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연구
세계여성쉼터대회, 그 두 번째 날
두번째 날, 활동가 수수는 여성폭력피해생존자를 위한 공개쉼터인 오렌지하우스 평가와 관련된 세션에 참가했습니다. 열림터를 비롯해 한국의 모든 여성폭력피해생존자보호시설은 입소인 보호를 위해 그 위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요. 네덜란드의 오렌지하우스는 어떤 이유에서 어떤 방식으로 공개 쉼터를 운영하고 있을지, 세션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알 수 있었습니다.
수수: 오렌지 하우스는 네덜란드의 여성폭력피해생존자들을 위한 공개 쉼터이다. 공개라는 단어가 쉼터 생활인과 쉼터 활동가들에게 주는 울림이 있다. 아니, 폭력피해여성 쉼터를 공개된 형태로 운영할 수 있단 말이야? 어떻게? 마치 홀린듯이 이 세션에 들어갔다.
백목련 : 난 셋째날 네덜란드와 캐나다의 혁신 사례 발표에서 비슷한 내용이 나올 줄 알고 오렌지 하우스 사례 발표를 건너뛰고 가오슝 맛집을 찾아 떠냈다. 가오슝에 도착하고 24시간이 지나서야 처음 먹은 맛있는 음식이라 기뻤는데 오렌지 하우스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듣지 못해 아쉽다. 물론… 우육면은 맛있었다!
수수: 오렌지 하우스는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공개 쉼터이다. 오렌지하우스의 모토는 “Not secret, yet safe(비밀은 아니지만, 안전한)”이라고 한다. 오렌지하우스는 과거에는 다른 많은 쉼터가 그러하듯 비공개 쉼터였다. 그래서 외부에서의 위기나 위협이 발생할 경우 쉼터 거주인이 다른 쉼터로 이동했다고 한다. 비공개 쉼터의 가장 마음 아픈 점이 이것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위치를 알게 될 경우, 피해자가 자신의 거주 공간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이사라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닌데... 공간에 대한 익숙함, 애착, 형성해둔 관계망을 다 떠나야 하는 것이 이사이다. 이미 본인의 집에서 나와서 쉼터로 온 사람들에게, 당신의 위치가 노출되었으니 또 다른 쉼터로 옮기자고 제안하는 활동가들의 마음도 편치 않다.
백목련: 예전에 상담소가 옛날 주택 건물에서 활동할 때 신규 후원회원 환영회를 한 적이 있었다. 어떻게 찾아가는지 알아보려고 홈페이지에 주소를 찾아봤는데 아무리 뒤져봐도 주소가 없었다. 결국 어떻게 가는지 물어보고 나서야 주소가 아니라 합정역에서부터 어떻게 오는지 줄글로 풀이한 설명을 받았다. 그때는 상담소 위치도 여러 이유로 완전 공개는 아닌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상담소 근처로 왔는데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큰 간판이 있을 줄 알았는데 굉장히 작은, 영문 약자 KSVRC만 적힌 간판이 있었다. 왜냐고 물어봤더니 피해생존자들이 상담소에 내방할 때 혹시나 피해사실이 드러날까봐 꺼려하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성폭력 피해생존자에 대한 낙인이 지원을 요청하는데에도 방해가 된다는 게 슬프고 화도 났다.
수수: 세션을 시작하며 오렌지하우스가 비공개에서 공개 쉼터로 전환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1. 비밀 쉼터들이 완벽하게 비밀이 될 수 없었다.
2. 비밀 쉼터로 운영하니 ‘폭력’을 충분히 다루기 어려웠다.
3. 피해자에게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에 대한 구조적인 접근을 하기 위해 공개 쉼터로 전환했다.
와닿는 말들이 많았다. 열림터도 자꾸만 사람들이 ‘어디에 있냐’ ‘어디에 있는 거 아니냐’고 물어본다. 그게 열림터에 대한 첫 번째 질문일 때도 많다. 아니 위치가 제일 궁금하다니..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한 비공개 조치가 오히려 위치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는 점은 아이러니이다.
백목련 : 맞아. 열림터 위치는 비공개이고 비밀보장 서약을 했다고 해도 오히려 동종 업계 종사하는 지인들이 “알지. 근데 어디야?”라고 할 때 화도 나도 왜 그렇게 위치가 궁금한지 내가 오히려 더 궁금했다. 사실 열림터도 인근 주민들은 열림터에 존재를 알고 있는데다 각종 수리나 설치, 배달 기사분들에게 위치가 공개되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 쉼터는 안전할까?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
수수: 쉼터를 공개하면 쉼터의 존재를 사회 이슈로 만들 수 있다. 이것은 큰 이점이다. 비공개 쉼터도 폭력의 문제를 얼마든지 가시화할 수 있지만, 어쨌든 그 존재가 드러나 있을 때와 주변에 주는 영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쉼터 생활인들에게 가해지는 낙인의 문제 때문에 쉼터를 비공개하기도 한다. 가정폭력 피해자, 성폭력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동정하는 시선이 여전히 만연하다. 그래서 열림터 사무실에서는 아예 “열림터입니다”라고 전화를 받지 않는다. 생활인들의 학교, 도서관, 학원, 일터 등등에서 전화가 올 수 있는데 보통의 가정집처럼 전화 받을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열림터에 처음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는 이게 제일 신기했다. 기관으로서 먼저 전화를 걸 때도 “안녕하세요, 여기는 청소년 쉼터인데요”라고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렌지 하우스는 여성폭력피해를 금기로 만들지 않기 위해 오히려 쉼터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쉼터의 존재를 드러내면서 피해자가 고립되는 상황과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수치심을 깨뜨린다는 것이다. 정면돌파법이라고나 할까?
백목련 : 근데 보통의 가정집들은 요즘 집전화 안 쓰지 않나? 나는 가해자들이 열림터에 전화할 수 있어서 “네, 열림터입니다.” 하고 안 받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학교에서는 어짜피 보호자 휴대폰으로 직접 전화하고. 비밀이라는 단서조항은 여러 가지로 쉼터 활동에 제약을 주는 것 같다. 쉼터를 공개하면 오히려 쉼터의 존재가 사회적 이슈가 된다니 새로운 접근법이다. 근데 계속 가능할까? 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맴도는 것은 왜일까? 그래서 오렌지하우스가 혁신 사례겠지.
백목련: 지금은 상담소 홈페이지에도 주소가 나와있고 인터넷 검색으로도 쉽게 위치를 알 수 있지만 여전히 열림터는 피해생존자를 찾아다니는 가해자들로부터 보호를 위해서 비공개이다. 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생존자가 이렇게 숨어다녀야 할까? 그리고 2012년에 열림터가 서울주택도시공사의 지원을 받아 이사를 준비할 때 그 사실을 알게 된 지역 주민들이 혐오시설 입주 반대 운동을 벌여서 이사가 무산된 적도 있었다. 피해로부터 안전을 위해 보호시설에 왔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 통념과 마주하는 순간들이었다. 그래서 가정폭력 가해자는 훨씬 더 폭력적이라는데 어떻게 공개를 결정했는지, 오렌지 하우스는 지역사회와 어떻게 교류하는지 궁금하다.
수수: 맞다. ‘폭력피해여성 쉼터를 공개된 형태로 운영할 수 있단 말이야? 어떻게?’ 라고 생각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가해자들의 침입 때문이다. 열림터에서도 스토킹 피해가 있었다고 하면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의 경우 가해자들이 더 집요하게 피해자를 찾아다닌다고 들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고 폭력을 계속 가하려는 가해자들 때문에 쉼터가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오렌지하우스 세션 역시 이 ‘위험’과 ‘안전’에 많이 집중했다.
백목련 : 가해자도 문제지만 피해생존자와 쉼터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경찰이 성인지 감수성 부족으로 오히려 가해자 편을 드는 경우도 있었다. 쉼터 생활인이나 종사자만의 힘으로 위험에 대비하고 안전을 도모하기가 쉽지 않다.
수수: 세션에 참석한 모두에게 이 ‘안전’ 항목이 가장 큰 궁금증이었던 거 같다. 안전 확보 방안에 대한 질문들이 계속 이어졌다. 독일의 한 쉼터에서 근무하는 활동가는 “우리도 가능하다면 공개 쉼터를 운영하고 싶다”고 운을 띄우고는 “우리는 작년에 살인을 겪었다. 안전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가”라고 질문했다. 가해자에 의한 쉼터 여성 살해, 혹은 쉼터 활동가 살해는 너무 슬프고 분하게도 종종 일어난다. 발표자들은 입소희망자 리스크 평가를 한다고 답했다. 코드 그린, 코드 오렌지, 코드 레드가 있고, 코드 레드의 경우 위협이 너무 높아서 오픈 세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 때는 오렌지쉼터 근무자들 또한 그 위치를 모르는 비공개 안전가옥으로 안내한다고 한다.
백목련 : 살인을 겪었다니… 이야기만 들어도 너무 참담하고 무력해지는 기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정폭력상담소에 가해자가 찾아가 피해생존자를 내놓으라며 화풀이하다 상담원을 살해한 경우도 있었다. 위험도 판단하는 팀이 신속, 정확하게 제대로 기능하고 각 팀마다 분업이 잘 되어야 하는 모델인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체계를 꾸리기 위해서 오렌지하우스는 쉼터 규모가 클 것 같다.
수수: 또 입소인에 대한 안전의 역동을 계속 관찰한다고도 답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생활인들과의 긴밀한 협조이다. 뿐만 아니라 건물 자체의 안전성도 확보한다고 한다. 또 생활인-활동가가 ‘안전’ 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고 훈련을 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회복탄력성 훈련도 포함된다고 들었다. 안전이라는 것은 만들어가는 과정이니까, 그 과정 중에 발생하는 위험을 회복하는 훈련은 꼭 필요할 듯 하다.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다고 평가된 사람들은 오렌지하우스에 입소하게 되는데, 오렌지하우스 측에서는 입소 24시간 이내에 가해자에게 연락하여 ‘당신의 아내가(오렌지하우스는 주로 가정폭력피해여성이 입소하는 듯 하다) 오렌지하우스에 있고, 안전하며, 우리가 추후 연락할 것이다’고 전한다고 한다. 가해자에게 전화로 위치를 알린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 꽤 많은 세션 참여자들이 오잉? 하는 소리를 냈던 기억이 난다. 발표자들은 이 조치가 가해자가 분노에 차서 피해자를 찾아다니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또 피해자에게 동반자녀가 있을 경우, 자녀 돌봄을 어떻게 할 것인지 가해자와도 합의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전화를 한다고도 답했다.
백목련 : 기선제압 같은 건가? 들을 수록 신기하다.
수수: 오렌지하우스는 아파트 형태이고, 이 아파트들은 셰어되지 않는다. 입소한 피해여성들이 공동생활하는 것에 진을 빼지 않고 자신의 과정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이 말은 되게 와닿았고, 엄청 부러웠다! 한국의 모든 쉼터들은 다중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한 시설을 여럿이 이용하더라도 1인 1실이 보장되면 그나마 개인의 사생활이 보장될 수 있는데.. 이조차 어려운 현실이다. 작년에 열림터 25주년 포럼을 준비하며 다른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기관방문을 해보았는데, 다른 쉼터들도 ‘더 넓은 공간’, ‘1인 1실이 가능한 생활환경’을 바라고 있었다.
백목련 : 사회 구성원들은 점점 더 개인화되고 자율성을 보장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커지고 있는데 쉼터가 공용생활공간이기 때문에 오히려 입소를 꺼린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지금의 쉼터 체계가 변하지 않으면 피해생존자들이 점점 더 외면하는 시설이 될 것 같다. 다만 우리나라는 주택난이 심하기 때문에 주거지원시설 입주가 우선적으로 지원되지 않는 것 같다. 주거복지가 잘 되어 있으면 피해생존자들은 피해지원기관에서 적절한 지원을 받으면서 가해자로부터 보다 쉽게 주거 분리를 할 수 있을 텐데...
수수: 오렌지하우스 세션에서 또 흥미로웠던 것은 구 파트너(ex-partner)와 협업하고자 한다는 점이었다. 가정폭력피해여성들이 다수 입소하는 오렌지하우스에서 말하는 이.. 구 파트너들은 가해자들을 의미한다. 가해자들과 뭐를 협업하지??? 라고 생각했는데… 세션 발표자가 쉼터 생활인들이 구파트너에 대한 애정을 털어놓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려줬을 때 조금 ‘아하’ 했다. 열림터에서도 가해자에 대한, 그리고 자신을 비난하는 원가족에 대한 양가감정을 호소하는 생활인들이 많았다. 오렌지하우스는 가해자들을 평가하지 않고, 가해자에 대한 감정을 더 공개적으로(공개쉼터답달까) 말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이랬을 때 ‘밤에 외로움이 느껴진다면 구파트너를 부르지 말고… 언니를 부르세요!’ 같은 조언도 가능하다고..
백목련 : 가해자나 원가정과 접촉을 제한할수록 활동가를 더 불신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은 오히려 가해자와 접촉했을 경우 피해생존자가 이를 비밀에 붙이면서 더 취약하거나 위험한 상황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수수: 사례의 50% 정도가 구파트너와의 연락에 성공한다고 한다. 오렌지하우스에 가해자를 초대하는 것이다. 해당 남성이 방문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안전한 장소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대면하게 만드는 것이다. 흥미로웠던 사실은 가해남성과의 상담을 진행하자, 진행하지 않았을 때보다 더 적은 수의 여성이 가정에 복귀했다는 점이었다. 오렌지하우스 측은 이 현상을 가해남성을 만나지 못할 때 만들어졌던 환상이나 기대감이 가해남성을 실제로 만나면서 깨지고, 여성들이 스스로의 삶을 찾게 된다고 평가했다.
백목련 : 뭔가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록 더 하고 싶어지니까 더 큰 욕망에 휩싸이게 되는 것 같다. 외부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오렌지하우스에서 만나게 한다면 피해자를 돌려보내지 않거나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매우 낮아질 것 같다. 처벌불원서에 싸인하게 하진 않겠지... 자꾸 온갖 가해자와 가해지지자들의 꼼수들이 생각난다. 피곤해...
수수: 쉼터 위치를 지역사회에 공개하고,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위치를 알리고, 가해자를 쉼터에 초대하기까지 하는 이 엄청난.. 운영 방식은 사실 정말 큰 실험이다. 오렌지하우스 역시 이것이 큰 실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실험이 미칠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부단한 평가와 연구를 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세션의 1부가 오렌지하우스에 대한 개괄 소개였다면, 2부는 9년동안의 오렌지하우스 실험 평가 연구를 공유하는 장이었다.
평가 연구를 이 후기에서 자세하게 공유하기는 어렵지만, 개괄하자면.. 오렌지하우스에 거주한 이유 기존에 진행되었던 폭력이 감소함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트라우마(공포, 우울)이 감소했으며, 분노는 근소하게 감소했다. 가족/주치의로부터의 도움이 증가했고, 다른 전문적 지원(사회복지서비스로의 접근, 정신과적 지원 등)은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발표자는 이런 도움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좋은 지표인지, 아니면 적절한 도움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나쁜 지표인지에 대해서는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평가들이 세세하게, 아주 오랜 기간동안 이루어졌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정성평가와 정량평가를 병행하며, 아주 긴 기간동안의 영향을 살피는 실험은 쉽게 하기 어렵다. 그래서 또 한번, 부러웠다! 한국도 폭력피해여성 지원에 많은 자원을 활용한다면 좋을텐데.
백목련 : 열림터의 경우는 서울에 많은 자원이 집약되어 있고 열림터 활동가들이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던 자원까지 총동원하여 지원에 힘을 쓴다. 이렇게 안 될 경우 상담소의 힘을 빌리거나 다른 방법을 찾기도 한다. 타 지역도 다양한 자원을 갖추기 위해서 매우 애쓴다고 들었는데 특히 프로그램 운영이 어렵다고 들었다. 쉼터 운영은 쉼터가 근거하고 있는 지역의 특성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것 같다. 우리의 경우는 서울에 많은 자원이 집중되어 있는 문제상황을 개선하는 작업과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수수: 공개 쉼터라는 실험 자체도 흥미롭지만, 오렌지하우스 발표는 여러모로 훌륭했다. 플로어 질문도 많았다. 앞서 목련이 오렌지하우스와 지역사회의 교류에 대해 궁금하다고 물었는데, 나 역시 그 부분이 궁금했다. 큰 용기를 내서.. 질문을 했다. 발표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기관이고 무슨 일을 하는지 지역사회에 설명하고, 정보를 주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답했다. 지역사회에 오렌지하우스를 소개하자, 지역주민들이 자원활동을 하고 싶다고 먼저 제안하기도 한다고 했다. 또 1년에 두 번씩 쉼터를 오픈하기도 한다고 했다. 정말 철저한 ‘공개’ 전략인 것 같다.
백목련 : 오렌지하우스가 가능한 이유는 해당 지역이 피해 그 자체나 피해생존자에 대한 편견이 적어 지역사회와 교류가 가능하고 공권력과 적절한 협업이 가능하기 때문인 것 같다. 상세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너무 슬프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한국성폭력상담소나 열림터 모두 성폭력 피해를 개인의 비극으로 한정하지 않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차별과 혐오를 평등한 관계로 바꾸기 위해서 여러 활동을 하고 다른 소수자들과 연대하는 것이겠지! 갑자기 의지가 불타오르는 것 같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면서 사회 변화를 도모한다는 어려운 목표가 눈 앞에 아른거린다.
수수: 질의응답이 끝나고, 갑자기 발표자들이 참여자들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매우 신선한 세션이었다. ‘각자의 장소에서 공개 쉼터라는 실험이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다면 어떤 이유일까? 특정한 맥락이 있다면 어떤 접목이 가능할까?’ 라는 질문이었다. 열림터는 공개 쉼터를 운영할 수 있을까?
수수: 모든 쉼터가 공개일 수는 없겠지만, 공개 쉼터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세션이었다. 쉼터의 다양화가 필요할 것 같다. 현재 보호시설 형태는 더 세심한 보호와, 돌봄과 의존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위험에 따라 공개/비공개 쉼터를 나누고, 자립 역량에 따라 보호시설/보편주거 제공으로 지원을 다양화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폭력피해여성 지원책이 더 많아질 필요도 있고, 보편 주거 보장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백목련 : 우리가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주거지원을 하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젠더폭력 피해생존자 지원도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아유, 할 일이 천 개, 만 개야... 지금 인력으로는 쥐어짜내는 것밖에 안 될 것 같고 더 많은 활동가들과 더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참여를 해주시면 좋겠다. 물론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후원 가입을 해주시거나 증액을 해주시거나 주변인들에게 후원을 권유해 주신다면 속도가 훨씬 빨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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