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연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여성주의 자기방어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 책 발간 사업 담당했던 전 활동가 ‘오매’님을 만나 여성주의 자기 방어와 십대 관련한 우리의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인터뷰를 요청하였습니다.
부슬부슬 비내리는 날, 맛있는 빵 사들고 은평구에 위치한 신나는 애프터 센터를 찾아갔습니다. 주택단지 사이에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는 ‘새 건물’이 눈에 띄네요. 올 해 신축했다고 들었는데 시설 먼저 살펴보세요.!
공간이 넓고, 종류별로 분류 되어있어 깔끔하더라구요. 대관은 무료라는 말에 열림터 친구들과 프로그램 하러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딱 드네요!
1층 인문학도서관 구석에 자리 잡은 우리는 나랑이 직접 말려온 목련차와 빵을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신나는 애프터 센터에 대한 소개 먼저 해 주세요.
: 신나는 애프터 센터는 은평구에 처음 생긴 구립 청소년 시설입니다. 이걸 준비할 때 은평구의 동네 활동가들, 교육가들, 청소년들이 모여서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논의하는 시간이 2년이 있었어요. 또 누가 운영을 하냐가 중요한데 복지재단 같은 곳 말고 동네를 잘 아는 곳이 운영하게 하자고 해서, 동네에서 15년 정도 활동한 은평시민회가 위탁 운영하게 되었어요. 우리 청소년 프로그램의 컨셉은 다 ‘동네에서’ 에요. 저희 정식 이름은 은평구 청소년 문화의 집 ‘신나는 애프터센터’입니다.
-주로 동네에 사는 청소년들이 이용하나요?
: 은평구 전역에서 이용할 수 있는데, 동네 안쪽에 있다보니까 이 동네에서 제일 많이 오고요, 이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중고등학생들은 멀리서도 오고요.
-주로 하는 사업을 말씀해 주세요.
: 기본적으로는 1층이 마을 인문학 도서관이어서 책이나 잡지, 보드게임 등을 할 수 있구요. 지하에는 댄스실, 밴드실, 동아리활동실, 다목적홀 같은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을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대관하는 일을 하고요. 우리 자체적으로는 10개의 센터 동아리를 지원해요.
또 시민돋움프로그램 이라고 해서 지역 사회 알기, 지역 의제를 찾아서 같이 해결해보는 그런 활동(청소년들이랑 같이요?) 네, 그리고 자원봉사도 지역 안에서 하고, 참여예산이라고 해서 예산을 같이 짜보는 것도 하고, 영화 제작하는 프로그램도 있고요.
또 우리 특색이 ‘동네’를 통해서 청소년들과 같이 놀자 이런 것이기 때문에 다른 세대가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거든요. 옥상텃밭교실이라든가, 어르신들 공부방 같은 것도 있고, 친환경 DIY 만들기 프로그램도 있어요.
-장소 대여는 센터 소속 동아리에만 해 주는 것인가요?
: 그냥 청소년 모임이나 동아리는 다 무료로 대여해줘요. 댄스연습실은 예약이 많이 차 있는 편이에요. 백일파티, 생일파티도 대여하더라구요. 월요일은 휴관이고, 매일 9시까지 열어요.
-십대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담소에서 일하다가 살림의료생협 활동을 했었고 그러다가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 상담소에 있을 때 점점 갈수록 풀뿌리 조직이라고 해야 하나, 동네에 자리잡는 것이 단체들에게 붐이 되고 그랬는데, 성폭력상담소 라는 것은 전국에서 누구라도 연락해서 올 수 있는 것이고 그러면 우리 상담소랑은 안 맞는 건가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열림터도 동네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집을 공개할 수도 없고...... 동네에 있지만 동네에 있지 않은 것이죠. 아쉬움이나 소외감을 느꼈어요. 열림터에서 살면서 동네친구도 많이 생기면 애들이 나중에 마포에 터를 잡고 이러면 좋을텐데 싶었거든요.
그러다가 제가 살고 있는 은평구에서 일을 해 보고 싶었어요. 은평구에는 여성주의자들이 “동네에 터를 잡은 협동조합을 만들어보자”는 운동, 살림의료생협이 있었고 조합원으로 활동을 시작해서 직원으로도 일을 했지요.
알고 보니까 동네 생태계가 크게 있더라구요. 이 동네 생태계가 갖고 있는 게 많은데, 다양한 연령대별로 이용할 수 있는 공동육아조합부터 살림의원이 나중에 짓고 싶어하는 요양센터, 생태, 교육, 도서관, 두부가게 같은 먹거리, 재활용가게, 주거 재생하는 사회적 기업 등까지요. 2013년에는 문화예술창작소, 햇빛발전소, 그리고 마을 전체에 일어나는 일들을 인큐베이팅하고 지원하는 마을 법인, 청소년 센터를 만들자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었어요. 저 역시 동네에서 계속 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청소년 쪽에 새로 생기는 센터에서 일을 해 봐야겠다 이렇게 된 거죠.
개인적으로 제가 사범대에 갔는데 뜻이 있어서 간 건 아니었어요. 교사가 되고 싶어하는 친구들은 교육운동을 활발하게 했죠. 여름마다 동네에 있는 아이들 초청해서 같이 활동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는 ‘열린 교실’에 저도 함께 했었고, 방학 때는 간디학교 여름캠프에 가서 자원활동가도 하고, 교생실습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 활동이 한편으로는 너무 재밌고 또 한편으로는 애들이란 존재가 무서운 거구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빤히 아는구나, 되게 무서웠죠. 애들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관계를 맺는 게 안 되니까요.
졸업하고 상담소에서 일하면서 자기방어 프로그램을 하면서 십대를 다시 만났죠. 전형적인 여자애들이지 않을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을 했기 때문에 재밌었어요. 항상 신나고 역동적이고 활기 넘쳤기 때문에 누구라도 재밌게 만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신나는 애프터 센터는 열린 공간이어서 내가 애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만나야 오래 만날 수 있는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초반에 많이 들었죠. 애들 앞에서 억지로 웃어서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는 건 아닌지 그런 건 금방 뽀록 날건데 하면서......
지금까지로는 일단 그렇진 않은 거 같아. 괜찮은 거 같아. 왜 그러냐고 생각해 봤을 때, 페미니스트가 되면서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귀여운 면이 있구나’ 그런 게 페미니즘의 계시랄까,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요, 모든 사람은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고 알고 보면 재밌고 알고 보면 귀엽고 그런 면이 있는데, 애들을 만날 때도 그런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제가 오픈하기 직전에 걱정하고 울렁증이 있을 때, 한 친구가 “지금까지 사랑을 많이 받고 살았으니 이제부터는 사랑을 많이 주는 사람이 되어라. 새로운 시기가 시작된 것 같다.” 고 말해줬어요. 애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애들한테 내가 먹힐까 안 먹힐까 걱정하는 건 내가 먼저 사랑을 받으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먼저 사랑을 줘야겠다. 그 조언이 되게 중요한 말이었던 것 같아요.
또 하나는 동네 영화감독님이 별자리를 봐 줬는데, 제 별자리가 어린이 자리래요. 양자리 양자리. 그 감독님이 “너도 애다.”, 뛰놀고 몸을 움직이고 애들처럼 아무 생각없이 놀고 이런 게 잘 맞는 것 같아요.
-자기 방어할 때 만난 십대는 어떤 경로로 만나신 거에요?
: 10회기 프로그램도 했었고, 학교로도 특강하러 갔고, 2박 3일 캠프도 갔고, 몇 달 동안 하는 프로그램도 있었어요. 신청한 애들은 학교에서 보고 온 애들, 다른 쉼터에서 온 애들, 열림터 애들도 있었고 엄마나 지인이 추천해줘서 온 애들도 있었고요.
-십대 친구들과 함께 했었던 자기방어훈련 프로그램이 궁금합니다. 그 때 십대들의 반응은 어땠는지도 말씀해주세요.
: 자기방어훈련은, “성폭력 상황에서 여자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자꾸 얘기하면, 그 무력감을 기정사실화하는 게 치유나 회복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 그런데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최소한 얼어붙는 긴장에서는 벗어날 수도 있고, 꼭 성폭력을 막는 것 말고도 살아가는 데 큰 즐거움과 자신감과 활력을 주기 때문에 효과가 크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데 성폭력이 발생하는 이면에는 사회적으로 여자들이 몸을 안 움직이는 게 더 익숙하고 그게 더 좋다는 문화가 있잖아요. 그 문화에 제일 빨리 적응하고 있는 시기가 십대이고 그래서 십대에게 다른 몸 경험을 주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다른 몸 되기’라는 이름으로 프로그램을 했지요.
다른 몸이라고 하면 ‘특정한 몸’, 특정하게 강인한 몸, 큰 몸, 근육질의 몸이 되려고 하는 거냐는 질문도 많았어요. 그게 아니라 다른 몸이라는 건 열려있는 개념이다,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몸이 되기 위한 체험이면 다 했던 것 같아요.
다같이 체육시간에 대해서 얘기하기도 하고, 자기 몸의 2차 성징에 대해서 얘기하고, 몸싸움도 하고, 5박 6일동안 종주+농활도 갔었어요. 같이 축구나 야구대회에 여자 야구팀 응원을 하러 갔었어요. 거기 가면 문화가 달라요. 언니들이 치킨 싸 갖고 와서 언니들(선수) 막 먹여주고. 그런 팀들 구경을 가서 일주일에 한 번씩 야구 경기를 하면서 사는 언니도 만나보고, 자전거 타고 멀리 가기도 하고, 3미터 깊이 물 속에 들어가서 동전 줍기도 하고요.
학교 가서 했던 자기방어는 애들이 많이 겪는 바바리맨이나 치한 마주치는 상황을 상황극처럼 해서 다른 행동을 하는 그 순간을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을 했어요. 그리고 애들의 무용담, 싸우거나 대거리 해 본 애들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십대 여자애들이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 선망, 모델 이런 것을 넓혀 보려고 했어요. ‘몬스터’라는, 다른 몸을 가진 언니가 나오는 영화도 봤구요. 강유미가 초기에 데뷔했을 때 남-여 커플에서 여자가 하는 행동을 뒤집어서 보여주는 개그 프로 있었는데 그걸 같이 보면서 얘기하기도 했어요.
자기방어 특강은 인기가 많았어요. 애들이 이미 다 겪어봤고 나름대로 고민을 해 보고 자구책을 마련해 보기도 하고 뭔가를 하고 있었거든요.
자기방어가 좋은 게 이미 여자라면 다 ‘자기 경험’이라는 재료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내 옆에 있는 사람도 그걸 안 꺼내봐서 그렇지, 같이 꺼내놓고 서로 배울 수 있는 거죠. 아, 다르게 해 볼 수 있구나, 계획해 볼 수 있구나,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습해서 달라질 수 있구나. 성폭력이 승패가 결정되어 있는 게 아니고 재미있는 도전이나 기다려지는 한 판 승부처럼 느껴지니까 신나고...... 성폭력은 이미 결정된 싸움이고 나한테 올 지 안 올지만 달라지는 그런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오는 하나의 일상인데, 결과물은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고 바뀔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애들이 신나하더라구요.
길게 했던 프로그램 같은 경우에는, 제 느낌에는 애들이 생각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끝나고 사후 인터뷰 영상도 찍고 발표회도 했었는데, 똑같이 전업주부가 되는 게 내 꿈이라고 했을 때 시작하기 전보다는 되게 구체적인 얘기를 하는 면에서 애들이 생각이 깊어지고 있구나 싶었어요. 그 전에는 자기 몸이 고민거리, 그리고 치장해야 할 거리, 보여줘야 할 거리였다면, 자기 몸이 탐구대상이 된다고 해야 하나? 근데 그게 좀 더 무거워진 느낌이라기보다 가벼워지고 풍성해진 느낌이었어요. 우리 엄마는 나한테 이런 몸이 되라고 하는데 왜 우리 엄마는 그런 욕심을 갖게 됐을까 토론도 하고. 활동가들이 브래지어를 안 하는 것을 몇 주동안 토론을 한 거야. 다른 사람이 브래지어를 안 해서 유두가 보이는 게 자기한테 너무 불편한거지. 모든 사람들이 하고 다니는 몸의 형태가 우리들의 수다거리였어. 그러다보니 몸이라는 게 거리를 두고 볼 수도 있고 다르게 해 볼 수도 있고...... 그렇다는 의미에서 풍성해진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제 느낌으로는 어려운 순간에, 자기 인생이 힘들어지는 순간에 가라앉게 되는 바닥의 깊이를 조금 높여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우리가 진짜 많이 웃고 너무 즐거웠기 때문에, 그리고 종주했을 때 그 기억은 정말 오래 갔거든요. 힘든 순간, 그 때를 기억하고 싶다는 얘기를 애들이 많이 했어요.
지리산 3박 4일은 예약부터가 전쟁이었어요. 예약전쟁에 대비하는 우리의 매뉴얼도 만들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근처 피씨방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예약하고. 장비 사러 가서 산꾼들한테 잔소리 들어가면서 장비 사고 루트 짜고 간식 직접 사와서 패킹하고. 연습산행 3번 갔다오고, 밤기차 타고 새벽에 산꾼들 지리산 가려고 구례에 모여 있는데 우리도 거기 가서 한 자리 차지하고 달 보면서 체조하고 산행 시작했어요. 4시간 올랐는데 어떤 애가 “아직까지 제가 일어나지 않았을 시간이에요” 막 이러면서. 총 16명이 갔어요. (행군 같았겠네?) 그렇지. 내려와서 농활을 이어서 갔죠. 총 5박 6일이었어요.
같은 그룹이 처음부터 끝까지 몇 달 동안 다 참가한 거에요.
(활동가가 몇 명이 붙었어요?) 기획단이 거의 애들과 일대일 수준으로 활동가가 많이 있었어요.
-자기방어훈련 프로그램 내용이 십대랑 성인이 차이가 있어요?
: 성인들은 무슨 말인지 머리로 딱 그 취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집중해서 시작할 수 있달까. 애들은 취지나 의미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죠. 근데 애들은 또 나대면서 활개를 치고 다니기 때문에 서로 기운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자기가 활개치고 다니는 것을 격려받는 분위기이고 더 나댈 수 있는 공간에 가보는 거죠.(맞아. 평소에는 나대지 마 이런 얘기 많이 들었을텐데.)
수영장 처음 가보는 애들도 있었어요. 근데 평소에 나댔던 애들은 수영장 처음 가도 잘 하는 거에요. 안 그래도 에너지가 넘치는데 그 곳에 가서 직접 그걸 해 보면 조금 정돈이 되면서도 몸이 저기까지도 해 볼 수 있구나, 또 나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저런 야구팀에 들어가서 해 볼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조금 확장하는 느낌을 갖지 않았을까. 정돈 안 되어 있을 때 흩어지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 에너지에서 저런 사람들이랑 모여서 정기적으로 뭔가 하면서 사는 거, 이런 길이 있다는 걸 아니까, 자기 에너지를 죽일 필요가 없으면서도.
성인들의 경우에는 그렇게까지 모험을 할 수 있다기 보다는 자기 목적을 완수하는 선에서 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