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 변화
대한민국 정부: 여성대상 범죄대책 전면재검토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서라
사진: 2016.6.15 정부의 반인권적 여성대상범죄대책 전면재검토와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정당 기자회견
이것이 왜 중요한가
지난 5월 17일 새벽 1시경, 서울 강남역 인근 어느 노래방 공용화장실에서 여성표적살인이 발생했다. ‘여자’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1시간여를 기다린 가해자에 의해 한 여성이 살해된 것이다.
1. 여성혐오가 죽였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은 한국사회 ‘여성혐오’의 모습을 낱낱이 불러낸 사건이다. 강력범죄 중 흉악범죄의 피해자 85.8%가 여성인 현실 (2013년 경찰범죄통계). 한국여성의전화의 ‘2015 분노의 게이지’에 따르면 2015년 한해동안 언론보도된 사건 중 남자친구나 남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최소 91명이다. 한국여성들은 여성살해와 여성폭력의 원인이 ‘여자가 무시하면 때리거나 죽여도 된다’는 발상과 그러한 행위가 사소하게 여겨지는 사회인식에 있다고 외쳤다. 강남역 앞을 채운 수많은 포스트잇, 매일 저녁 이어진 자유발언대는 일상적인 폭력과 괴롭힘, 불평등을 증언하는 장이 되었다. 우리 모두 ‘우연히 살아남은 것’이라는 절절한 분노와 슬픔. 한국여성들이 이 사건으로 느끼는 감정을 대다수 한국남성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한국언론은 “여자들이 무시해서 죽였다”는 가해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썼고 살해 장소 CCTV 화면을 방송에 내보내는 등 자극적인 보도에 열을 올렸다. 여성들의 증언은 폭발적이었지만 정부는 침묵했고 경찰은 ‘대한민국에는 아직 혐오범죄가 없다’고 단언했다. ‘묻지마범죄를 여성혐오와 연결하지 말라’ ‘남성을 가해자로 몰지 말라’, 그리고 ‘남성도 차별 받는다’는 언설(한국에 매우 만연한 주장)이 시작됐고 추모행동에 참여한 여성들 중에는 무단으로 촬영되어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극단적 혐오발언을 일삼는 인터넷사이트 이용자들로부터 협박메시지를 받는 피해를 입는 경우도 생겨났다. 여성혐오가 한 여성을 죽였고, 이는 여성들과, 여성으로 간주(passing)되는 모두와 관련된 문제이다.
2. 무책임하고 위험한 여성대상 범죄대책
5월 23일 경찰이 발표한 ‘여성안전 특별치안대책’, 6월 1일 법무부, 여가부, 복지부 등이 발표한 ‘여성대상 강력범죄 및 동기없는 범죄 종합대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됐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과 부산 길거리 폭행사건을 ‘조현증 환자에 의한 “동기없는 범죄”’로 간주하여 여성살해/여성혐오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혐오와 인권침해를 조장하고 있다.
(1)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권탄압
이번 정부대책은 여성범죄가 아니라 정신장애인을 ‘잡는다’. 경찰은 정신질환 체크리스트를 경찰 일선에 배포하고 경찰 자의로 ‘행정입원(강제입원)’ 조치하며 퇴원 기준을 높이고 관리/감독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학교과정에서 정신질환을 조기발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범죄자 중 정신장애인은 극히 적으며,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에서도 조현증은 가해자의 병력이었을 뿐, 연관관계가 증명되지 않았다. 2014년 대검찰청 범죄분석보고서에 따르면 범죄자 중 정신장애인은 0.4%, 2015년 보고서에서도 0.5%로 보고된다. 반면 정신질환 입원자 중 강제입원이 75.9%(2012년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 정신요양시설 입원자 중 15년 이상 장기입원자는 전체 29%에 달한다(2013년 국정감사 자료). 검증 없이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에만 기댄 정부대책이 또 다른 정신장애인 인권탄압을 자행하고 있다.(주간경향 1180호 [특집]정신질환자를 대하는 ‘병적증세’ 참고)
(2) 성별분리화장실 대책의 부적절함
정부는 공중화장실법시행령 개정으로 남녀 화장실 분리설치 의무대상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중화장실은 상가 건물에 있는 화장실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과도 관련성이 없고, 여성이 이용하는 공간을 별도로 두는 것이 ‘여성표적살인’을 막을 수 있다는 근거 역시 전무하다. 이는 ‘안전하지 않은 공간’에 간 피해자에 대한 또 다른 비난이 될 수 있고, 성소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게끔 적대감을 조성할 우려가 있다.
(3) 보여주기식, 급조된, 단기적인 대책의 나열
‘여성대상 강력범죄 최고형 구형’은 가장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대책이다. 성폭력범죄 신고율은 약 10%(여성가족부 2010년 성폭력 실태조사), 기소율은 50.1%(대검찰청, 2015)이다. 대다수 성폭력피해자들은 ‘구형’ 근처에도 접근하기 어렵다. 기소조차 되지 않는 범죄, 그 이전에 수사사법체계에 대한 신뢰가 낮아서 신고조차 되지 않는 범죄에 대해 ‘최고형 구형’ 선언은 비현실적이다. 필요한 건 여성에게 책임전가하고 남성가해자를 감싸는 수사사법체계의 환골탈퇴와 가해자처벌의 확실성이다.
(4) 원인진단은 실패했고, ‘치안’의 이름으로 권한, 감시, 통제만 강화
경찰은 전담인력을 배치해 ‘남녀갈등을 일으키는 온라인게시물’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직접 삭제 요청하기 시작했다. 이는 경찰의 권한과 역할을 벗어난 ‘국가기관의 온라인검열’이며, 온라인 여성혐오문화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한다. 형기를 마쳐도 다시 구금할 수 있는 ‘보호수용제’ 도입, 가석방 요건 강화, 범죄·인구사회학적·물리적 환경 등 범죄취약요인을 진단·분석하는 범죄예방진단팀 운영(‘치안 컨설턴트’ 업무수행), 알콜중독자 발굴과 치료대책 등은 치안의 이름으로 정부와 경찰의 권한, 감시, 통제를 강화한다.
우리의 요구는 평등과 안전이지, 보호의 모습을 한 억압, 치안강화를 통한 감시통제가 아니다. 여성안전은 구성원의 격리감금이 아니라 뿌리박힌 성차별을 시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소수자에 대한 병리화, 범죄화, 인권탄압은 여성의 평등·안전과 양립할 수 없다.
3. 우리는 요구한다.
(1) 여성대상 범죄대책 즉각중단과 전면재검토
* ‘여성안전 특별치안대책’과 ‘여성대상 강력범죄 및 동기없는 범죄 종합대책’을 전면재검토하라.
* 정부는 정신장애인을 범죄자로 낙인찍고 여성살해의 원인을 정신장애인에게 전가한 데 대해 분명히 사죄하라.
(2)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 경찰은 여성폭력과 여성살해를 막고, 여성에게 요구되는 성별규범을 벗어났거나 외관상 여성으로 비춰진다는 이유로 겪는 혐오폭력과 증오범죄를 근절하는 데 책임을 다하라.
* 정부는 여성과 사회적소수자를 향하는 차별과 혐오를 규제하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우리가 나서지 않는다면 변화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변화에 동참해주세요.
[제안자] 강남역 10번 출구, 고려대학교여성주의교지 석순 편집위원회,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언니네트워크,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문의] 한국성폭력상담소 http://sisters.or.kr/ 02-338-2890
* 지난 6월 11일 제17회 퀴어문화축제 퀴어퍼레이드가 열린 서울광장에서 취합된 1,335명의 서명은 국무총리실에 함께 전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