담뿐만 아니라 지원과정 역시 분석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 연구였습니다.
이번 포럼은 이미경 님의 사회로 문을 열어 김보화, 김미순 님의 발제와 이재희, 추지현, 이기범, 우옥영, 권혜은 님의 토론, 질의응답의 순서대로 진행되었고, 150여명이 참석해 포럼의 내용을 경청해주셨습니다.
사회: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발제 1: 김보화(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
김보화 책임연구원은 성폭력피해 상담일지의 의미와 분석을 주제로 발제했습니다. 이 연구는 2017년 6월 1일부터 2018년 5월 31일까지 1년 동안의 상담일지를 4개 키워드로 분석한 것입니다. 첫 번째는 ‘미투’로, 이 연구에서 ‘미투’는 신고·고소 여부와 상관없이 피해자가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말하거나 기록하는 행위, 그리고 이를 통해 다른 피해자와 연대하는 행위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미투’로 과거의 기억을 말할 용기를 얻은 피해자들의 계속되는 말하기가 유·무형의 연대를 구성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폭행·협박 없는 성폭력’으로, 대부분의 성폭력이 법에서 정의하는 것 –폭행 또는 협박이 동반되어야 함-과 다르게 구성되고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세 번째로는 장애인 성폭력이 비장애인이 피해자인 성폭력 사건과 보이는 차이점을 분석하였습니다. 이 경우 친밀성을 이용한 사례가 다수 발견되었고, 또한 (지적장애인의 경우) 전 생애에 걸쳐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경우 역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인식에서 비롯된 피해자의 낮은 자존감을 이용한 그루밍 성폭력 역시 특징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역고소입니다. 성폭력 가해자가 어떤 용도로 역고소를 이용하는지, 역고소로 인해 피해자들이 어떤 피해를 보고 있는지 등을 설명했습니다. 변호사 업계의 무분별한 홍보와 시장화가 친고죄가 폐지된 상황과 맞물려 가속화되었음을 지적했습니다.
발제 2: 김미순(천주교성폭력상담소 소장, 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대표)
김미순 소장은 전국 성폭력상담소 10년간 상담현황과 피해자 지원과정을 주제로 발제했습니다. 성폭력상담소의 운영현황을 시작으로 성폭력피해자 지원과정의 현황 및 개선점을 다루었는데, 성폭력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모두 형사·사법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는 점을 언급하며 성폭력상담소의 지원과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피해자와 접촉하는 방법이 무척 다양하다는 점, 법률·의료지원 및 일련의 과정에 어색한 피해자를 위한 피해자 맞춤형 지원까지 다양한 노력이 피해자 지원에 투입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성폭력피해자 지원과정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짚었습니다.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은 ‘성폭력사건지원 변호업계의 시장화’인데, 피해자변호 경험을 보유한 변호사가 이를 이력으로 내세워 높은 수임료를 받고 가해자를 변호하는 등 시장이 피해자 중심이 아니라 가해자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외에도 상담소 활동가의 대리외상과 같은, 현장에서 지원자가 겪는 어려움 등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전달했습니다.
토론 1: 이재희 (부산성폭력상담소 소장)
이재희 소장은 일지 분석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미투’를 통해 얼마나 많은 여성이 일상적으로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일지에는 사건기록 뿐만 아니라 피해자 지원과정 역시 자세히 기록되기 때문입니다. 현장에 있는 활동가로서 정부에서 운영하는 피해자 지원기관이 생긴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나, 이번 ‘미투’ 당시 정부 기관에서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을 짚으며 거점 성폭력상담센터 설립을 제안했습니다. 제도화 밖의 역동성을 살리기 위해 민간단체 중심의 거점센터를 만들어 성폭력 피해자 지원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이(대표적으로 지역)를 극복하기 위한 초석으로 삼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젠더폭력의 문제는 계속해서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고, 미투 이후에 실질적 변화의 흐름을 이어가야 한다는 점을 짚으며 토론을 마무리하였습니다.
토론 2: 추지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추지현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성폭력 피해’가 피해자의 생애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미투’의 이유는 어쩌면 정의하지 않은 감정을 정의하기 시작할 테니 함께 해석해 보자는 의미로 볼 수 있다며, 여성에게만 성적 문제가 무겁게 이해되는 점을 비판했습니다. 현재 법정으로 간 ‘미투’를 둘러싼 판결 중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쏟아지는 이유를 위력행사가 좁게 해석되는 현실 때문임을 지적한 추지현 교수는 비동의간음죄에 대해서도 “기타 법정형을 유지한 채 빈 곳만 채워넣으면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현행 방식을 전반적으로 검토하여 재구성해야 함을 지적하였습니다.
역고소에 관해서는 높은 무고죄 불기소율에도 불구하고 소비되는 꽃뱀 서사를 비판했습니다.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한다고 해도 무고죄나 명예훼손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돌아오는 백래시로 인해 성폭력 사건이 탈정치화 되는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수사기관 차원에서의 무고죄 통계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토론을 마무리하였습니다.
토론 3: 이기범 (경찰청 생활안전국 성폭력대책과 경정)
이기범 경정은 경찰 수사 시 발생하는 다양한 2차 피해의 문제를 수사관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으로 진단하며, 수사관의 성인지 교육을 위한 경찰청의 노력을 소개했습니다. 경찰청에서는 해외의 다양한 연구자료와 현장에서 피해자들을 마주하는 경찰관·해바라기센터 조사관 등의 의견을 종합하여 성폭력피해자 조사 모델을 개발하였다는 점을 언급하였습니다. 기존 범죄 피해자와 다르게 성폭력 피해자가 갖는 특징을 다루며 성폭력 피해자와 적절히 소통하여 진술을 받는 법을 과학적으로 기술하며,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단체의 조언을 귀담아 듣겠다고 말했습니다.
토론 4: 우옥영(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 검사)
토론 5: 권혜은 (여성가족부 권익지원과 사무관)
권혜은 사무관은 다양한 성폭력피해자 지원체계에 대한 컨설팅 예산 계획을 소개했습니다. 미투 이후 발표된 8개 대책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면서 앞선 토론에서 언급한 다양한 제안점에 대해서도 전성협과 협의 후 반영하겠다는 긍정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이후 20분동안 주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시간을 넘겨도 질문이 쏟아질 만큼 열띤 질의응답이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현장에서 기소된 사건을 처리하는 검사와 지원자들의 체감의 간극이 큰 것을 지적되며 이 간극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성폭력 사건 지원 경험이 있어서인지 지원자 입장에서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이전에 성폭력 사건을 지원하면서 해바라기센터의 사건처리 방식이 굉장히 매뉴얼적이라는 인상을 많이 받았는데, 그에 비해 상담소의 사건지원방식은 통합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피해자의 일상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통계자료는 형사·법률을 시도한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잡히지 않은 수많은 성폭력사건이 있을텐데, 그에 비해 상담소의 상담일지는 정부에 신고되지 않는 점을 충분히 커버해 줄 수 있는 좋은 자료입니다. 그 점에서 상담일지 분석이 경찰청 통계조사에서 드러나지 않는 사회적인 면을 보여준다는 추지현 교수님의 말씀에 동감하며, 이와 같은 연구가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후기는 본 상담소 인턴 소망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