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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소식지

[나눔터] 자립에 대한 환상과 실체
  • 2022-12-18
  • 1305

나눔터 89호 I 은서


2019년 5월 처음 열림터를 나가 자립하게 된 날, 그날 나는 누구보다 개운 하고 홀가분했다고 자신할 수 있다. 열림터에 살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자립보다는 자유롭지 않은 규칙때문에 힘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열림터에 들어오기 전까지 대학 생활을 하며 자취를 했었기 때문일까. 열림터 생활에서 많이 울고 힘들었었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것은 결국 돈 문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축이라는 제도가 굉장히 유용하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 버 는 돈의 70%를 저축하면 100만 원을 번다했을 경우 30만 원이 남는데 이 돈 으로 한 달을 생활하는 것은 놀기를 좋아하던 나에게 굉장히힘든 일이었다.


그것 말고도 사람과의 마찰, 통금과 외박 제한 등 생활인을 지키기 위한 수칙이 나에게는 전부 압박으로 다가왔다. 결국 열림터에서 편의를 봐줘 대학을 다닐 한 학기 동안 열림터에서 더 살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립을 하였다. 그 당시 인간관계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즉흥적으 로 자립을 다짐하게 되었고 그 무렵부터 부동산 앱을 설치해 자취방을 직접 알아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은 법. 가지고 있는 예산으로는 반지하 방 한 칸도 얻기 힘들었다.

간절히 원하면 다른 방법이 나타나는 것인지 마침 어머니와 동생이 사는 한부모보호시설에서 나의 입소를 받아준다고 하였고 결국 나는 시설을 옮기는 식으로 자립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부모보호시설의 경우 원룸에 한 가 족이 사는 형식이었고 통금시간과 약간의 저축 규제만 있고 열림터보다 굉장히 자유로웠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만족했지만 결국 완전한 자유시간을 원했던 나는 그 시설에서도 독립하고 학교 근처 자취방을 얻는 수순을 밟았다.한 학기단기로만 계약을 원했기에 같은 집이라도 더 비싸게 계약을 했다. 그 당시 나는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5만 원 관리비 5만 원 집을 7개월 계약하게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모아둔 돈이 매우 빠른 속도로 사라지게 되었다.알바를 했지만 매달 적자가 났다. 학교에 다니면서알바를 했기 때문에 주말 알바 2건과 평일 알바 1건을 뛰어 한 달에 150만원 수입이 생겼다. 그러나 우선 월세와 관리비로 50만원이 빠져나가고 보험비 20만원 휴대전화 요금 8만원 같은 고정수입만 제외하면 한 달에 72만원이 남았다. 72만원이라 고 적으면 굉장히 큰돈 같지만 매달 식비, 학교 재료비, 교통비, 생필품비 등 을 제외하고 나면 몇십만 원 정도가 남았다. 열림터에서 나와 자유롭게 놀고 사고 싶은 것은 다 살 수 있는 자립을 꿈꿨던 나로서는 굉장히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유로운 시간이 생겼으나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돈이 모자랐던 나는 결국 저축된 금액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축된 금액도 한계가 있는 법. 결국 나는 남는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더 하면서 살 아가기 시작했는데 이는 결코 자립 후에 내가 꿈꾸는 삶에서 생각하는 장면은 아니었다. 물론 시설에 들어오기 전에 자취 경험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돈이 많이 들어가리라 생각했지만, 그때와 다르게 변한 내가 쓰는 씀씀이라는 변수를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생활인의 경우 어땠을지 모르지만 나는 시설 에서 돈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저축을 하고 아껴 써야 했던 상황에서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랬기에 나와서는 그런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쓰고 싶을 때 돈을 쓰려고 다짐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터무니없는 다짐 이었는데 그때 만들어진 소비 습관 때문에 아직도 고생을 하는 현실이다. 여기까지 글을 쓰면서 내가 다른 생활인, 혹은 쉼터에서 사는 분들께 하고 싶 은 말은 자립 후에 현실이 절대 행복하지만은 않고 오히려 힘들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지금 쓴 상황을 혹시 알고 있을 수 있겠지만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직접 겪는 현실은 매우 다르며 열림터에서 사는 기간동안 되는 한 최대한 저축을 해서 미래를 대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까지 돈으로 인한 문제에 대해서 적었지만 사실 자립 후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정신 건강이었다. 열림터에 들어온 생활인들은 모두 각자의 피해가 있을 것이다. 그 피해는 결코 열림터에 사는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치료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삶에서 굉장히 오랜 기간동안 피해 사실로 인한 스트레스와 정신 건강은 결국 길면 평생 짧으면 몇 년은 자신을 따라다 닐 것이다. 열림터에 있다면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므로 다른 상황보다는 쉽게 자신의 아픔을 내보일수있는 한편 자립을 하고 나서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자립 후 나의 경우 피해와 관련해 계속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정신이 피폐해졌을 때 오랫동안 같이 일한 직장 동료에게 나의 피해 사실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일을 들은 직장 동료는 그러한 일이 실제로 있을 수 있는지, 그럼 왜 네가 가해자와 같이 술을 마셨는지 등의 2차 가해가 이어졌다.

물론 그 직장 동료가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님을 알지만 믿었던 직장 동료조차 그런 반응을 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시설에 서 나왔다고 한들 나는 여전히 정신과를 꾸준히 다니며 정신과 약을 챙겨먹는 사람이었고 트라우마에 마주치거나 감당할 수 없게 많은 스트레스를 마주하면 다시 세상을 등질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이럴 때 열림터에 있었더라면 적어도 극단적으로 안 좋은 행동은 하지 못하게 막히고 또한 너무 힘들면 정신병원에 가게 되는 등 조치가 취해지지만, 자립하고 혼자 있는 상태일 때 이런 상황이 찾아온다면 어떠한 조치도 받을 수 없다. 한마디로 온전히 나 혼자서 이러한 아픔을 견뎌내야 하는데 실제로 독립한 같이 살았던 생활 인들도 이런 상황이 빈번히 찾아온다. 또 자해를 하는 등 좋지 않은 방법으 로 그러한 힘듦을 풀어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경우 그러한 상황이 찾아오면 거의 술을 먹으며 잊으려 애썼는데 그 결과 나는 내가 생각해도 알코올 중독의 조짐이 보이는 사람이 되었고 알코 올성 지방간이라는 병을 얻게 되었다. 그렇기에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 신건강을 다루는 것이 생각보다 매우 매우 힘들기 때문에 자립하고 나서도 정신과를 꾸준히 찾아가 약을 계속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굉장히 힘들고 자살 시도를 하기 직전 혹은 자살 시도를 했을 때기억 으로 되돌아가 본다면 항상 그때의 나는 정신과를 꾸준히 다니지 않고 있었 고 약 또한 먹지 않았던 상태였다. 물론 정신과를 꾸준히 다니고 약을 챙겨먹는다고 드라마틱하게 상황이 나아지고 좋은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약을 챙겨 먹지 않고 정신과를 다니지 않는다면 위험한 상황에 부닥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꼭 알아두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자립 을 하고 나서도 너무 위험한 상황에 부닥친다면 국가기관이든 혹은 열림터 에 다시 연락해서 도움을 구하든 해서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한다. 지금은 나는 꾸준히 약을 먹으며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기적으로 우울한 감정에 깊게 빠져들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은 적극적으로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 다니던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아 약을 조정하고 너무 힘든 생각이 든다면 국가기관이 운영하는 곳에 전화를 걸어 볼 수도 있다. 또한 주위에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말고 주위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립을 하면 분명히 새로운 길이 펼쳐지고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기쁜 일도 많겠지만 분명한 것은 힘든 일과 슬픈 일도 많다는 것 이다. 자립의 환상을 가지고 그 뒤에 숨은 단점을 못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이러한 글을 쓴다. 열림터의 생활인들이 혹은 생활인이었던 사람들이 모두건강한 삶을 살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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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터 다이어리>는 연 2회(1월, 7월) 발간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회원소식지 [나눔터]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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