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소식지
폴짝기금은 열림터를 퇴소한 생존자('또우리')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기금입니다.
올해는 7명의 또우리가 프로젝트에 함께 하고 있어요.
자립의 과정에서 마주하는 경험과 변화하는 마음을 담은 또우리들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세 번째 인터뷰는 정은입니다.

2025 또우리인터뷰➂열림 유치원의 기억?!
🍀정은 : 열림터 퇴소하고 4년 동안 학교 다니면서 잘 지내다가 졸업을 얼마 전에 하고 취업 준비 중이에요. 전공이 00 쪽이었는데 4년 동안 공부하면서 적성에 좀 안 맞는 것 같더라고요. 지금 진로는 아예 다른 쪽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신아 : 어느 쪽으로요?
🍀정은 : 저 000 쪽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대체 뭘 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괜찮을 것 같더라고요. 심리적으로 그렇게 먼 직업도 아니고요. 000 학원이 있어서 얼마 전에 수료하고 자격증도 나오고 지금 자소서랑 면접 준비 하고 있어요.
🦊신아 : 바쁘시겠다. 취업 준비하시는 건 힘들지는 않으세요?
🍀정은 : 자소서가 제일 힘들어요. 왜 이쪽 진로를 생각하게 되었는지 써야 하는데 과거에 피해가 있었고 법적인 절차를 밟았었다고 쓸 수가 없는 거예요. 다른 이유를 굳이 굳이 끼워 맞춰가지고 적고 있어요. 내 얘기를 드러내기가 좀 힘들어서 자소서가 좀 되게 힘들어요.
🦊신아 : 자소서를 솔직하게 쓰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진로를 정해서 잘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외에 다른 생활은 어떠세요?
🍀정은 : 지금은 주말에 알바하고 있고요. 주말에 알바하는 것 말고는 평일엔 아무것도 없어서 계속 그냥 자격증 공부하고 있어요. 00 쪽으로는 안 가기로 했지만 그래도 4년 동안 공부한 게 좀 아까워서 관련 00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어요. 필기는 작년에 땄거든요. 아까워가지고 실기도 마저 따려고 준비도 하고 있어요.
🦊신아 : 엄청 열심히 사시네요!
🍀정은 : 말만 그렇지 계속 버겁다고 느끼고 있어요.
🦊신아 : 어떤 게 버거우세요?
🍀정은 : 집중도 잘 안 되고 누가 이렇게 하라고 강제하는 게 아니니까 혼자서 마음 잡기가 어려워요. 불안하고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면은 이게 맞나 앞으로 어떡하지?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 거지? 생각하게 돼요.
🦊신아 : 맞아요. 저도 그랬었어요. 취업 잘 되면 좋겠어요. 퇴소를 어떻게 하시게 됐는지 여쭤봐도 돼요?
🍀정은 : 오래 전 일이에요. 열림터에 있을 때 딱 이제 대학 알아보고 했던 기억이 나요.그리고 아마 합격을 하고 아마 큰오빠 집으로 갔던 것 같아요. 문제가 있어서 나간 건 아니고 이제 내 앞길을 한번 찾아보겠다 하고 나갔던 것 같아요. 큰오빠 집에 잠깐 살았다가 학교 기숙사로 들어갔어요.
🦊신아 : 열림터에서의 생활은 어땠어요? 답답하지는 않았어요?
🍀정은 : 그때가 딱 코로나 시즌이었어서 외출이 아예 전면 금지였다가 주 2회 외출 허용이 되었어요. 통금 지금도 있죠? 통금 지켜야 하는 것, 계속 열림터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이 숨 막히고 답답하긴 했는데 그래서 오히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랑 엄청 친해졌던 것 같아요. 지금도 연락하거든요. 한 명 빼고 다 연락하는 것 같아요.
🦊신아 : 다 같이 잘 연락하면서 지낸다니까 되게 좋네요.
🍀정은: 네 굉장히 자주 연락합니다. 얼마 전에 한 친구가 애기 낳아가지고 보러 갔었고 한 친구는 결혼해가지고 결혼식 갔었고요. 그 시기가 사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는데 인생에서 강렬했나 봐요. 엄청 길게 느껴지고, 그 시기에 같이 생활했던 사람들이 되게 깊은 인연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신아 : 좋네요. 퇴소하고 나서 생존자로서 힘들었던 적은 없었어요?
🍀정은 : 열림터는 답답하긴 했지만 활동가들이 담임 선생님처럼 계속 돌봐주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없으니까 막막하고, 당장 불안하고 힘들 때 털어놓을 사람 없으니까 방황하는 시기를 겪었던 것 같아요. 그때도 사건이 진행 중이어서 대체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혼란스럽기도 했어요. 사건 관련해서 제 계좌번호가 털렸는지 계좌에 입금자명을 바꿔서 뭐라고 보냈더라고요. 그럴 때 당장 나 무섭다고 이거 어떡하냐고 말할 사람 없으니까 그것도 되게 무섭고. 또 그 뒤로도 디지털 성폭력으로 사진이 퍼지고 있기도 했고.. 사실 지금도 진행중인 것 같아요. 온라인상에 있는 사진이 사라지고 다 끝난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끝나지 않은 것 같아요.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좀 답답하고요.
🦊신아 : 맞아요. 온라인 성폭력의 어려움과 지치는 점인 것 같아요. 그럴 땐 어떻게 하려고 하셨어요? 막막하고 답답할 때요.
🍀정은 : 평소에는 잊고 있는데 1년에 한 번인가 2년에 한 번인가 디지털 삭제 지원 보고서가 와서 보는데 삭제 건이 40건 60건인가 계속 있는 거예요. 이게 왜 자꾸 안 사라질까 근데 이제 막 상담을 받거나 병원을 다니고 있지는 않아서 말할 사람 없이 그냥 혼자 삭히고 있어요. 그래도 개명도 했고 주민번호도 바꿨고 재작년에 쌍수도 했거든요. 사실 그때 사진 봐도 저 안같아서 지금 봐서는 상관없어요.
🦊신아 : 전보다 괜찮아졌지만 아니기도 하네요.
🍀정은 : 익숙해졌어요. 네. 약간 체념에 가까운 적응이에요. 자꾸 과거에 그렇게 얽매여 있고 싶지 않고 미래에 집중하고 싶어요. 당장 취업이 문제인데 뭐 그런 거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낭비할 에너지가 없어가지고요.
🦊신아 : 정은님은 주거나 생계의 어려움은 아니지만 이야기할 사람 혹은 좀 힘든 거 나눌 사람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는 부분을 말씀해주기도 했어요. 열림터를 퇴소한 생존자들에게 자립이라는 것은 어떤 일이라고 느껴지시는지 좀 궁금해요.
🍀정은 : 그냥 사회에 좀 내던져지는 느낌인 것 같아요. 더 이상 여기 사실 입소 퇴소한 이후부터는 돌봐줄 사람도 없고 하니까 어느 정도 연락하고 이런 게 유지된다고 해도 방치된 느낌이 들 때가 있었어요.
🦊신아 : 내던져지는 느낌, 그럴 때는 뭐가 필요할까요? 내던져지는 느낌이 들 때 사회에도 좋고 국가도 좋고 열림터도 좋고 어떤 것들이 좀 지원이 된다거나, 내밀어진다거나 그러면 좋을까요?
🍀정은 : 무작정 돈을 이렇게 준다고 해서 해결이 될 것도 아닌 것 같아요. 돈이 생기면 바로 막 다 써버리기도 하니까 교육, 네 계획적으로 살 수 있게 교육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대학에 가고 싶은데 못 갔던 그런 친구들한테 대학을 갈 수 있는 기회 이런 것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좀 현실적으로 많이 힘드니까 못 간다고 하더라고요. 대출받아서 가라고 할 수도 없고요. 저는 대출받아서 갔거든요. 나중에 갚을 생각으로.
🦊신아 : 경제적인 지원이랑 교육이요. 근데 교육은 좀 재미없지 않아요?
🍀정은 : 그렇지만 필요한 건 맞는 것 같아요. 제가 만약에 기숙사 안 들어갔고 혼자 살고 이랬으면 좀 굉장히 더 심하게 방황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신아 : 교육은 내가 원할 때는 효과가 있지만 내가 원하지 않을 때는 하나도 효과가 없잖아요.
🍀정은 : 그래도 뭔가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주워들은 것이라도 있으면 다를 것 같아요.
🦊신아 : 나한테 이롭지 않은 선택을 하는 건 내가 모르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하나봐요.
🍀정은 : 네 알면서도 어떤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면서 안 그럴 수도 있는 거고요.
🦊신아 : 뭔가 안다는 것은 내가 선택할 때 다른 걸 할 수도 있고 선택에 대해 생각도 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열림터 생활인들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와 알면 좋은 지식과 정보를 많이 나눠야 겠어요.
🍀정은 : 좋지 않은 선례들을 좀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아요. 성 지식과 성교육에 대해서요. 그리고 혼자 처음 자취를 할 때 건강보험이나 관리비 납부처럼 지금까지 누가 다 해줬는데 이젠 처음으로 알아보고 신경써야 하는 부분들을 알려주면 좋겠어요.
🦊신아 : 관리비 내는 것, 집 계약하는 것 이런 일들이요?
🍀정은 : 네네 건강보험 고지서가 날아오는데 직장 가입자가 뭔지 피부양자가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예전에는 집에서 다 해줬으니까요. 화장실 청소하는 거랑 음식물 쓰레기 안버려서 날벌레 날리고.. 이런 것도 처음에는 신경을 못 썼거든요. 밥 해놓고 한 일주일 2주 지나서 밥솥 열어보면 난리 나있고. 청소하는 법 이런 것부터 잘 알아야 돼요. 이거 습관 잡는 것도 힘들었어요.
🦊신아: 그럴 때 서로 돌본 경험도 있어요?
🍀정은: 제가 친구 방을 치워준 적이 있어요. 응급실 갈 때 같이 가기도 하고요. 그리고 ** 언니가 저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만나서 커피 사주고 치킨 사주고 그랬었고 언니한테도 뭐 고민을 말하면 상담도 해주고요. 그거 말고도 모두랑 연락하면서 가끔 재밌게 놀고 연락도 하고 이런 일들이 저는 그것 자체로 좋았어요.
🦊신아 : 그렇죠. 같이 이야기 나누고 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든든하고.
🍀정은 : 주위 사람들에게 ‘인생이 힘들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이런 얘기를 못하는데 이 친구들한테는 자주 했던 것 같아요. 제 치부를 아는 그런 사람들이니까. 요즘은 근데 또 그렇게 연락을 자주 하지는 않아요. 원래 자주 했었는데.
🦊신아 : 다들 아마 현생이 바쁘셔서 그렇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열림터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까요?
🍀정은 : 너무 그리워요. 저는 열림터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은 진짜 포근하고 따뜻하고 막 이랬거든요. 너무 떠올리면 애틋해져요. 진짜요 이 시기가 너무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신아 : 어떤 기억들이 있어요?
🍀정은 : 다들 너무 다정했어요. 저한테 적대적인 사람이 한 명도 없고 너무 잘해주시니까 유치원에 온 느낌이었어요. 선생님들이 막 부둥부둥 해주는 유치원생으로 사는 느낌이었어요. 다시는 어딜 가도 그런 사람들을 못 만날 것 같고. 그냥 항상 너무 떠올리면 감사해요.
🦊신아 : 기억에 남는 활동가가 있어요?
🍀정은 : 저희 담임쌤 수수쌤. 수수쌤이랑도 한 번 싸웠었는데, 뭐 때문인지는 기억이 안 나거든요. 한번 살짝 감정 상해가지고 싸웠다가 제가 사과했었어요. 그리고 낙타쌤, 사자쌤, 순유쌤.
🦊신아 : 열림터에서 돌봄을 받았다고 했잖아요. 열림터에서 어떤 장면들이 기억이 나요? 어떤 돌봄이었어요?
🍀정은 : 정서적으로 좀 안정감을 줬고요. 방금 떠오른 건 순유쌤이었나, 열림터 거실에서 유부초밥을 만들어서 해놓으셨는데 일어나서 먹었던 기억, 모여서 같이 밥 먹고 TV 같이 보고 고기도 구워 먹었던 장면이 떠올라요. 그리고 저녁 회의가 있어요. 회의 시간에 이렇게 모여서 과일 먹으면서 도란도란 얘기 나누고 잠옷 빌려입고 상담소에서 캠핑처럼 모여서 자기도 했고, 한복 빌려입고 같이 경복궁도 갔었고, 그런 게 기억이 나네요. 거의 밖에 못 나갔으니까 항상 다 같이 안에서 놀아가지고 수련회를 온 느낌이었어요.
🦊신아 : 그렇네요. 엄청 밀도 있는 생활이었네요. 활동가들에게도 전달할게요. 그러면 인터뷰는 여기서 마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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