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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소식지

[나눔터] 내가 만든 악몽
  • 2022-12-18
  • 1470

나눔터 90호 I 햇님

또우리* ‘햇님’이 자신을 위로하며 쓴 글입니다. 밤 산책을 하며 담아준 사진과 시도 나눠보아요^^

* 상담소와 열림터에서는 쉼터에 머물렀던 전 생활인을 ‘또우리’라고 부르고 있어요. ‘또 만나요 우리’라는 의미입니다.



마음을 들여다볼 힘과 의지가 있다는 건 희망의 끈을 놔버리지 않은 걸까? 나는 모든 일을 잘하고 싶다. 하루가 지날수록 나아졌으면 좋겠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 한번 겪은 불행이나 실수는 스스로 용납하는 것은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나 자신한테 증명하기 위해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 행복을 증명하는 웃음과 말들을 했다. 하지만 나는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거짓된 나의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주저앉는다.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크면 클수록 마음이 쪼그라들어 있는 그대로의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때가 허다하다. 잘 지내려 할수록 잘못 지내게 되는 모순 같다. 앞으로 걸어 나가고 싶지만, 뒷걸음질만 치게 되는 아이러니한 순간들이 반복된다.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일이 점차 줄어들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세상과 타인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갔다. 주변을 잊어가면서 내 마음은 점점 편해지고 있다. 타인에 대해 지나치게 불안해하던 나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착각하고 오해하고 비교하며 나를 탓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사회와 주변 시선들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있어서 편안하다.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포기하며 타인의 눈빛과 표정을 무시했다.

그렇다. 난 그동안의 삶을 평가받기를 원했다. 칭찬과 사랑에 목이 말라 있었다. 그래서 예전의 난 타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 칭찬받기 위해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던 것이다. 비난받지 않고 누구와 비교를 당해도 나에 대한 죄책감은 생기지 않았다. 나의 의지로 했던 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원망하지 않아도 탓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난 나를 평가하고 싶지 않았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하지만 인정받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인정받을수록 예민했었고 스스로 평가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자신을 깎아내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모르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지나치게 예민하여 오해할 때도 많았었다. 오해라는 것을 인지하고 알면서 나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이유 하나로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나를 다그쳤다. 내가 만든 악몽이었다. 나의 바람과 목표는 잘 사는 것, 행복해지는 것, 편안해지는 것이지만 하루빨리 이루어내기 위해 나를 괴롭게 만든 것이었다.

잠시 잠깐 고통을 받아들이기 싫어 시간이 지나 나 자신을 무너트릴 수도 있는 더 큰 고통의 짐을 들려준 것이다. “나중 일은 그때 가서 이겨내야지”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나는 및 바닥의 나를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다. 또 한 번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불안을 잘 느끼는 사람이다. 끼니를 먹을 때마다 먹기 전 메뉴 선정하는 데 몇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선택하지 못하여 끼니를 먹지도 못할 때도 있다. 이유는 맛이 없어 후회하게 될 상황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보곤 자기주장이 없다며 나를 깎아내리는 사람, 자아가 없다는 사람 등 나에 대해 부정적으로 해석하여 기분 상하는 말들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나에겐 불안은 장점이었다. 신중하게 고민하고 선택한 끼니는 만족스럽게 먹었기 때문이다.

나의 불안은 어디서 왔을까? 어릴 적의 나의 환경은 눈치를 안 보고 싶어도 안 볼 수가 없었다. 내게 집이라는 공간은 불편한 불안을 키우는 집이었고 학교는 주변을 살피고 방어하기 위한 불안을 키우는 공간이었다. 내 삶에선 편안한 공간이 없었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나를 방어하기 위해 불안을 느꼈던 것이었다. 나는 쓸데없이 불안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불안이란 감정을 느낀 것이고 그런 상태가 오래되다 보니 익숙해진 것이다.

밤 산책 © 햇님


캄캄한 밤이 되면 두렵지만 확실하지 않은 나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간다. 캄캄한 밤이 되면 나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해진다. 주변이 조용해지며 잠을 자기 위해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온갖 생각들이 든다. 이 시간은 두렵지만, 이상하게 재밌는 순간들이 생긴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앞으로의 계획의 틀을 잡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해석하기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불안이라는 감정을 이용하여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도 불안으로 인해 실패할까 두려워 도전을 안 할 수도 있지만 난 불안을 이용해 많은 일을 도전하고 있던 것이다.

밤 산책 © 햇님 

그 아이


어두운 밤은 불행 같대

앞이 너무 깜깜해서

앞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대

하지만 빛을 보고 싶은 그 아이는

확실하지도 않은 손을 부여잡고

어둠을 뚫고 나가려고

발버둥 치고 있더래

 
 

🌿

<열림터 다이어리>는 연 2회(1월, 7월) 발간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회원소식지 [나눔터]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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