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소식지
열림터를 궁금해하시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그 어떤 의지도 꺾을 것만 같던 더위가 가시고 갑자기 가을이 되었어요. 저녁 7시만 되어도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면, 새삼 제가 아직 가을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도 한결 선선해지니 움직이기도, 생각하기에도 좋네요.
열림터에는 요즘 요리와 집밥먹기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냉장고는 절대 열어보지 않고, 오로지 편의점 음식만 고수하던 시절은 갔습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식재료와 음식들을 보며 활동가들은 즐거운 당혹감을 느끼고 있어요. ‘새우랑, 올리브유랑, 핫케이크가루, 그리고 고구마도 필요해요.’ 서로 원하는 음식 재료를 사기 위해 함께 장도 봅니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요리 실력을 뽐내고, 집에서 밥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함께 식사를 하며 모두 같이 ‘열림터 식구’가 되어갑니다.
퇴소한 생활인들, 또우리들과의 교류도 이어지고 있어요. 다가오는 추석을 맞아 또우리에게 명절맞이 선물세트를 발송했습니다. 샴푸, 스팸, 소세지, 영양제 중 원하는 것을 하나 고르면 열림터가 발송했어요. 약 마흔 명의 또우리들이 신청해주었습니다. 선물세트를 신청하며 ‘추석에 혼자 있는 느낌이 없어질 것 같다. 열림터의 많은 분들과 기쁜 마음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는 코멘트를 남겨준 또우리도 있었어요.
열림터가 선물을 주기만 하진 않습니다. 선물을 받기도 한답니다. 얼마 전 한 또우리가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열림터 활동가들에게 밥을 한 끼 대접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세상에, XX가 밥을 사준다니! 따스한 마음만 받고 거절을 해야 할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얻어먹고 열심히 덕담을 해줄지... 고민하다 후자를 택했습니다. 지원자가 주는 역할, 피지원자가 받는 역할을 하는 것만도 아니지요. 서로 밥을 사주기도 하고, 서로 조언과 격려를 해주기도 하고, 서로에게서 배움을 얻기도 하니까요. 활동가와 생활인은 지원자와 피지원자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사실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마음을 쓰는 사이기도 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이 자리를 빌어 그 밥이 참 맛있었다는 것, 제가 그 맛있는 밥을 얻어먹었다는 것을 수줍게 자랑해봅니다.
다시 지금의 열림터 얘기로 돌아와봅니다. 누군가는 입시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학교 입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모두 상당히 스트레스 받는 일이지만 우리가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어요. 같이 밤을 지새워보기도 하고, 수다도 떨고, 티격태격해보기도 하고, 밥도 만들어 먹으면서요.
왜인지 밥 먹는 얘기로만 편지를 가득 채운 것 같네요.
그런 김에 이 편지를 읽는 모두들 오늘 맛있는 식사 한 끼 하시길 바라요.
늘 고맙습니다.
열림터 활동가 수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