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지원
2023년 4회 또우리폴짝기금 프로젝트가 진행 중입니다.
자립의 과정을 겪으며 떠오르는 경험과 변화하는 마음을 담은 또우리들의 목소리를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올해는 15명의 또우리들이 폴짝기금 프로젝트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 5번째 인터뷰는 정은입니다.
유쾌한 정은은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어요.
자신의 분야에서 나와 같은 피해를 겪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정은의 모습이 빛나 보였습니다.
폴짝기금이 작은 지지가 되길 바라요.
👩💻정은: 안녕하세요? 와, 계획서를 보니 알겠네요. 제가 열림터에 238일 동안 있었어요. 5월에 들어가서 살짝 추워질 때 나온 것 같은데요. 와, 너무 옛날이에요.
🧙수수: 진짜 오래됐네요. 2020년 때 처음 만났으니까, 저희 안 지 3년 됐어요. 3년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정은: 일단은 열림터를 나가자마자 대학교 입학 원서를 내고 합격했어요. 지금까지 주욱 학교 다니고 있어요. 계속 알바를 하다가 최근에 그만뒀어요. 지금은 알바 대신 자격증 특강 듣고, 팀플하구요. 집에 와서 곯아떨어져서 자구요. 또 새로운 알바 구하려고 해요.
🧙수수: 요즘 아무것도 안 하고 쉰다더니, 엄청 빡빡한 삶을 살고 계신 것 같은데요?
👩💻정은: 그렇지 않아요. 월요일이 공강이라 오히려 너무 오래 쉬는 느낌이에요. 그렇지만 방학이 되면 아마 인턴으로 현장실습을 할 것 같아요. 저는 공학과라서, 개발 쪽으로 취업하려고 하거든요. 개발 분야는 약간 인력난이 있어서 현장실습을 권유하는 분위기예요. 일도 배우고 공부도 하는 게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저도 신청했어요. 근데 조금 두렵기도 해요. 실제로 회사에 들어가서 배우는 거잖아요. 직장인 체험이라는 점이 조금 두려워요. 그리고 직업 특성상 여자가 적잖아요. 약간 남자들만 있으면 말도 툭툭 뱉을 것 같아서 좀 걱정이에요.
🧙수수: 그럴 수도 있겠어요. 그래서 여성 개발자 모임 같은 그룹도 생겼다고 들었어요. 아무튼 정은은 지금 어떤 집에 누구와 살고 계신가요?
👩💻정은: 얼마 전에 이사를 했어요. 월세집에서 살다가 전셋집으로 옮겼죠. 원룸이구요. 학교랑 번화가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 편해요. 너무 만족스러워요. 엄마가 전세 보증금을 조금 보태주셨어요. 제가 좀 따졌거든요. 오빠들은 대학 등록금도 내주고, 여행도 보내주고, 전셋집도 해주고, 아직도 월세 내주기도 하는데 나한테는 해주는 게 없어서요. ‘왜 나한테는 안 해주냐, 속상하다’고 말했더니 엄마가 적금 깨서 보태주셨어요.
🧙수수: 어우, 잘했어요. 저도 정은이 대학 등록금 대출한다고 했을 때 괜히 제가 억울했던 기억이 나요. 정은 오빠들은 집에서 도와주셨는데, 정은만 혼자 알아서 등록금 해결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정은: 맞아요. 다 학자금 대출하고 있어요. 월세 살던 때는 제가 다 냈구요. 그래도 지금 집은 기분 좋고 마음에 들어요. 전보다 훨씬 넓고, 엘리베이터도 있어요.
🧙수수: 좋네요.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어요?
👩💻정은: 사실 저는 룸메랑 같이 살고 싶어요. 고향 친구 몇 명이 서울로 올거라는데 그러면 같이 살고 싶어요. 제가 외로움을 많이 타서요. 열림터 살 때는 고개 딱 들면 친구들이 있는 느낌이었잖아요. 퇴소해서 나왔더니 늘 외로워요.
🧙수수: 룸메 구하기 잘 되면 좋겠네요. 좀 더 넓은 집도 구하구요. 원룸에서 여러 명이 사는 건 좀 힘들기도 하잖아요.
👩💻정은: 맞아요. 잘 맞는 것도 중요하구요. 위생 관념이나, 친구 데려오는 부분에 있어서 잘 안 맞는 친구랑 같이 산 적이 있는데 되게 힘들었어요. 서로 배려하면서 살아야죠.
🧙수수: 맞아요. 같이 살 때는 고려할 점이 많죠. 정은은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정은: IT 계열 회사에 가서 개발 일을 하고 싶어요. 아직 학생이라 잘 모르겠지만, 게임 개발 쪽 생각하고 있어요. 게임 개발 안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다양한데, 세부 분야는 현장실습 다녀와서 결정할 것 같아요. 보안 쪽으로 가고 싶기도해요. 제가 겪은 사건이 사이버성폭력이고, 제 사진이 유포됐었잖아요. 그런 거 추적하고 지우는 게 보안 일이란 말이죠. 보안 일을 하게 된다면, 저와 같은 피해를 경험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도 있으니까. 개발 분야 다른 일을 한 10년 정도 하다가 그 다음에 보안으로 넘어가는 그림을 그려보고 있어요. 너무 어려운 일 같아서 실제로는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요.
🧙수수: 아, 그렇구나. 정은이 언젠가 나이 너무 많아졌다고 한탄하긴 했지만, 사실 아직 20대고, 어리잖아요. 할 수 있는 일도 많을 거고 기회도 무궁무진할 거 같아요.
👩💻정은: 맞아요. 이제 시작이죠. 창창하고, 고생 시작이기도 하죠.
🧙수수: 하하, 천천히 뭐든 하다 보면 정은은 결국 멋있는 데 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다음 질문입니다. 열림터의 폴짝기금은 이번에 처음 신청하게 된 거잖아요. 이 프로젝트는 언제 알게 되셨죠?
👩💻정은: 또우리 카톡방에 공지가 올라왔던 걸 보고 알았어요. 작년에는 좀 바빠서 신청을 못 했어요. 같이 열림터 살았던 또우리들은 신청했다고 하더라고요. ‘너 왜 안 했어?’ 물어보길래, ‘어우, 내년에 하지 뭐’ 했죠.
🧙수수: 이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드셨습니까?
👩💻정은: 되면 이득이다. 꼭 하고 싶다. 나 됐으면 좋겠다. 50만 원이면 흑당 밀크티를 몇 개 먹을 수 있지? 50개? 100개? 요즘 진짜 흑당 밀크티에 빠져서요. 맨날맨날 먹고 싶어요.
🧙수수: 밀크티 맛집 아시는 거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그런데 정은이 폴짝기금 계획서에 전부 밀크티를 먹겠다고 쓰진 않으셨네요? 50만 원을 전부 밀크티에 때려박지는 않았어요. 이 계획을 좀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정은: 맞아요. 일단 공부를 할 계획이에요. 코딩 수업이 한 20만 원 정도 하더라고요. 그리고 남는 금액은 화장품이나 옷을 사고, 간식과 커피를 먹고 싶을 때마다 먹는 계획입니다. 그러니까, 커피 밥에 한 20만 원, 저를 꾸미는 데에 한 10만 원, 코딩 수업 이수에 한 20만 원이죠. 조금 바뀔 수도 있을 것 같구요.
🧙수수: 바꿔도 돼요. 연락 한 번 주시구요! 그럼 다음 질문. 열림터를 퇴소한 다음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취를 하셨잖아요. 나의 삶을 내가 책임지는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요?
👩💻정은: 아아~ 감옥에서 나온 느낌이었어요. 제가 열림터 살 때는 코로나 기간이라서요. 외출 제한이 있었죠. 통금 시간도 있었고요. 어디 갈 때마다 항상 말씀드리고 가고. 아 그렇지, 전 금전적으로 좀 문제가 많았던 것 같아요. 여기 이 자리에서 신용카드도 잘랐죠. 약간 그런 게 좀 힘들고 구속된 느낌이었습니다.
🧙수수: 정말 그랬을 것 같아요. 저희도 미안해요. 특히 코로나 때문에 너무 힘들었죠? 지금은 그런 지침이 있지는 않아요.
👩💻정은: 와 그래요? 다행이에요. 벌점도 있고, 답답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괜히 막 반항하면서 일부러 지각하기도 했잖아요. 저는 원래 아주 늦게까지 술을 마시거든요. 그런데 밤에 들어와야 하니까. 사실 그게 그렇게 힘들었던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때는 또 힘들더라고요. 자취하고 나니까 그런 제약이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자유를 만끽했죠. 밤늦게까지 핸드폰 보고, 밤에 산책하고, 집에서 나갈 때 그냥 나가고. 와, 이상하더라고요. 문 열고 나가는데 누구한테 말하고 가야 될 것 같은데, 안 그래도 되는거죠. 되게 자유로웠어요.
🧙수수: 표정만 봐도 좋아 보여요. 저희도 코로나 때 보건부에서 아무도 외출시키지 말라는 지침을 내려서 정말 황당했어요. 이게 말이 되는 지침인가? 저희도 지침을 이렇게 구부려서 유연하게 한다고 했지만, 사실 그것도 너무 부족했고 정말 답답했을 것 같아요.
👩💻정은: 사실 그때 견딜 만했어요. 시설에 들어왔으니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단체로 수련회 온 느낌이기도 했고요. 안에서 얘기하면서 노는 것도 재밌었어요.
🧙수수: 같이 지낼 사람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군요. 그러면 내 삶을 내가 책임지면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정은: 아, 너무 자유로우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힘들었어요. 다시 구속받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만큼요. 너무 내가 다 책임져야 하는거죠. 알아서 다 해야 되는 거. 갑자기 너무 자유로워지고, 한계가 없으니까 좋으면서도 좀 두려웠던 것 같아요. 돈 쓰는 것에 대한 제한도 사라지니까 펑펑 쓰는 것도 있었고요. 통금도 없으니까, 맨날 술 마시러 나가고 스스로 자제가 어렵더라구요.
🧙수수: 그래도 그 때 학교 성적도 되게 잘 받았다고 자랑도 했었고, 알바도 엄청 열심히 하고 그랬잖아요. 저는 정은이 자제를 못 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정은: 10월 즈음에 퇴소하고 3월에 입학했는데, 그 사이에 좀 망나니처럼 살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열림터에서는 상의할 사람이 있었잖아요. 수수쌤이나 사자쌤이나, 주위에 저와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뭐든 궁금한 거 생기거나 문제가 생기면 바로 여기 달려와서 ‘선생님, 사실 제가 이런 짓을 저질렀어요.’ 이렇게 하면 됐죠. 그러면 쌤들이 다 책임져주고 그랬잖아요. 근데 이제는 내가 알아서 내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 이게 좀 쓸쓸했어요. 시설에 있을 때는 사회인이 아니라 보호받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있었는데, 퇴소 후에는 점점 사회로, 원래 일상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자리로 돌아간다고 할까요?
🧙수수: 제자리로 돌아가도 우리가 계속 연락할 수 있다는 게 저는 좋은 것 같아요. 퇴소 후에 열림터도 또우리도 좀 더 관계가 편해지는 느낌도 있는 것 같아요.
👩💻정은: 맞아요. 열림터는 당장 정말 힘든 상태일 때 들어왔었으니까요. 퇴소하면 과거의 일이 된다고 할까요.
🧙수수: 다음이 마지막 질문입니다. 시설을 퇴소한 피해자한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 필요한 거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사회가 갖추었으면 하는 시스템일 수도 있고요.
👩💻정은: 퇴소하고 생필품 박스를 보내주셨거든요. 그런 게 자주 왔으면 좋겠어요. 생리대랑 먹을 것도 들어있었거든요. 추석에는 스팸이랑 식용유세트를 받았던 거 같아요. 파스타 면이랑 파스타 소스도 몇 개 있었구요. 자취하는 사람들한테 스팸 비싸다구요. 그리고 제가 퇴소한 후에도 중간중간 제 안부를 물으면서 사건에 대한 진행 상황을 알려주셨어요. 유포된 제 사진과 정보를 계속 삭제해주시긴 하지만, 그래도 종종 올라오더라구요. 요즘은 ‘그냥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데이터라고 생각하자’ 하는 마음이에요. 취업 생각하느라 정신 없고 신경 쓸 것도 많거든요.
🧙수수: 그래도 마음이 힘들면 연락하셔요. 그렇지만 그렇게 별로 신경 안 쓰게 되었다는 것이 일상으로 복귀하고 회복한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정은은 엄청 잘하고 있는 거죠. 거기다 나중에 보안 쪽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으니, 앞으로의 지향도 있는거구요. 너무 멋집니다.
👩💻정은: 물론 아주 먼 미래겠지만요. 어우, 저 진짜 멋있는 사람 되면 어떡하죠?!
🧙수수: ㅎㅎㅎ 마지막으로 혹시 다른 또우리들이나 생활인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열림터 선배로서, 아니면 얼굴은 모르지만 친구로서?
👩💻정은: 지금을 즐기라고 하고 싶어요. 나오면 열림터 진짜 계속 생각난다고. 포근한 분위기가요. 열림터 안에서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잘 수 있을 때, 그때 즐기라고 하고 싶어요. 저 지금도 가끔 돌아가고 싶거든요. 감옥에서 탈출한 기분도 들지만, 그래도 그 포근함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진짜 분명히 많이 그리워지니까, 행복하게 사시라고 하고 싶어요. 마음 편하게.
🧙수수: 종종 놀러 오세요. 다시 신생아처럼 열림터가 밥 사주고 먹여주고 할 수 있으니까. 배고플 때는 와요.
열림터 또우리 지원사업은 모두 열림터 후원금으로 이루어집니다.
성폭력피해생존자들의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여는 터,
열림터 생존자의 일상회복과 자립의 여정에 함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