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소식지
나는 ‘열림터 활동가’ 백목련입니다.
백목련
누가 자신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겠느냐만은 여성단체 그중에서도 쉼터 활동가가 되는 것은 전혀 계산에 없던 일이었다. 아직 학생일 때 학교 선배이자 상담소 전 활동가인 토리가 내게 열림터 활동을 제안하면서 앞으로 십대와 만나는 활동에서 열림터 경험이 매우 소중한 자산이 될 거라고 했다. 나는 그때 아주 몸서리를 치며 거절했다. 열림터 생활인과 개별 성교육을 하고 있긴 했지만 열림터 생활인들에게 혹시나 상처를 줄까봐 무리한 부탁도 잘 거절 못했었고 까칠하고 다른 사람과의 경계가 아주 분명한 나로서는 생활인들을 대하기가 부담스러웠다.
열림터에서 활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은 건 그 이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십대 성교육을 한지 5년차쯤 되었을 때, 교육의 대부분이 일회기여서인지 십대들도 나를 대화는 좀 통하지만 스쳐지나가는 그저 그런 사람쯤으로 여긴다고 느껴졌다. 나도 내가 떠난 이후로 이 사람들이 어떤 고민과 변화의 과정을 거치는지 알 길이 없어 교육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나에게 인공호흡을 해준 건 청소년쉼터와 대안학교에서 반 년 정도 십대들과 보낸 성교육 시간이었다. ‘어디 한 번 해봐’ 혹은 ‘나는 별로 관심 없는데’라고 나를 기선제압하려는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가 들리게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나에게 나름 궁금한 걸 물어보고 내 사생활도 캐고 싶어할 만큼 관계가 개선되었다.
수업 전후로 담당교사와 사례관리자들과 ‘00이는 이래서 아마 저랬을 거’고 ‘★★이와 ◎◎이 사이를 고려하면 이렇게 하면 어떨지’ 같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업만으로는 가까워지기 어려운 나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격무에 시달리는 담당교사와 사례관리자가 부러웠다. 앞으로 계속 이 현장에 있어야 하나 고민을 언뜻 하고 있을 때 열림터 채용공고가 났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지레 겁도 먹었지만 예전에 누가 ‘(오래 보는 관계는) 지지고 볶는 재미가 있답니다’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채용도 되기 전에 퇴사를 질렀고(응?) 초조한 시간 끝에 나는 열림터 활동가가 되었다.
처음에는 엔돌핀이 마구 마구 솟아 올랐다. ‘생활인들은 내 진심을 알아줄거야’,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어야지’, ‘지금의 내 수고와 노력이 생활인들에게 분명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거야’ 같은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쓰고 보니 내가 그 당시 왜 그렇게 일희일비하고 내가 열림터 활동가로서 적합한 사람인지를 왜 매일 괴로워했는지 알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상상 속의 열림터는 입사 한 달 만에 와장창 깨졌다. 생활인이 안 될 일을 자꾸 벌여서 이래저래 자르고 방향을 틀다보니 내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오해하기 시작했고, 내가 애써 공들여서 뭘 해놓아도 그걸 발로 차버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생활인들이 밉고 야속했다. 사고치고 돌아온 생활인과 면담 전에 ‘니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며 길길이 날뛰기도 했다.
생활인도 나도 야생동물일 때 나를 붙들어 놓고, 당시 함께 활동했던 미헌쌤이 ‘그건 네 욕심’이라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지금 최선을 다하는 건 내가 나중에 후회할 여지를 줄이기 위해서이지 생활인이 그 노력까지 알아주길 바라는 건 결국 내 욕심에 상처받고 화풀이를 생활인에게 하는 것과 똑같다고 말이다. 그렇다, 과잉은 늘 문제다. 내 과도한 기대와 애정은 나와 생활인 모두에게 불행이었다. 이제는 투입이 있을지라도 결과는 미미하거나 아예 더 못해질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난 정말 열림터 생활인들 덕분에 많이 큰데다 점점 사람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때로는 생활인들과 티키타카하며 잘 지내도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외롭게 할 때도 있다. 내가 열림터에서 일한다고 하면 ‘너무 힘들겠다’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고 열림터 활동가를 밥 주고 재워주는, 아무나 할 수 있는 하찮은 일을 하는 여자들쯤으로 하대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생활인들이 피해 경험을 했다 뿐이지 다른 십대나 또래 성인들과 비슷하게, 좋을 땐 좋고 싫을 땐 싫고 심심할 땐 또 심심하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트라우마를 호소한다면 병원에서 안정하고 있겠지. 아니, 성폭력 피해는 무조건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고통만 떠올리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생활인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대부분 사람들의 악의 없는 편견이다. 그리고 돌봄 노동은 왜 이렇게 맨날 무시를 당하는지 모르겠다. 늘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았던 사람들은 돌봄 이면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이 스며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어느 드라마 주인공이 했던 것처럼 도무지 돌봄 노동자를 존중할 줄 모르니 이 일이 얼마나 수고로운지 알게 컵라면만 주구장창 먹일까보다!
곧 있으면 만 2년차 활동가가 된다. 아직도 종종 ‘생활인들은 왜 그래?’ 같은 하등 쓸모없는 질문을 할 때도 있고 내 의사가 너무 분명한 바람에 생활인들이 눈치를 보기도 하지만 아직은 이 자리가, 이 공간이 좋다. 너무 피곤한 일들이 많아 골이 울리다가도 생활인들과 수다 떨며 꺄르륵 웃고 나면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굳이 침대 옆자리를 비집고 들어가서 나랑 놀아달라고 약 올리는 것도 재밌다. 아프다고 징징대면 기꺼이 숙직방으로 밀어 넣어준다. 생활인들과 너무 가깝게 지내서 그런지 나도 생활인하고 비슷하게 생각하고 비슷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앞으로 일희일비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리고 우아한(생활인들이 벌써부터 비웃는 소리가 들린다) 열림터 활동가 백목련이 되고 싶다. 여러분, 제가 오래 열림터 생활인들과 지낼 수 있게 함께 고민하고 함께 후원배가해요! (으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