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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연구

“가정폭력피해여성 ‘자존감 회복’이 우선” -가정폭력피해자쉼터 ‘오래뜰’ 고미경 시설장 인터뷰(상)
  • 2011-11-29
  • 387

 이 글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 실린 글입니다.
 쉼터 탐방 세 번째는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 '오래뜰' 입니다. 고미경(단아)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쉼터의 역사를 알고 싶습니다. 언제 만들어졌나요?
 
1983년 한국여성의전화가 창립되었어요. 그런데 상담하다보니까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집에서 가해자를 피해 도망 나와도 갈 곳이 없는 거예요. 친정에 가면 친정에 찾아와서 때려 부수고, 친구 집에 가있으면 친구를 협박하고……. 그 당시에는 찜질방도 없고 여관에 여성 혼자 들어가기도 어려운 시대였잖아요. 경찰도 도움을 안 주고 완전히 가정 내부의 문제로 돌리던 때였으니까 정말 피신할 곳이 없었죠.
 
그래서 1987년 3월에 사무실 방 하나를 개조해서 공간을 만들었어요. 이 방 이름을 뭐라고 할까 고민을 했는데 쉘터하우스(shelter house)랑 발음도 비슷하고 이 여성들이 단 며칠이라도 쉬어갈 수 있는 공간, ‘쉼터’라고 하자. 지금은 고유명사가 됐지만, 한국 최초의 쉼터가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죠.
 
연탄을 때던 시절이었는데 연탄집게로 온 몸을 두들겨 맞아 성한 데가 없었던 내담자가 우리 쉼터의 첫 내담자였다고 해요. 정말 오갈 데 없는 분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쉼터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활동가들이 광주리장사도 했다고 들었어요.
 
그 후에 여성의전화 지부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상담소도 쉼터도 하나 둘씩 생겨났죠. 여성의전화 부설로는 현재 가정폭력쉼터 9개, 성매매쉼터 1개가 있어요.
 
-‘오래뜰’ 이라는 쉼터 이름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나요?
 
2009년에 제가 쉼터에 와서 보니까 쉼터 내담자들에게 나오는 1종 의료급여증에 무슨 무슨 쉼터라고 딱 적혀있더라고요. 여성단체들이 싸워서 주민번호가 아니라 의료급여 번호가 찍혀 나오는 건 좋은데, 병원에다 쉼터에 있다고 밝히게 될 내담자들 생각하면 속상했어요. 그래서 구청에 제기를 했어요. 차라리 ‘한국여성의전화’로 해달라고. 그런데 구청에서는 우리가 여성의전화 부설임에도 법인(여성의전화)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기들 관할이 되길 바라니까 꼭 쉼터로 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쉼터’를 뗀다는 걸 내부에서도 반대를 많이 했지만, 우리 가족들이 “나는 쉼터에 있어요.”라고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았으니까 결국 따로 이름을 만들기로 했지요. 실무자들도 회원들도 투표를 하고, 가족들도 투표하고,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베틀여성모임(쉼터에서 퇴소한 여성들의 자조모임)도 투표를 하고 그래서 결정된 이름이 ‘오래뜰’이에요. 순우리말로 ‘모든 이웃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마당’이라는 뜻이에요. 오래된 뜰이라는 뜻도 있죠. 우리가 오랫동안 이 자리를 지켜왔으니까요. 2010년 5월에 이사하면서 쉼터 이름도 변경했습니다. 지금은 한국여성의전화 부설 ‘오래뜰’이에요.
 
▲ 한때 자녀는 입소가 허용되지 않았던 적도 있지만 현재는 동반입소가 가능하다. 사진은 아이들을 위한 미술 치료 활동 모습.    
-정원은 몇 명인가요? 아이와 함께 들어오는 경우가 많나요?

 
정원은 아이들 포함해서 12명이에요. 역사가 오래됐으니까 그 과정에서 아이들 안 데리고  나온 분만 받은 적도 있었죠. 2006년부터인가, 다시 아이들도 받기 시작해서 현재는 자녀동반 입소가 가능합니다.

 
입소경로는 올해 분석을 해보니까 우리 상담소, 지부 상담소, 1366(여성긴급전화) 통해서 많이 들어오시더라고요. 예전만 해도 1366에서 연계를 많이 안 해서 간담회할 때 문제제기를 많이 했었어요.

 
입소 의뢰가 오면 1차로 전화 상담을 합니다. 쉼터마다 운영규칙이 다르니까 우리 규칙을 수용할 수 있는지 물어보죠. 저희는 단기쉼터여서 6개월 거주 가능해요. 법적으로 3개월 연장 가능하지만 연장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연장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6개월 동안 쉼터에서 보호받으면서 폭력피해후유증 치유를 위한 개인상담이나 집단프로그램에 지속적으로 참여하여 역량강화가 많이 되죠. 그 이상 지나면 의존적이 될 수도 있고,  쉼터생활에 안주하게 되더라고요. 6개월이 넘어가면 빨리 자립의 길을 모색하고 그 자리에 쉼터가 필요한 다른 분이 오셔야 된다고 봐요.

 
중장기 쉼터도 법적으로는 2년이지만, 대부분이 거주기간을 1년 정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안주하는 것보다는 자기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니까요. 오랜 운영 경험 속에서 내린 판단으로는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입소에서 퇴소까지 어떻게 생활하시고 어떤 지원을 받는지 궁금합니다.

 
들어와서 일주일쯤 지나면 개인 상담을 시작해요. 상담 자원활동 경력이 15년, 20년 되신 면접상담원들이 있어요. 이 분들이 지속상담을 해주세요.

 
집단프로그램은 5회기에서 길면 10회기까지 끊어서 하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다 연결되어 있어요. 제일 먼저 시작하는 게 의식향상 프로그램이고 그 뒤로 여성주의 의식을 가진 강사들을 모셔서 미술치유, 독서치유, 표현을 통한 심리치유, 평화로운 의사소통, 성역할분석 등을 해요. 강사는 가정폭력 피해에 대해서 이해하시는 분들, 조금이라도 활동을 해보신 분을 어렵게 찾아서 하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아요.

 
상반기, 하반기로 나누어서 같은 틀로 진행이 돼요. 언제 들어와도 쉼터에 있는 6개월 동안 모든 걸 경험할 수 있게, 전체적인 틀은 변하지 않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 조금씩 새로운 시도를 해요. 늘 변화되고 있어요.

 
▲ 집단상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나에게 쓰는 편지'를 작성하고 있다.
-프로그램이 주로 집단상담이네요?

 
네.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개인상담, 집단상담 진행자 분들과 함께 ‘프로그램 진행자 간담회’를 해요. 이번에는 프로그램별로 보고서를 만든 것을 보여드렸어요. 보고서에는 내담자들의 평가도 들어가고 평가 설문한 것을 그래프로 분석하고. 보고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프로그램만 딱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피드백을 해 드리니까 좋아하시죠.

 
간담회에서는 사례 얘기도 같이 나누게 돼요. 쉼터에 계셨던 분 중에 부자동네에서 청소부, 파출부 계속 해 오신 60대 중반 여성이 있었어요. 이혼소송 중인데 재산분할에서 이걸 증빙할 수가 없는 거예요. 20년, 30년씩 파출부로 다닌 그 집들을 어떻게 찾겠느냐고요. 이사 가는 경우도 있는데 그 집에 가서 확인서를 뗄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식당 같은 데서 일했어도 정식 직원이 아닌 경우가 많으니까. 이걸 증빙할 수 있는 정책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정책적인 제언도 간담회에서 나와요. 이런 것도 내담자 지원의 일환이라고 봐요.

 
-쉼터 안에서 생활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가족들은 되게 바빠요. 새로 들어오신 분들은 처음엔 집에 계시지만, 지금 있는 분들은 대부분 이혼 소송 진행 중이에요. 그래서 재판 진행 중일 때는 법률상담 받거나 증빙서류 때문에 나가시고 직업훈련 있으면 그거 들으러 나가시고 앞으로 살 길 마련하느라 나가시죠. 산책도 많이 다니시고 아이들 있는 집은 아이들 데리고 도서관에도 다니시고요. 귀가시간이 8시 반이에요. 취업했거나 직업훈련 있으면 10시까지. 알바 하시는 분도 가끔씩 계시구요.

 
아이들만 놓고 나가시는 경우는 없습니다. 쉼터에 들어올 때 아이의 양육이나 안전 문제는 본인이 책임진다는 동의서를 받아요. 대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방과 후 교실에 빨리 보낼 수 있도록 저희가 돕죠.

입소자 연령대가 젊어졌어요. 30대가 가장 많고, 동반아동도 7세 이하가 70퍼센트 넘죠. 그런데 애들 어린이집 보내면서 부수비용은 국가 지원을 못 받으니까 엄마가 울고 그래요. 특별활동도 필수라는데 10만원 넘는 비용을 다달이 어떻게 내냐고요. 그러니 부수비용도 지원해달라고 제안하게 되는 거죠.
 
-30대가 많은 이유는 뭘까요? 오랫동안 참지 않는다는 뜻일까요?

 
글쎄요. 정보에 밝아진 것일 수도 있죠. 쉼터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예전에 몰라서 못 오는 경우가 너무 많았으니까요. 오랫동안 참지 않는다는 경향이라면 정말 좋겠지만, 여러 가지가 복합적이라서 딱히 어떤 것이라고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이 겪는 심리적인 후유증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가해자에 대한 양가감정도 있을 것 같은데요.

 
쉼터까지 오신 분들은 분노와 억울함이 커요. 물론 가해자에게 의존하는 분도 있죠. 가해자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니까요. 여전히 정리되지 않는 분들도 있어서 협의이혼 해주겠다, 재산분할 해주겠다고 하면 믿고 가시기도 해요. 또 내가 없으니까 폐인처럼 있다더라, 참 안됐다 이러는 분들도 있어요.

 
이런 말씀 하시는 분들에게 저는 “선생님이 훨씬 더 불쌍하다”고 말씀드립니다. 가해자는 집도 있고 돈도 있지만 선생님은 아무 것도 없이 여기에 계시지 않냐고. 프로그램을 통해 그 의존성을 벗어나서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도록 돕게 되죠.

 
-다 성인이시고 아이를 키워야 하는 분도 계시니까 자립에 지원 초점을 맞출 것 같은데요. 자립을 위한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 있나요?

 
입소 후 한 달 반 정도 지난 후에 상황이나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었을 때부터 직업훈련을 시작해요. 하지만 자립이라는 것이 자격증, 직업훈련, “내가 어디 가서 내 한 몸 먹고 살 수 있겠다” 이것도 자립의 일부이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자존감 회복이라고 봐요. 나를 가치 있게 보는 것. 끊임없이 병신, 멍청이로 불리며 “나 같은 거 살아서 뭐하나, 죽어야지” 했던 나를 “나도 살아도 괜찮은 인간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프로그램 시행 후, 내담자들에게 뭐가 제일 많이 바뀌었는지 물어보면 자신감 회복이라고 해요.

 
이렇게 자신감 회복이 안 되고 직업훈련만 한 여성들은 사회에 나가도 또 좌절하죠. 사회도 여성에게 엄청 폭력적이잖아요. 폭력이 가정에서 사회로 장소만 바뀌는 것이지요. 자기 자신이 역량 강화가 안 되면 결국 다시 폭력 현장인 가정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요. 위치만 바뀌는 것이에요.

 
▲ 함께 떠난 '자아여행' 중에서.    
-쉼터에 살면서 여성들이 변화되었다, 힘이 생겼다고 느끼실 때는 언제인가요?

 
1년에 한번 자아여행을 가요. 가족들 내에서 기획팀을 꾸려보는 게 어떨까 제가 제안했어요. 전에는 활동가가 다 했는데 이번에는 가족들 내 성인들이 다 기획팀을 하고 야간선생님이 실무자가 되어서 진행했어요. 어디로 갈까, 뭐 먹을까 까지 본인들이 직접 고민해서 두 달에 걸쳐 6차례 회의를 하고 각자 역할분담을 해서 준비했어요.

 
그리고 자아여행을 갔어요. 총평가 할 때 한 분이 하시는 말씀이 “항상 여행을 갈 때는 남편이 가고 싶은 곳, 남편이 먹고 싶은 것, 남편이 하자는 걸 했다. 그 여행은 나한테 즐겁지 않았다.” 그랬더니 옆에서 “그래도 넌 여행도 갔네. 난 가본 적도 없어.” 이러니까 “안 가느니만 못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우리가 결정한 여행은 생전 처음이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회의를 하는데 가족회의도 돌아가면서 진행을 하기도 해요. 그런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서로 갈등 있을 때 가족회의에 내놓으시라고 해요. 실무자가 대신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기다려요. 가족회의는 우리에게 유일하게 있는 공식적인 자리니까 누가 갈등이 있다고 하면 가족회의에 내 놓을 수 있겠냐고 물어봐요. 스스로 문제를 꺼내놓고 스스로 해결해 갈 수 있게.

 
이번에 여성인권영화제하면서 부대행사로 쉼터 가족들의 글 전시회를 했어요. 2009년에는 미술치료 작품 전시회를 했고요. 독서치료하면서 쓰신 글들이었는데, 감동적인 글도 있고 희망이 너무 예뻐서 웃음이 나는 글도 있고. 열개 작품밖에 전시를 못 해서 나머지 글들은 뉴스레터에 연재하고 있어요.

 
전 이 분들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보를 노출한다는 게 아니라 쉼터라는 곳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쉼터도 우리랑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드러내고 싶어요.

 
▶<정부정책, 피해자지원의 '걸림돌' 되지 않기를> 기사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