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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반성폭력 이슈리포트 13호(2019년) 발간 후기
  • 2019-12-27
  • 3211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의 조사에 따르면 2019년 1월부터 3월까지 접수된 강간 사례 1,030건 중에, 직접적인 폭행·협박이 있었던 사례는 28.6%(295건)에 불과하였고, 직접적인 폭행·협박이 없었던 사례는 71.4%(735건)이었습니다. 이렇게 ‘폭행·협박’의 증명을 요구하는 강간죄의 법적 판단 기준은 대다수의 성폭력이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며, 가해자들은 폭행이나 협박이 없이도 피해자의 취약성을 이용하여 강간한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은 『2019년 반성폭력 이슈리포트 13호』를 통해 현재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재구성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반성폭력 활동가·법전문가들의 주장과 논의들을 제시하고, 상담일지 분석과 연구동향분석을 통해 폭행·협박이 없었던 성폭력의 상담 현황과 이론을 공유하는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성폭력 판단기준의 변화는 수많은 피해자들이 외쳐온 미투운동에 대한 응답의 시작이자, 우리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반성폭력 이슈리포트의 구성을 간략히 살펴보면 먼저 <기획특집>에서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님이 “‘강간죄’ 구성요건 개정운동의 의미와 쟁점”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30여년 간 ‘강간죄’ 구성요건, 즉 최협의설의 변화를 위해 활동한 여성운동의 역사를 살펴보고 2019년 3월 21일 전국 209개 여성인권단체로 결성된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의 활동을 소개해주셨습니다. 또한 이에 대한 국회와 정부의 대응, 발의된 법안들과 명칭 등에 대한 몇 가지 쟁점들을 짚어주시면서 향후 운동의 과제를 정리해주셨습니다.


<쟁점과 입장>에서는 총 3개의 글을 실었습니다. 첫번째로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에서 활약해주신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이호중 교수님은 “강간죄 개정의 필요성 : 최협의설의 극복,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글을 작성해 주셨습니다. 피해자의 저항 여부에 초점을 맞추는 최협의설은 ‘성’과 ‘폭력’을 분리적으로 사고하는 남성중심적 해석임을 지적하면서 형법담론에서 성적자기결정권은 성적실천에 관계하는 사람들 간의 민주적인 의사소통 차원에서 정의되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간음과 추행의 개념을 바꾸고, ‘동의 없는 성적 행동’을 기본구성요건으로 하면서 폭행·협박·위력이 있을 경우 가중구성요건으로 규정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함을 주장하셨습니다.

다음으로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의 박아름 활동가는 강간죄와 준강간죄를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성폭력 구성요건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글을 써 주셨습니다. 현재 준강간죄의 구성요건은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하는 행위’인데,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진술하면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로 인정받기 힘들고, 기억이 불분명해서 피해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피해를 의심받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해집니다. 이에 술과 약물에 의한 피해자의 경험이 분열되는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강간죄와 준강간죄를 통합하고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개정해야 함을 강조해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2018년 3월부터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를 지원해 온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부소장이 안희정 사건의 재판과정을 중심으로 미투운동 이후 담론의 전략들과 과제를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가해자를 무죄판결한 1심 판결에서 위력 성폭력의 개념이 성인 여성에 대한 주체성과 성적자기결정권의 행사 여부의 문제로 판단되었던 과정과 피해자의 일관되고 구체적 진술 과정, 성폭력 통념을 활용한 가해자 측의 활동을 촘촘히 살펴봅니다. 이를 통해 법관들의 인식과 정치권의 변화가 필요하며 젠더의 권력화된 모습을 직시하여야 사회 개혁이 가능함을 주장합니다.


<상담일지분석>은 2018년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폭행·협박 없는 강간 상담사례 170건을 중심으로 부설연구소 울림의 장주리 연구원이 진행하였습니다. 먼저 해당 상담사례에 대한 상담 건수 및 횟수, 피해유형, 피해자·가해자의 성별, 피해자·가해자의 관계, 관계에 따른 피해 유형을 양적으로 살펴보았고, 폭행·협박 없는 강간의 특징과 조건의 질적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대표적으로 피해자가 술과 약물에 취한 상태를 이용하는 준강간, 위력을 이용한 성폭력과 미투 성폭력, 신체적인 제압에 의한 강간, 합의를 구하지 않거나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강간의 사례들을 분석하였습니다. 또한 강간 이후, 강간 행위를 은폐·조작하는 가해자의 전략과 피해 이후 말하기가 어려운 조건들을 살펴보면서 강간죄 구성요건 개정과 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주장하였습니다.


<연구동향분석>은 2017년부터 2019년 8월까지 성폭력 관련법 개정 및 성적 동의에 관한 국내외 연구 총 30여편을 바탕으로 부설연구소 울림의 김보화 책임연구원이 진행하였습니다. 국내의 연구들은 형법 제297조 강간죄 최협의설의 문제점과 제303조 업무상위력에의한간음죄에 대한 해석론적, 비교법적, 법철학적 분석들을 통해 법·제도적 개선방안을 제언하는 연구 혹은 특정한 공동체 내의 특징을 주되게 보거나, 철학적 관점을 통해 미투의 서사와 윤리의 문제들을 분석하는 연구들로서, 미투운동을 통해 드러난 법과 현실의 괴리와 더불어 그동안 말하지 못한 성폭력이 왜 이토록 많았는지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해외 연구들은 법·정책적으로 ‘적극적 동의’ 기준의 도입을 주장하거나, 혹은 도입되었어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강간신화’에 대한 통념을 문제제기하는데, 여기에서 ‘합의 또는 동의(consent)’가 구체적인 상황들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으며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하는지를 살펴보는 연구들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논의들은 현재 강간죄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혹은 적어도 아직은 개정이 되지 않았지만 여성단체들이 주장하는 ‘적극적 동의’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하는 과정에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고> 란에는 총 3개의 글이 실렸습니다. 먼저 전남여성인권단체연합 회장이자 담양인권지원상담소의 백영남 소장님께서 2018년 당시 함평군수 안병호 성폭력 사건에 대한 함평·장성 지역의 미투운동을 다뤄주셨습니다. 지역의 유지이자 권력자였던 군수에 대항하는 지역의 연대활동과 진행과정에서의 어려움 등을 통해 그간 수도권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미투운동에 대한 경험을 지역적으로 넓힐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유호정 활동가는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활동에서 드러난 성폭력 사건의 쟁점을 짚어주셨습니다. 1심에서 가해자 유죄가 선고된 사건이 2심에서 무죄로 뒤집히게 되었던 배경과 ‘해군 부하 여군’이자 ‘성소수자’였던 피해자의 위치를 삭제한 판결을 살펴보면서 대법원의 올바른 판결을 촉구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박아름 활동가는 그간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활동을 바탕으로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나 여전한 한계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처벌과 허용’ 프레임과 낙태 허용사유 규제, 기한 규제는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며 여성의 성과 재생산권, 행복추구권, 평등권 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임신중지를 전면 비범죄화해야 함을 주장합니다. ‘배우자 또는 법적 보호자’ 등 제3자의 동의를 요구하는 법·제도 및 의료 관행을 개선하여 임신한 당사자의 결정만으로 임신중지가 가능하도록 하여야 하며 공교육에서 포괄적 성교육을 시행하고, 임신중지를 한 당사자에게 사후 피임 교육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반성폭력 이슈리포트 13호는 이처럼 최근의 미투운동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법적 쟁점들과 이에 대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활동들을 바탕으로 전사회적 변화를 촉구하기 위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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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부설연구소 울림의 파이(김보화)가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