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림터
  • 울림
  • 울림
  • 열림터
  • ENGLISH

공지/소식지

[후원자 인터뷰] 상담소는 결국 사회 안전망을 만드는 일을 하는 곳이라 생각해요 / 제연 후원자님
  • 2025-10-25
  • 103


이번 인터뷰는 열림터 뉴스레터의 작은 실험에서 시작됐습니다. “열림터와 커피 한잔해요!”라는 제목으로 구독자님들을 초대했고, 뉴스레터에 연결된 롤링 페이퍼에 댓글을 남겨주시면 연락드리겠다고 했지요.

 

예상대로 제목 덕분에 많은 분들이 열어보셨고(올해 최고의 오픈율!), 즐겁게 읽어주셨습니다. 다만 댓글을 직접 남기시는 일은 주저하셨던 것 같아요. 그중 단 한 분! 용기 내어 댓글을 남겨주신 후원자님이 계셨습니다 .

 

오늘의 주인공, 제연 후원자님입니다.

✨✨✨🌞✨✨✨

 

 제연 후원자님을 만나러 가는 길

 

1. 자기소개

상아🐶 먼저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제연😸 안녕하세요, 역삼동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 제연입니다.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고, 요즘은 근무 시간을 줄이는 데 관심이 많아요. 점심시간에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오셔서 인터뷰해 주시다니 칙칙한 회사 생활의 단비 같은 시간이네요.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고, 영광입니다.


 


2. 기부 계기

상아🐶 댓글에 세상의 많은 폭력과 어려움 중 제가 가장 먼저 신경 쓰고 힘이 되고 싶은 게 성폭력이라서 한국성폭력상담소에 기부하게 됐다라고 써주셨어요. 특별히 성폭력 문제에 마음이 쓰이게 된 이유가 있었을까요?

 

제연😸 대학 때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성차별을 직접 보고 겪으면서, 그 가장 극단적인 형태가 성폭력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기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열림터를 선택한 건, 비리나 의혹이 없는 단체라는 확신이 있어서였어요. 제가 공시 자료를 엄청 찾아봤거든요.(웃음)

 

감이🫎 저희 정말 투명하죠. 공시를 찾아보고 투명성 때문에 후원을 해주시는 분들이 계신다고 재정 담당 활동가들에게 꼭 얘기해줘야겠네요. 상담소와 열림터에 기부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가장 크게 떠오른 생각이 있으세요?

 

제연😸 사실 좋은 일이 있었거든요. 저는 좋은 일이 있거나 일이 정말로 안 풀릴 때마다 기부를 한 번씩 해요. 이번에도 좋은 일이 생겨서 축하의 의미로 기부했어요.

 

상아🐶 좋은 일이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연😸 제가 상 받았거든요. 아주 소소한 상이지만 상을 받은 기념으로. 이제는 평생 상 받을 일이 없을 줄 알았어요.

 

감이🫎 이젠 정말 상 받을 일이 없죠.

 

상아🐶 맞다! 감이 훈장 있잖아요. 훈장!

 

제연😸 아니! 훈장이요? 대단하세요.

 

감이🫎 훈장은 아니고 아름다운 세월상이라고... 상담소에서 10년을 근속하면 주는 상이에요.

 

제연😸 10년 근속... 아름다운데요?

 

감이🫎 근데 그 상을 제가 슬프게도 못 받았죠. 올해가 10년이었는데 상담소에서 쉼터로 로테이션해서... 이게 상을 주는 곳이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인데 쉼터는 시설협의회 소속이거든요. 그래서 올해 소소하게 저희 원장님이 케이크 사주고 했어요.

 

제연😸 아 따로 운영되는군요.

 

감이🫎 그 상도 못 받아서 상 받을 일이 없어요. 정말 제연님 대단하세요!

 

상아🐶 지난 인터뷰 진행한 후원자님도 좋은 일이 생기거나 뭔가 소망하는 일이 생기면은 그 사람 이름으로 후원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들 이름으로 한다든지 딸 이름으로 한다든지.

 

제연😸 많이들 그러는 것 같아요. 일종의 기복 신앙인가 봐요. 후원하면서 복을 기원하는~

 

 


3. 제연님의 라이프스타일

상아🐶 저희 열림터를 후원해 주시는 후원자분들의 삶과 에너지도 꼭 소개하고 싶어요. “열림터 후원자들이 이렇게 멋지고 유쾌하다!”를 보여주고 싶거든요. 제연님은 어떤 삶을 살고 계신가요?

 

제연😸 요즘 제가 인생에서 네 가지에 시간을 쏟고 있어요. 몇 년 전에 전통 자수를 배우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완전히 빠져서 지금 몇 년째 회사 퇴근하고 나면 거의 자수만 해요. 그리고 또 책 읽고, 고양이 키우고, F1이라는 스포츠를 봐요. 그렇게 딱 네 가지로 심플하게 살고 있습니다.

 

상아🐶 전혀 심플하지 않아요. 전통자수와 F1이라니 놀라운 조합! 게다가 F1은 완전 고자극 아닌가요?

 

감이🫎 안 그래도 어제 운영위원회를 해서 운영위원장님을 만났는데 이번에 헝가리에 가서 F1을 직관하셨대요.

 

제연😸 정말 만나보고 싶어요. 제 주변에 진짜 아무도 안 보거든요. 실친들이 좀 봤으면 좋겠는데....

 

감이🫎 제연님은 어떻게 F1을 보게 되셨어요?

 

제연😸남편이 오토바이 경주를 좋아해서 남편이 그걸 보고 저는 옆에서 자동차 경주를 보기 시작했는데, 거기에 엄청 잘생긴 선수가 있거든요. 그렇게 덕질이 시작됐죠..

 

상아🐶 어머 역시..

 

제연😸 얼굴이 최고다.

 

상아🐶 그럼요. 아름다움이 중요하죠... 아름다움이...

그래서 전통 자수와 아주 현대적인 스포츠를 좋아하시는데.. 전통 자수 자랑 좀 해주세요.

 

제연😸 자랑 좀 해도 될까요? 지금 제 작품이 한국 공예박물관에 있답니다.

 


 

 제연 후원자님의 작품 - 박쥐석류문 수보 (출처: 제연님 인스타그램 / 섬네일도 제연님 작품이랍니다.)


상아🐶 어머 정말요? 아니 인간문화재이신 거예요?

 

감이🫎 어머!

 

제연😸 저는 갈 길이 멀었고요. 저희 선생님의 선생님이 문화재이시고. 근데 자랑 좀 해야지.. 제 주변에 이걸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자랑 좀 해야겠어요.

 

상아🐶 아니 제가 다 자랑스러워요. 어머어머 너무 화려하다~!!

 

제연😸 정말 멋지죠! 제 인생의 기쁨이에요.

 

상아🐶 진짜 기쁘시겠어요. 이게 정말 손끝이 야물어야지 할 수 있지 않아요?

 

제연😸 아니 저는 정말 똥손이에요. 근데 제가 원래 취미 부자여서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다 실패했어요. 너무 재능이 없어서. 거의 마지막으로 원데이 클래스나 한번 들어봐야겠다 하고 갔는데 제가 자수를 잘 하는 거예요. 정말 놀랍게도! 원래 바느질도 잘 못하는데.

 

감이🫎 이게 실이 유난히 되게 가늘지 않아요?

 

제연😸 맞아요. 실이 다 비단실이어서 단가도 꽤 나가고...

 

상아🐶 어우 취미 이상이네요. 진짜 이렇게 작품을 딱 완성하고 나면 정말 뿌듯할 것 같아요. 너무 아름다워요!

 

제연😸 뿌듯하네요. 아무도 이렇게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상아🐶 자랑하러 저희 상담소로 오세요.. 다음번에는 회원분들 취미 자랑 대회 이런 것도 주최해야겠다.

 

제연😸 인터뷰가 참 좋네요.. 이렇게 칭찬도 듣고 ㅋㅋ

 

상아🐶 저희 후원자님들은 이렇게 힙하고 멋진 분들이랍니다??

 



4. 뉴스레터

상아🐶 열림터 뉴스레터를 즐겁게 보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글이 있으신가요?

 

제연😸 서툰살이뉴스레터를 잘 봤어요. 그중에서도 내 한 몸 편히 누일 수 있으면 되는데라는 글이요. 시설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잖아요. 보통 어떤 사건이 해결되면 해결된 걸로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 이후의 삶이 더 힘들어요. 생활인분들이 열림터를 나온 뒤의 이야기가 항상 궁금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감이🫎 이런 피드백을 들으니까 너무 좋네요. 저희가 정말 공들여서 만든 뉴스레터인데, 구독자가 적어서 속상했어요. 그래서 업무 시간에 자료 찾아보다가 우연히 다시 읽고는 자화자찬하곤 해요.

 

상아🐶 와~ 우리 진짜 잘 만들었다! 이러면서~~

 

제연😸 아 정말요? 구독자가 적었구나... 외부인들은 쉼터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조금 낯설 수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특성상 개인 정보를 드러낼 수도 없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쓸 수도 없고 하니까. 읽어보면 무슨 일이 분명 있는 것 같은데 또 그게 뭔지 잘은 모르겠고. 하지만 분명 필요한 이야기들이죠.

 

감이🫎 맞아요. 저희가 딱 고민하는 게 그거거든요. 같이 알리고 싶은 일이 있는데 개인의 정보를 쓸 수는 없고. 그럼 이걸 어떻게 충분히 알릴 수 있을까.

 

상아🐶 그래서 저희끼리 읽고 저희끼리 좋아해요.

 



5. 후원의 의미와 경험

상아🐶 “단 한 명이라도 치유될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제연님께 후원은 어떤 의미인가요? 후원 과정에서 오히려 제연님 스스로 힘을 얻는 순간도 있으셨나요?

 

제연😸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제가 좋은 일이 있거나 운이 안 풀릴 때 후원한다고 했잖아요. 근데 정말로 신기하게 기부하고 나면 좋은 일이 생기는 것 같아요. 나쁜 일도 없어지는 것 같고요, 그래서 나한테도 좋고 남한테도 좋은 일이 후원이지 않을까!

 

그리고 사실 사람 일이 한 치 앞을 모르는 거잖아요. 지금 내 인생에 아무 일이 없어도 당장 오늘 집에 가다가도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는데 상담소 같은 곳들은 결국 사회 안전망을 만드는 일을 하는 곳이라 생각해요. 나중에 혹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일종의 보험을 들어놓는,  대비를 하는 거죠.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에서 이 사람과 내가 지금 다른 처지에 있는 것 같아도 인생을 길게 놓고 보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스스로를 지켜서 잘 살아내고 생존하고 싶은 마음은 다 똑같으니까요.

 

감이🫎 너무 공감돼요. 정말 언제 어떤 일이 누구에게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이잖아요. 저희가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을 하지만 상담소에서는 되게 다양하게 취약한 사람들, 차별받는 사람들과 같이 반차별 운동을 계속하고 있어요.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 서로가 다 연결되어 있고, 차별이든 행복이든 다 연결되어 있어서 나만 좋다고 하는 일도 없고, 너만 잘못되는 것도 아니고 다 연결되어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얘기해주신 게 너무 공감이 많이 가요.

 

상아🐶 뭔가 제연님에 대한 이미지가 저한테 전통 자수처럼 연상돼요. 자수의 실들이 연결되고 엮여서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완성되는 게 마치 연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제연님의 말씀이 아까 보여주셨던 자수처럼 저한테 확 와닿네요.


 

 

 제연 후원자님과 인터뷰 중~ 🤗

 


6. 연대에 대한 생각

상아🐶 댓글 마지막에 우린 다르지 않고 언제나 연대하고 있다는 감동적인 말씀을 남겨주셨어요.

제연님께서 생각하는 연대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제연😸 제가 평소 연대에 대해 잘 생각해 보지는 않았어요.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 연대라는 말이 되게 많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좀 쓰기 시작한 단어인데, 아까 말한 대로 그냥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 서로 다른 처지에 있을지라도, 같은 의지를 공유하고 있다라는 마음 같아요.

 

감이🫎 열림터 생활인분들도 후원자분들이 있다는 것에 되게 큰 연대감을 느껴요. 우리가 만날 수도 없고, 누가 후원을 하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생활하는 이 공간을 지원해 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내가 여기에 자유롭고 편하게 있을 수 있구나. 되게 고마워하고 연대감도 많이 느끼고 그러더라고요.

 



7. 다른 후원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

상아🐶 후원을 망설이는 분들께 열림터와 함께하자라고 권유한다면,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요?

 

제연😸 아동 결연 후원을 오래 한 적이 있어요. 몇 년간 한 명을 지정해서 후원하는 거예요. 그렇게 지정 후원을 하면 그 애가 막 편지를 써주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말도 없이 그 애가 바뀌었다는 거예요. 그때 제가 너무 황당했어요. 그러고 나서 생각이 좀 바뀐 게 내가 이거를 하면서 뭔가 생색을 내고 싶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는 대학생 때니까.... 이기적인 동기에서 후원했었나 봐요. 후원을 몇 년 안 하다가 다시 후원을 시작하게 됐어요. 뭘 받자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서. 내가 이걸로 뭘 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나한테도 그냥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면서 하는 기복신앙 같은 후원이기도 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만드는 후원이기도 하다고 생각하니까 돌아오는 게 없어도 마음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약간 다들 이기적인 마음으로 후원했으면 좋겠다 싶어요. 기복 + 연말정산 + 이런 이기적인 마음으로. 이타적인 마음으로 뭘 하려고 하면 어렵잖아요.

 

제가 최근에 읽은 책에서 되게 중요한 말이 있었는데, 설득을 하고 싶으면 감정에 호소하지 말고, 이해관계에 호소하라고 하더라고요. 다들 이기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 후원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상담소는 아무런 비리가 없는 투명한 집단이니 믿고 하셔도 될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감이🫎 저희도 늘 정신 똑바로 차리고 확실하게 투명하게 하려고 진짜 노력하고 있어요.

 

상아🐶 ? 이 두 가지 인생에서 너무 중요해요. 기복신앙과 연말정산. 정말 귀에 쏙쏙 박혀요.

 

제연😸 베풀면 돌아옵니다. 언젠간.

 

상아🐶 언젠진 몰라도 돌아온다! 너무 웃기고 신선해요. 저도 그렇게 주변인들에게 후원을 요청해 봐야겠어요. 베풉시다! 여러분~

 



8. 열림터와 생활인에게

상아🐶 마지막으로 열림터에 바라는 점이나 생활인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제연😸 바라는 건 없어요. 생활인분들, 항상 응원하고 함께 연대하고 있습니다!

 

상아🐶 오늘 정말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었어요.

 

감이🫎 , 제연님 덕분에 인터뷰도 점심시간도 정말 알찼습니다.

 

제연😸 저도요. 회사 점심시간이 길어서 좋다는 생각을 한 번도 못 했는데 이렇게 활동가분들을 만나서 너무 반갑고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 추상아 활동가
사진 | 제연 후원자님 제공, 감이 활동가 찍음




📬 베풀면 돌아옵니다. 언젠가는.

제연 후원자님의 말처럼, 작은 선의가 이어져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는 마법을 여러분도 경험하세요! 

💜열림터 후원으로 함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