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지원
2023년 4회 또우리폴짝기금 프로젝트가 진행 중입니다. 자립의 과정을 겪으며 떠오르는 경험과 변화하는 마음을 담은 또우리들의 목소리를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올해는 15명의 또우리들이 폴짝기금 프로젝트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 여섯번째 인터뷰는 구구입니다. 안정적이지만 성취감은 적은 낡은 직장인, 퇴근 후 자신만의 삶을 멋지게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는 구구! 몸과 마음을 열심히 챙기는 구구의 인터뷰를 공유합니다.
👩🌾은희: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
🕊️구구: 안부를 물으시는 것이죠? 일단 저는 이제 4년 차 직장인입니다. 매일 9시에서 6시까지 똑같이 일하고 있고요. 주말에 쉬고요. 쉬는 날은 보통 계속 해오던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다시 독서가 재밌어요.
👩🌾은희: 책 읽기를 다시 시작했구나. 너가 좋아하던 것이었는데. 또 얼마 전까진 운동에 열심이어서 하루에 두 타임 뛰고 했었는데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네~~
🕊️구구: 그렇게 열심히 하다가 지금은 무릎을 약간 다쳤어요. 헬스는 잠시 쉬고 필라테스를 조금씩 하고 있어요. 그리고 다른 큰 관심사는, 년째 살던 집에서 이사하는 거예요.
👩🌾은희: 이사를 가고 싶은 거니? 가야 되는 거니?
🕊️구구: 일단 계약이 끝나기도 하구요. 아시잖아요. 요새 전셋값은 내려가고 금리는 너무 올라서 저는 더 저렴한 집으로 가야 해요.
👩🌾은희: 정들었던 집이라서 좀 그렇겠다. 또 요즘 전세 조심해야 되겠더라.
🕊️구구: 그렇긴 하죠. 그런데 지금 동네에서도 오래 지냈으니까 막연하게 딴 데서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은희: 그럴 수 있겠다. 연결된 질문이긴 한데 앞으로 어떤 집에서 누구와 살고 싶은지?
🕊️구구: 지금은 완전 혼자 지내고 있는데 일단은 강 너머로 오고 싶어요. 아예 중앙 쪽이나 00구 쪽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실 회사가 그냥 서울 중간쯤에 있거든요. 그래서 어딜 가도 출퇴근은 편한 편이에요. 내가 어디서 지낼 수 있지, 이렇게 생각해봤을 때 불편한 지역은 없는 거죠. 지금 집은 그냥 집값이 저렴해서 지냈던 거지 제가 좋아하는 환경이거나 이 동네가 궁금해서 지냈던 건 아니더라고요. 이 동네에서 조금 더 지내보자 이런 느낌은 없어요. 새로운 곳에 가고 싶어요.
👩🌾은희: 집 구할 때는 어떤 집을 구하고 싶은지 생각해봤어?
🕊️구구: 저는 일단 짐이 너무 많아졌어요. 최소 투룸은 구해야 하는데 아직 제 예산으로 00구에서는 마음에 들면 반지하더라고요. 그치만 반지하는 제가 벌레를 무서워하고 척박하고, 적당한 집을 잘 구해봐야죠.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하고 너무 멀지 않으면 되어서 크게 걱정할 것은 없을 것 같아요. 저는 고향에 대한, 한 곳에 정착해서 사는 거에 대한 바람이나 지향점은 없는 것 같아요. 다른 또우리들도 그럴 수는 있겠지만, 집이 아닌 열림터에서 기간을 꽉꽉 채워 지낸 사람으로서 마냥 집이나 고향이 반갑고 좋은 대상도 아니었고요. 생각해보면 저희 부모님은 계속 고향에서만 지내시거든요. 엄마는 이사를 가도 근처로만 가고, 지역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냥 거기서 태어났고 부모님이나 친구들도 가까이 있고 편하고 익숙하고 좋다고 해요. 근데 전 그런 감성은 어디에도 없어요. 이게 정말 자유롭다는 생각도 들고요. 조금 쓸쓸하고 외롭다는 느낌도 들어요.
👩🌾은희: 옛날에 살았던 데가 좋고, 그립고, 추억이 있고 그렇지 않다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네. 그럼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고 싶어?
🕊️구구: 이건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지금 직업으로서의 일은 크게 의미가 없거든요. 일 자체가 싫은 건 아니지만, 계속 같은 일을 하니까 그냥 정말 돈 받기 위해 8시간 버틴다는 생각이에요. 그렇다고 이 시간이 없다면 제가 혼자 잘 지낼 수도 없으니까요.
👩🌾은희: 그러면 너의 경력으로 다른 거 뭐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구구: 다른 기업으로 뭔가 이직하는 거. 이제 할 수도 있겠죠.
👩🌾은희: 그러니까 여기는 안정적이고 보장은 잘 되는데 재미와 의미를 찾지 못한다는 거지. 지난번에도 돈은 여기서 벌고 취미생활은 밖에서 하고 그런 얘기를 했지만, 사실은 가볍게 얘기하고 넘어갈 만한 일은 또 아닌 것 같다.
🕊️구구: 맞아요.
👩🌾은희: 나는 뭐 하면 좀 잘할 것 같다. 이런 생각 안 해봤어?
🕊️구구: 뭐 하고 싶다, 이런 게 없어요. 특히나 직업적으로는 뭐가 없는 것 같아요. 피해 이후에 제 최대 관심사가 멀어져서 그런가. 저는 그냥 여행 많이 다닐 것 같아요.
👩🌾은희: 여행 갔다 온 지 얼마나 됐어?
🕊️구구: 부산도 갔다 왔었고, 엄마랑 이모, 사촌 동생 저 이렇게 네 명이 패키지로 다녀오기도 했어요. 여행 느낌은 덜 났지만 편하게 따라다녔어요.
👩🌾은희: 여행하면서 살면 좋지. 그러면 화제를 돌려서 요번에 폴짝기금 신청할 수 있다라는 걸 알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구구: 아주 기뻤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첫 번째는 조금 이런 제도도 있구나 하고 신기한 깜짝 선물 같았어요. 그때는 한 번에서 끝날 줄 알았는데 두 번째까지 된다고 바뀐 거잖아요. 좀 더 든든한 느낌.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열림터가 지속적으로 같이 있다는 느낌
👩🌾은희: 폴짝기금 어디에 사용한다고 했지?
🕊️구구: 반신욕기 산다고 신청했어요. 물 안 채우고 건식으로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거.
👩🌾은희: 나는 개인적으로 건식에 대한 의심이 좀 있긴 해 사우나나 찜질방 이런 것도 약간 습기가 있는 데가 좋거든, 그게 왠지 피부에 자극이 덜할 것 같은 느낌. 근데 건식이 사용하기가 편할 것 같아 사기전에 체험해 보면 좋겠다.
🕊️구구: 맞아요. 편할 거 같긴 한데, 저도 써본 적은 없어서 체험 한번 찾아보고 해야겠어요.
👩🌾은희: 나중에 후기도 궁금하네. 반신욕기 생각은 언제부터 했어?
🕊️구구: 좀 된 것 같긴 해요. 저는 건강과 다이어트에 관심을 계속 갖고 있는 편이잖아요. 그때 빠지지 않는, 심심찮게 얘기가 나오는 게 반신욕이거든요. 특히 순환에 대해 얘기를 할 때 빠지지 않는 게 반신욕인데 진짜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잖아요. 욕조가 놓인 큰 욕실을 관리할 여유가 있거나, 집안에 작은 찜질방을 구비해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을 가졌거나. 그런 사람들 보면 되게 부럽더라고요.
👩🌾은희: 그랬구나! 이번에 반신욕기 장만해서 건강을 위해서 잘 사용하면 좋겠다. 이제 또 다른 질문을 해볼게. 퇴소하고 자립하면서 좋았던 점과 힘들었던 점 얘기해보자.
🕊️구구: 좋았던 점은? 좋았던 거는 마음이 편한 거죠. 제가 여기 지낼 때만 해도 통금시간도 엄격했고, 식사 시간 이런 것도 좀 지켜야 하는 규칙도 있었고요. 같이 지내는 생활인들이 있으니까 나이 차이가 좀 있는 생활인, 뭔가 좀 안 맞는 생활인, 거기서 오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혼자 지내면 당연히 편하게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으니까 그게 좋죠. 힘든 거는, 외로워요. 사람이면 다 외로운 거고, 알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외로운 것이 제일 커요. 집에 혼자 있을 때 제가 뭔가 틀지 않으면 적막하잖아요. 그런 게 가끔 너무 그냥 고독하게 느껴져요. 어쩔 수 없는 근원적인 외로움이요.
👩🌾은희: 주변에 친구들은 많아?
🕊️구구: 집 근처에는 딱히 없지만.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 있긴 하죠. 많진 않아요. 아시잖아요. 저 고등학교 때 친구들하고 사건 진행하면서 엄청 싸워서 진짜 몇 명 없는 거. 속상해요. 그 이후로 계속 떠도는 느낌이기도 했고요. 지금은 직장에서도 나름 가깝게 지내는 언니들도 있으니 괜찮아요.
👩🌾은희: 그러면 시설에서 퇴소한 성폭력 피해자들이 제일 필요한 게 무엇일 것 같아? 그리고 어떤 점이 개선됐으면 좋을지? 열림터에서 지원해 줄 수 있는 그런 부분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사회적으로 정말 이런 제도는 있어야 한다. 퇴소한 피해자들한테 이런 게 있으면 정말 많이 도움이 되겠다 하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구구: 일단 저는 주거 지원이요. 주거 지원의 경우에는 사실 친족의 경우에만 해당 되잖아요. 친족의 경우도 전부 지원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원이 더 확대되면 좋을 것 같아요.
👩🌾은희: 너는 친족피해가 아니라서 또 거기에서 소외되는 그런 느낌도 있겠네.
🕊️구구: 맞아요. 최근에도 무슨 춤추는 활동(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공폐단단의 생존 자랑 댄스) 있잖아요. 대상자가 딱 친족 성폭력 피해자라고 하더라고요.
👩🌾은희: 그것은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공소시효 폐지를 위해서 운동하면서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프로젝트 따서 하는 거라서 그런 것 같아. 또 그런 아쉬움이 있겠구나.
🕊️구구: 퇴소 후에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을 많이 알려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열림터에서 지내면서는 의식주 다 해결이 되기도 하고 의료지원, 상담도 추가로 받았잖아요. 그런 지원들이 조금 더 지속돼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은희: 근데 퇴소하면 무조건 지원이 끝나는 것은 아니야. 피해자 1인당 의료지원이 기본적으로 500만 원으로 정해져 있잖아. 시설에 있으면서 500만 원 이상을 지원받으면 더 못 받는 것이고 남아있다면 추가로 상담소나 지자체를 통해서도 지원받을 수 있어. 특별히 열림터에서는 또우리 대상 의료지원도 시작했잖아 처음엔 신청자가 없더니 차츰 늘어나서 올해는 모두 소진이 되었어. 너도 지원받고 싶다면 내년에 신청해 보면 좋겠다.
🕊️구구: 그러겠습니다.
👩🌾은희: 인터뷰는 여기까지야 다양한 얘기해줘서 고맙다. 오늘 얘기 중에서 네가 포인트 되는 단어나 주제로 꼽으면 뭐로 하고 싶어?
🕊️구구: 주제요? “혼자만의 방”
👩🌾은희: “혼자만의 방” 좋은데.
🕊️구구: 저는 처음에 기금을 어떻게 쓸까 되게 고민 많이 했었거든요.
👩🌾은희: 어떤 고민이 있었을까?
🕊️구구: 처음엔 엄마랑 관계 회복 중이니까 엄마랑 같이 여행을 할까, 혼자 호캉스를 즐겨볼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계속 고민하다 보니 일회성으로 끝나는 거나 같이 쓰는 것보다 혼자 오롯이 쓰고 싶어졌어요. 그 중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물성으로 남아서 두고 볼 수 있는 것. 나 혼자 외로울 때, 그럴 때 주변에 선물이나 편지를 보고 있으면 힘이 되는 느낌 있잖아요. 폴짝 기금으로 그런 물건을 내 방에 두고 싶었어요. 두고 보는 걸로도, 아~ 내가 이런 선물을 받았지, 든든할 것 같은데 반신욕기는 안에 들어가면 따뜻해지기까지 해요. 추운 겨울에 제가 특히 외로움을 잘 타는데, 멋진 선물이 될 것 같아요.
👩🌾은희: 그렇게 말해주니 뿌듯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네. 어쨌든 구구 옆에서 든든히 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열림터 또우리 지원사업은 모두 열림터 후원금으로 이루어집니다.
성폭력피해생존자들의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여는 터,
열림터 생존자의 일상회복과 자립의 여정에 함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