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상담소 소식
[Meka 3기 세미나 후기]
나눔터 82호 준비,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세미나
밤이 되면 아직은 버틸만한 날씨의 초여름입니다. 상담소 주변 돌담에는 장미가 흐드러지게 펴서 오갈 때면 한참을 바라보게 되네요. 지난 6월 5일 저녁, Meka 3기가 이번 달의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번 모임에는 Meka 3기 멤버 중 세린, 훈제, 혜리, 소휘 네 사람이 함께했습니다.
Meka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늘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게다가 이번 모임에는 Meka에게 주어진 미션이 좀 더 많아서 어느 때보다 밀도 있는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일 년에 두 번 발간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식지 <나눔터>가 마감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이번 <나눔터> 82호는 여전히 그 불길이 꺼지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MeToo 운동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MeToo 운동은 생존자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가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키는지를 우리에게 계속해서 보여주는 듯 합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도 관련한 많은 활동을 함께하고 있는데요, 이번 <나눔터>에서는 <생존자의 목소리>라는 이름으로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목소리 또한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공지가 올라간 후 상담소에는 생존자의 목소리가 담긴 에세이와 시가 도착했고, 연대의 마음을 담은 그림도 도착했습니다. 이번 Meka 모임에서는 이렇게 투고된 원고들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멤버들은 감상을 나눈 후 교정교열을 비롯해 원고가 지면에 실릴 준비를 함께 했습니다.
▲ <생존자의 목소리> 원고 모집을 통해 4분의 원고가 <나눔터> 82호와 83호에 나누어 실리게 되었습니다.
메카가 조금 먼저 읽을 수 있었던 원고들은 각기 다른 사연을 담고 있었습니다. 모인 메카 멤버들도 조금씩 다른 삶을 살아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함께 감상을 나누다보니 서로의 마음이 만나는 지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각자 어렸을 때의 자신이나 지금의 자신,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의 삶을 거듭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시와 에세이에 적힌 것은 비단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피해'의 순간에만 그치는 글들이 아니었습니다. 원고를 통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치유하고, 그 시간들을 직접 말할 수 있게 된 이들에게서 오는 힘을 느꼈습니다. '단독'이나 '속보'가 난무하는 언론보도나 너무 빠른 SNS의 논쟁이 익숙한 지금, 조금 긴 호흡으로 생존자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원고를 검토하고 나서는 읽어 온 책을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은 연구 모임 도란스에서 내놓은 세 번째 책으로, 성폭력과 사건 해결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는 책입니다. 어려운 책이다 보니 한 번에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만큼 책에 대해 할 말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메카 멤버들은 돌아가면서 진행을 맡고 있는데, 이번 모임에서는 소휘님이 진행을 맡아 책 전반과 각 챕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리드해주었습니다.
처음 책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는 성폭력 사건의 연대자 혹은 지원자로서의 위치에서 오는 어려움이었습니다. 사건을 바라보는 자신의 위치를 고민하고, 어떻게 피해에 공감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남성으로서, 타인으로서 성폭력 문제에 대해 가져야 할 윤리에 대해 고민해보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에 참여하며 가지게 되는 두려움과 긴장에 대해 나누기도 했는데요. 연대자들은 비슷한 사건 해결의 경험을 가진 이를 찾기 어렵고, 서로를 신뢰하기 힘든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2차 가해'를 지목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지나친 자기검열을 하기도 합니다. 책의 첫 번째 장을 통해 피해자를 과잉보호하려 하거나 그에게 모든 판단을 맡기려 하는 것은 피해자를 타자화하는 행위이므로 경계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건 해결의 과정에서 피해자가 감내할 몫에 대해서 외부자적 시선으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는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한편 사건에 맞서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요,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보며 사건 이후 고민하는 단계, 용인하는 단계, 각오하는 단계를 거쳐가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피해를 겪은 자신에게도 사건이 그저 대의를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과 세상을 바꾸는 흐름에 힘을 보태고 싶은 의지 간의 갈등이 있었고, 그러므로 두 경우를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커밍아웃, 아웃팅, 그리고 커버링 개념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성소수자 정체성이 강제로 알려지는 '아웃팅'을 비윤리적으로만 보았었는데, 책의 세 번째 장을 읽고 오히려 그것이 전략인 때가 있었던 것을 접하며 인식의 전환을 할 수 있어 좋았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커버링'은 낯선 언어이지만 사회적 소수자에게 요구되는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케 하는 단어였습니다. 미군 내에서 강요된 'don't ask, don't tell' 정책이나 주변의 성소수자에 대해 '나에게 해만 끼치지 않으면 돼!' 라는 태도를 가지는 것을 연장선상에서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인들이 커밍아웃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 <밀크>나 아웃팅을 전략으로 사용했던 시대가 드러나는 <더 노멀 하트>와 같은 영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 6월에 함께 읽었던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과 7얼에 읽을 <82년생 김지영>
다음 메카 모임은 한 달 후인 7월 4일 저녁, 이미 오래도록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여성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함께 여성이 겪는 성폭력과 길거리 괴롭힘을 잘 드러낸 만화 <악어프로젝트>를 읽고 모이기로 했습니다. 한 달 동안 각자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다가 다시 만날지가 궁금하네요! 상반기 활동이 끝나고 새로운 멤버 모집을 준비하고 있는 메카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세요~
<이 글은 Meka 3기 세린님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