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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회복

유리의 한식조리사 합격수기 첫번째 이야기~
  • 2010-11-19
  • 329

어느덧 시린 겨울이 지나고 흐지부지했던 봄도 지나 무덥기만 한, 봄도 여름도 아닌 어정쩡한 날씨의 경계선에 머무르고 있는 요즘.


날씨가 극성이라며 온갖 비난들을 봇물 쏟아내듯 쏟아내는 사람들 틈으로 환하게 웃는 한 숙녀(?) 아니, 소년에 가까운 녀석이 보인다. 뭐가 그리 좋은지 시종일관 웃음을 그치질 못하고 있으니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저 녀석이 드디어 정신이 나간건가, 무슨 장원급제라도 한건가 싶을테지만, 공교롭게도 저녀석은 정신이 나간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장원급제를 한것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고 하니 허허, 그저 답답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쪼르르 달려가서 물어본 결과. 얼씨구, 이번에 치뤄진 한식조리 시험에 당당히 합격을 했단다. 아하, 그래서 요놈의 얼굴이 그리도 좋아보였던것이구만? 응?



한식조리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는 녀석의 얼굴은 그저 새색시 마냥 생기가 넘쳐 아주 좋아보였다. 그러나 시험에 합격하기까지 마음고생이 없지는 않았을 터. 요리를 시작하기에는 비교적 어린 나이를 먹은 녀석에게 시험을 준비하고 또 합격하기까지의 얘기를 해달라고 했더니 아니, 이 녀석. 벌써부터 눈물을 글썽글썽 거려대니 이건 뭐 괜한 애 울리는 것 같아 필자는 마음이 짠하기만 하다.


어여그래, 어이고 어이고 얼마나 힘들었기에 벌써부터 눈물을 글썽대는지 그 속이야기가 더욱 더 궁금해지는건 어쩔 수가 없는것이니. 눈물을 머금고 말을 잇는 녀석을 겨우겨우 부추겨 시험을 준비하고 또 합격하고 난 이후의 심정이나 에피소드등을 기술해달라 부탁을 했다.



칼 잡는것보단 음, 잡는게 더 좋았다구요!!!


 녀석이 처음 요리를 시작하기까지는 말도 못할 정도의 마음고생을 했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처음부터 요리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싶었던 마음은 전혀 없었다는것.


그럼 뭘 하고 싶었냐고 물었더니 그 곰살 맞은 웃음을 실실 흘려대며 그저 음악이 하고 싶었단다.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 음악의 어머닌가 뭐시긴가하는 '헨델' 못지않게 강했었다고 손수 말해주는 녀석의 표정은 제법 편해보였다.


왠만큼 음 잡는 녀석들이면 다들 한번쯤은 해보고 싶어 한다는 가수가 꿈이었다는 녀석.어쩌다가 그런 녀석이 음 잡는걸 포기하고 칼 잡는걸 선택했댜?



' 어렸을 때 부터 요리하는걸 좋아해서 반찬 한 두가지 만들고, 또 이것 저것 해먹던게 밑거름이 됐나봐요. 어느 순간 보니까 저도 모르게 요리를 하고 있더라구요.


그것도 제 또래에 녀석과 달리, 할 줄 아는 요리도 많았고 또 만드는것도 너무 쉬웠어요.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면 김치전이나 김치볶음밥이나 무언가 한가지씩은 꼭 만들어서 대접했어요. 아직도 가끔 제가 만든 떡볶이나 떡꼬치가 그립다고 연락오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럴 땐 정말 기분이 좋죠 '



어렸을 때 부터 요리를 해오던게 밑거름이 됐다고 말하는 녀석의 모습은 누가봐도 그 또래의 아이보다 조금은 더 성숙한 분위기를 풍긴다고 할 수 있을정도로 의젓해보였다. 요리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까지 이런 저런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고 말하는 녀석은, 똥고집 같은 고집을 꺾지 않고 누가 뭐래도 그저 귓등으로 흘려들었다고.



' 정말 괴로웠어요. 진짜로 음악이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주위에서 요리 해볼 생각 없냐고 묻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생기다보니까 저도 모르게 거기에 귀를 기울이게 됐어요. 죽어도 요리는 안하겠다고 고집 피우다가 결국 설득당한거죠, 뭐. 하하..

제가 왠만하면 고집을 잘 안꺾는 스타일인데 이런 저의 고집을 꺾으신 분이 헌 선생님이셨어요. 제가 자꾸 고집을 피우니까 선생님도 답답하셨던건지 정말 현실적으로 생각하게끔 상황을 만들어 주시더라구요. 그 시간만큼 괴로웠던 시간도 없었던것 같아요.


근데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게 아닐까 싶어요. 지금에서야 이렇게 마음 편히 웃지만 그때는 정말 괴로웠어요. 솔직히 말하는거지만 그때 저에게 요리해보자고 권하셨던 선생님께 항상 감사한 마음 가지고 있어요. 만약 그때 끝까지 고집부리고 보컬 하겠다고 했으면 지금 제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하하.. '


요리도 어렵다.....


요리를 시작하게 된 녀석은 처음 두달 정도 요리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집에서 하는거 없이 팽팽 놀다가 학원을 다니게 되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고.



' 백수가 따로없었죠. 학원을 다니기 전 까진. 요리 한다고 선전포고와 같이 말 한마디 딱 던져놓고 하는거라곤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뭔가 세상을 더 넓게 보게 된거죠. 생각하는 힘도 기르게 되고. 아, 학교를 벗어나서 사회에 발을 들이는게 왜 어려운지 알겠구나 하는 생각이 수시로 들만큼 몸도 마음도 정말 지쳤던것 같아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면 학원가서 하루에 4가지씩 한식요리만 배웠어요. 처음엔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괴로웠고. 괜히 어설프게 시작했다가 이것도 저것도 안되면 난 어떡하나. 이런 미련한 생각만 하면서 하루를 보냈죠. 정말 바보처럼.


학원에 같이 수업듣는 다른 사람보다 필기시험을 더 늦게 봐서 뭔가 뒤쳐지는 듯한 생각이 자꾸 들어서 괴로웠던것 같아요. 그냥 집에서 하는 가정요리 비슷하겠지 하고 갔는데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거에요 막 센치 다 재가면서 요리 만들어야하고.

그래서 아, 진짜 요리도 쉬운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사회생활 하는 방법도 배우게 됐다는 녀석.

칼질하랴, 사회생활 배우랴 힘들기도 무척 힘들었겠수.

그랴, 칼질은 우째 배웠대?



' 칼 잡는거 두려워 하는 애들이 주위에 있었어요. 보면 막 칼질하는거 무섭다고 가위질 하고. 근데 전 이상하게 칼질하는게 두렵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손도 자주 베었나봐요.학원 다니면서도 손을 슥슥 베어와서 허구헌날 밴드 붙이고 있고 원래 손을 잘 베는 스타일이에요 나중에 학원 졸업하고 나서도 집에서 한식시험 준비하면서 손 몇번 베었었어요. 그러다가 결국 파상풍 주사까지 맞으러갔죠. 하도 베어대니까 그러다가 진짜 무슨일 일어날까봐 하하. '


기다려라, 내가 간다 한식아~~


시험을 두번 본 끝에 합격했다는 녀석은 쑥스러운지 몸을 베베 꼬며 옅은 웃음을 띈 채 시선을 어디에다 둬야할지 모르는듯 했다. 아 그라고 칼질을 겁없이 잘 한다믄서 왜 한번에 딱 못 붙고 떨어졌댜? 너무 잘혀서 감독관들이 일부러 떨어뜨린거 아녀?



' 사람이 참 웃긴게요, 처음엔 막 겁먹고 이러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마음이 엄청 느슨해진거에요 그래서 아, 우선 한번 보고 떨어지면 또 보자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요.

그래서 학원 졸업하고 나서 바로 시험 안보고 좀 있다가 시험을 봤어요. 집에서 연습하고 좀 됐다 싶을 때 볼려고 일부러 늦췄는데 그건 다 변명이에요.


막상 연습할려고 하면 진짜 독한 맘 없이는 연습하는게 쉽지가 않아요. 그리고 한식요리가 51가지라서 하루에 4개씩 해도 거의 두달 가까이 걸리는데 매일 매일 연습한다고


부지런 떨 제가 아니라서 하하... 연습을 하는냥 마는냥 그저 그렇게 설렁설렁 연습했던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 시험보기 하루전에 레시피 죽어라 보고. 그런다고 붙나요? 당연히 떨어지죠. 6점차이로 떨어졌었어요. 그땐 진짜 뭐랄까 창피한거 그런것 보다는 오히려 덤덤했어요 떨어질거 알고 봤다고 해야하나?


첫번째보다 두번째가 더 떨렸던것 같아요. 왜냐면 첫번째에는 그냥 떨어져도 처음이니까 이러면서 넘어갈수 있는데 두번째는 그런게 없잖아요 '


첫번째 시험을 봤을 땐 호박선과 육원전이 나왔단다.

호박선이라 함은 호박 사이사이에 칼집을 내서 그 칼집을 낸 공간에 표고버섯이며 당근이며 소고기를 끼워 넣어 찐 다음 겨자장에 곁들여 먹는 깔끔한 음식이라고 한다. 육원전은 두부와 소고기를 적절히 치대서 동그랑땡처럼 지져서 먹는 음식이라고.


한번의 고배를 마시고 두번째 시험을 준비할 때의 그 심정은 춘향이가 이몽룡을 보냈던 그 마음보다 더 쓰리고 아주 속이 타 들어간다고.



' 징하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는 막 진짜 돌겠더라구요. 한식이 지겨워질 정도로 책을 보고 또 보고 레시피도 다 뽑아서 다시보고 또 보고 메모도 하고 진짜 열심히 했던것 같아요. 이번엔 진짜 붙어야지 그런 생각하면서 특별히 과외까지 받아가면서 죽어라 했죠. 그 때 이런걸 느꼈어요. 선생님을 잘 만나야 제자도 크는구나...


학원에서 배웠을 땐 그렇게 어렵던 요리들이 과외 선생님한테 배울 땐 너무 재밌고 시간 가는줄 모르게 진짜 그정도로 푹 빠져서 배웠거든요. '



-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