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연구
"십대 성매매피해자 지원 '시설중심' 벗어나야" -새날을 여는 청소녀쉼터 김선옥 관장 인터뷰(하)
[이 글은 여성주의저널 '일다'에 실린 글입니다.
성폭력·가정폭력 등 여성폭력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쉼터를 소개하고 각 쉼터들이 직면한 고민을 활동가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조망해보는 기사를 월 1회 연재합니다. 탈성매매 십대여성들을 위한 새날을 여는 청소녀쉼터(새날) 김선옥 관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최근에는 윙에서 하는 ‘조잘조잘 DIY 분식점’이나 '신길동 그가게'로 많이 가요. 아, 백화점 주차요원 하는 친구도 한 명 있어요.
늘푸른자립학교에 인턴쉽 프로그램이 있어요. 직업 탐색도 하고 자기 사명도 써보고 직접 직장에 가서 몇 달 동안 일해 보는 것이에요. 어떤 곳에 가고 싶은지 물어보고 적성검사도 해서 가고 싶은 곳을 섭외해서 보내요. 제과제빵, 미용, 어린이집, 공부방 등이 있고 인턴쉽 하다가 성실하면 그 곳에서 바로 채용하기도 해요. 아, 옷 가게도 가는데 애들 특징이 장사를 잘해요. 했던 것이 관계라서 그런지(웃음) 장사하는 데 보내면 성공을 해요.
2005년에 늘푸른여성발전센타 지원 사업으로 ‘한 수 가르쳐 주시지요’라는 인턴쉽 과정을 했었어요. 탈성매매해서 자립한 선배에게 한 수 배우고, 다니고 싶은 직장에서 한수 배우고. 7명을 인턴쉽했는데 물론 실패한 경우도 있어요. 돈도 훔친 경우도 있고 싸우고 나온 경우도 있고요. 매일 매일 일지를 쓰게 해요. 내가 어떤 이유로 직장에서 실패하는지를 적어서 스스로 분석하게 합니다.
-경제관념이 너무 중요한데 교육하기가 쉽지 않죠. 열림터 한 친구가 하는 얘기가 가출해서 성매매 한 번으로 15만원을 벌었더니 이렇게 모아서 집 사면 되겠구나 싶더래요. 근데 하루 세 끼 사먹고 옷 사고 잠잘 데 구하니까 15만원이 하루 만에 없어지더래요. 성매매 하면서 많은 돈을 만져 본 아이들이라서 용돈이나 알바로 번 돈에 만족하지 못할 것 같은데요. 경제교육을 어떻게 하시나요?
집단 교육은 잘 안 하고, 알바나 직장 자리를 구하면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계획서를 제출하게 해요. 얼마를 벌어서 어디 어디에 얼마를 지출하고 저금은 얼마를 할 것인지. 만약 못 지키면 못 지킨 이유가 무엇인지, 예를 들면 심리적으로 허해서 돈을 쓰는 것인지 등등 매달 이야기를 나눠요.
-늘푸른자립학교는 새날 쉼터 친구들만 다닐 수 있는 대안학교인가요?
아닙니다. 탈학교 10대 여성이면 모두 돼요. 열림터 친구들도 올 수 있습니다. 6개월이 한 학기이고 수료식을 해요. 친구들이 오래 하는 걸 잘 못하니까 짧게 수료를 하고 연장하는 방식이에요. 오전에는 검정고시반, 고졸반 등 수준별로 기초 학습을 하고 오후에는 악기수업, 한국화, 여성학 수업, 특별활동 등을 해요. 정원은 25명인데 보통 한 학기에 40명 정도 오고, 수료는 지난 학기에 18명이 했어요. 합정동에 있고 다음 학기는 9월 5일에 시작합니다.
2009년부터 대안학교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때 서울시에서 지원을 해 줘서 운영을 시작했어요. 저는 쉼터 친구들만 케어한다는 것은 소극적인 지원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친구들이 다양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쉼터는 1년에 많아야 50명 정도만 다녀가잖아요. 어떻게 친구들을 잘 도와줄 수 있을까 늘 생각하고 감각을 세우고 다음 것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되더라구요. 또 하나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어요.(웃음)
-저에게 주신 리플렛에 ‘청소년성장캠프’라는 것이 있는데요, 위기청소년교육센터에서 운영하는 것인가요? 설명 부탁드립니다.
2007년에 위기청소년교육센터를 만들어서 비전캠프를 시작했고 지금은 이름이 ‘청소년성장캠프’로 바뀌었어요. 성매매에 초점을 맞춰서 진행해요. 1년에 6번 실시되는데 5박 6일 동안 성매매 바로 알기, 성매매 관련한 법도 알려주고 성매매를 왜 국가가 금지하고 있는지 알려줘요. 여성학의 눈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내 삶을 어떻게 보는지도 나누고요.
-저희 열림터도 성매매방지 교육을 입소 필수코스로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성매매 청소녀들이 많은 것 같아요. 얼마 전에 가출했던 친구가 “나갔더니 ‘조건’(조건만남)밖에 할 게 없더라” 면서 다시 들어와서 벌칙 받고 여기에서 살겠다고 했었어요. 청소녀 성매매가 증대된 사회적 조건은 무엇일까요?
모두 다에요. 남성중심 성문화, 쾌락주의, 물질만능주의……. 애들은 돈을 얻기 위해서 하니까, 돈이 있어야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집에는 빈곤, 가정폭력, 성폭력이 있기 때문에 집을 나올 수밖에 없고 교육제도도 이 친구들을 수용하지 못하죠. 애들이 심리적, 지적으로 멈춰 있는 상태인데 학교가 이걸 받아주질 못해요. 가정과 학교가 애들을 방출하면 사회는 이 아이들을 성매매로 흡입하죠. 자동적으로 성매매로 유입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에요.
‘사회적 배제’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봐요. 그런데 안아줄 수 있는 곳이 없죠. 쉼터도 마찬가지. 배제당한다고 느껴서 쉼터에 들어갔는데 있는 그대로 나를 수용해 주지 않고 사회시스템 안에 나를 끼워 맞추니 또 다시 배제당한다고 느끼죠. 담배 피우는 것보고 뭐라고 하고 핸드폰 못하게 하고.
-쉼터에서 지원을 하다보면 한계를 느낄 때가 많더라구요. 결국 세상이 바뀌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내가 아무리 몇 년간 열심히 지원을 해도 퇴소 후에 이 아이들이 돌아가야 할 세상은 그대로이고, 빈곤이 대물림, 계급이 대물림되면서 가족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10대, 20대들은 다른 자원을 스스로 개척하기가 너무 힘들잖아요. 열림터에서 퇴소한 20대 친구가 스스로를 ‘루저’로 규정하면서 외국 나가서 살고 싶다고 하는데 가슴이 아프더라구요.
사실 이 친구들한테 얘기하기 보다는 바깥사회에 얘기해야 돼요. 그리고 여기저기 다 이야기해야 돼요. 그래서 전 강의를 많이 나가는 편이에요. 다른 방법이 없어서. 학교 선생님들 연수 때 가서 강의도 하고.
-여성폭력의 문제는 너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요.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를 무슨 패키지처럼 몸에 달고 살아가고. 새날 친구들 중 성폭력 피해경험이 있는 친구들도 있죠?
네. 성매매와 성폭력은 연관되어 있어요. 폭력은 인간의 자존감을 떨어지게 하고 그 떨어진 자존감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는 상대방이 나를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자아로 스스로 생각하는 거예요. 이미 나는 성폭력으로 더럽혀졌다고 생각해서 성매매로 쉽게 유입되는 경우도 있죠. 여기 친구들 거의 다 성폭력 경험이 있는 것 같아요.
-새날에 있는 친구들은 자신의 성매매 경험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회적인 낙인이나 비난을 내면화해서 스스로를 비난할 것 같기도 한데요.
성매매의 형태가 다양하잖아요. 그래서 본인들 스스로가 성매매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아요. 번개팅이라는 게 있는데 처음부터 성매매를 작정하고 만나는 게 아니라, 그냥 술 한 잔 사줄 사람, 오늘 하룻밤 놀 사람을 만나는 것이죠. 그런데 밤새 놀다보면 잘 데가 없으니까 잠자리 해결한다는 마음으로 같이 모텔에 가서 잠을 자줘요. 딱 돈은 받지 않더라도 술 얻어먹고 밥 얻어먹고 잠자리 해결하는 건데 그것을 성매매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죠. 엄밀한 의미에서 성매매인데.
애들이 가출하면 패밀리를 구성하잖아요. 남자애들이 포주가 되어서 여자애들 내보내는데 조건사기를 쳐요. 조건만남 10번 하겠다고 하면서 3번은 나가고 7번은 돈만 받고 안 나가는 거예요. 이런 조건 사기는 그냥 놀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성격유형에 따라 다른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자기 자신을 싫어하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어요.
-쉼터 활동가는 몇 명이고 근무형태는 어떻게 되나요?
밥을 해 주시는 이모님을 포함해서 5명이고요. 근무형태는 숙직 선생님을 한 명 두니까 그 자리가 자꾸 바뀌어서 모든 선생님들이 매주 숙직을 주1회하고 한 명이 두 번을 해요. 숙직 한 다음날은 바로 퇴근을 하고요. 그러니까 일주일로 보면 주간 4일 +야간 1일인 거죠. 모자라는 것은 숙직 알바를 구하구요. 근속연수는 평균 4년이에요. 다른 성매매 쉼터, 상담소는 1년 반인 걸 보면 우리는 긴 편이죠.
-성매매 쪽이 그만큼 활동가 소진이 심한 것이겠죠?
일도 많이 하고 무엇보다 일이 거치니까요. 포주와 싸우고 경찰과 싸우고.
-사람의 문제이다 보니까 정답이 없잖아요. 정치적인 문제면 원칙에 따라 하면 되는데 그런 문제가 아니죠. 활동가들이 서로 가치관과 양육방식에 대한 견해가 다르니까 사소한 것도 일일이 다 논의해야 하고. 어쩔 땐 다른 활동가가 애들을 대하는 방식이 이해 안 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도 그 활동가를 인정하는 것, 동료를 신뢰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새날은 어떤가요? 외박이나 담배가 가능한 자율성에 대해 선생님들끼리 의견 차이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여기 선생님들은 새날의 운영방식이 이렇다는 걸 알고 이게 좋아서 왔기 때문에 자율성에 대해서는 다 합의가 되어있어요. 1388팀장 자리도 버리고 여기 오고 다시함께센터 팀장 자리도 버리고 온 사람들이거든요. 가치관과 양육방식 다른 것에 대해서는 각자 역할이 다 있다고 봐요. 역할분담을 하는 거죠. 예를 들면 야단치는 선생님은 아버지 역할, 나 같은 사람은 엉덩이 두들겨주는 할머니 역할, 이렇게 서로 역할을 나눈 거죠.
하지만 아이를 지나치게 무시한다거나 심하게 화를 내는 경우 속으로 화가 나요. 하지만 그 사람을 존중해줘야 하기 때문에 내가 참죠. 지적하지 않아요. 그 활동가가 소진된 상태거나 힘들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크죠. 그래서 따로 맛난 걸 사준다든지 옷 선물을 한다든지 해요. 그렇게 해서 마음이 편해지면 여유가 생겨서 아이들한테도 잘 하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모든 선생님들이 다 똑같이 하면 숨이 막힌다고 애들한테도 말합니다. 여러 역할들이 있기 때문에 네가 여기서 살 수 있는 거고 여러 선생님들한테 배우는 거다. 여기 친구들은 누가 숙직을 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죠.
-활동가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면, 특히 십대 문화에 대해서 모르고 있으면 아이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활동가들의 역량강화를 위한 사업이나 프로그램이 있나요?
청소년 문화에 관한 것은 거의 교회계통에서 오는 선생님들이고 교회에서 중고등부 선생을 하고 있으니까 내가 설명을 안 해도 자연스럽게 알고 있어요. 굳이 그거에 대한 교육은 안 해요.
활동가들이 힘들다, 애들이랑 자주 부딪친다고 느낄 때 10회 정도 개인 수퍼비전(사회 복지 기관의 종사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 지식과 기능을 최대로 활용하고 그 능력을 향상시켜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원조와 지도를 행하는 일-네이버국어사전)을 합니다. 개인 상담을 하기도 하고 애들과 상담한 내용을 녹취해서 수퍼바이저에게 조언을 듣기도 해요. 처음 1년은 사업비 받아서 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실무자교육비로 해서 자부담으로 하고 있어요. 활동가 자신이 먼저 건강한 상담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
이게 제 성향상 잘 맞는 것 같아요. 제가 똑같은 걸 반복하는 걸 싫어하는데, 여기는 늘 새로운 친구가 새로운 문제를 가지고 들어오잖아요. 그걸 해결하는 방식도 달라지고요. 청소년들은 노인이나 어른보다 변화의 가능성도 높아서 내가 조금만 공들이면 변화와 성장을 가져올 수 있으니까 이 일이 재밌어요. 또 성매매 흐름도 변하니까 또 내가 그 흐름을 읽고 새로운 정책도 만들어내야 하고요. 새로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친구들이 나를 좋아라 해주니까,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 집단에 있으니까 좋아요. 애들이 먼저 편지 써 주고 메모 써서 붙여주고. 얼마 전 19살짜리 친구가 “당신처럼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는데 최고의 찬사였어요.
그만해야지 하면서도 계속 뭔가 만들어내고 있는 나를 발견해요. (나랑: 중독이야, 중독) 맞아, 이게 중독이에요. 그래서 작년에 스님한테 수행을 배워 와서 1년째 매일 명상을 하고 있어요. 나를 알아차리기 위해서. 일중독에 걸린 건지 아닌지, 내가 지금 왜 화를 내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위해서 명상해요. 매일 매일 아침을 천천히 먹으면서 음식명상을 하고 옥상에서 행선을 하고 방에 와서 좌선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어요.
-새날이 처음 만들어진 1998년부터 활동을 하셨고 2004년부터 관장을 맡아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성매매 청소녀 쉼터 운동의 살아있는 역사이신데요, 선생님의 비전과 포부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아까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다고 하셨는데 이제 풀어놓으시죠.(웃음)
청소년 성매매 피해자 지원에 관한 정부 지원 시스템이 ‘시설 중심’이에요. 성인의 경우에는 상담소-쉼터-자활지원센터가 있는데 청소년은 쉼터만 있거든요. 그래서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돼요. 특히 초기개입 단계에서 해결이 안 되는 거죠.
초기개입이 경찰이 함정수사를 하는 것인데 지금은 경찰이 수사 안 하니까 위기교육센터에 애들이 안 와요. 초기개입이 빠져있어서 모든 게 어그러져 있어요. 그래서 저희가 사이버또래 상담실 시범운영을 시작한 거죠.
그 다음 단계는 자활지원센터를 만드는 것이에요. 제가 생각하고 있는 구상은 학교-쉼터-자활지원센터가 함께 가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인데요. 쉼터에 오면 쉼터가 기숙사 역할을 하면서 여기에서 학교도 졸업할 수 있고 이 안에서 기술 교육이 함께 이루어지고 생산품을 만들어내는 자활센터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자립을 준비시키는 시스템이 되는 거죠. 그 프로젝트가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모르지만 그걸 다하면 저의 역할은 끝인 것 같아요.
그 후에는 수행을 가르쳐주는 사람으로 살면서 내가 사는 곳이 수행처가 되기도 하고 새날에서 독립한 친구들이 하룻밤 쉬고 갈 수 있는 친정집이 되기도 하고. 그러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새날의 이모님이 해주신 맛있는 점심을 얻어먹고 왔습니다. 열정과 에너지가 남다르신 김선옥 관장님은 아주 오랜만에 저에게 ‘아,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 준 분이셨습니다. 부디 그 에너지로 쉼터 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시길, 온 마음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