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상담소 소식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열림터를 후원하고 있는 회원 양달이라고 합니다.
올 가을, 회원들이 함께 모이는 커뮤니티 데이를 다녀와 짧게 후기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지난 11월 9일, 한국성폭력상담소 지하본부(지하1층 이안젤라홀)에서ㅎㅎ <나만 그런게 아니었어> ,
5년차 이하 정기 후원회원 커뮤니티 데이가 열렸습니다.
저는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한 것이 처음이었는데요.
이 모임에 나가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뉴스레터의 글귀로부터였습니다.
나날이 심해지는 백래시와 정치 난투, 암울하고 참혹한 사회 뉴스들, 끊이지 않는 사건 사고들..
이런 상황 속에서 모두들 잘 지내고 있는지, 마음 속 불꽃은 사그러들지 않았는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자는 취지였습니다.
마침 저는 이런 이야기를 터놓고 나눌 수 있는 장소와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시기여서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주저 않고 덥썩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마포에 위치한 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된 이번 행사는 따듯하고 편한 분위기였습니다.
행사는 운영진분들이 준비해주신 맛있는 도시락과 웰컴드링크로 시작하였는데요.
세심하게 여러 종류의 웰컴드링크와 비건을 위한 식사를 마련해주셔서 감탄하며 먹었답니다. (에** 테이블 사랑해요!)
본 행사는 오지은님과 활동가 감이 님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각자의 후원 이유를 들어보고, 페미니즘 일대기를 훑어보며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 공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각자의 후원 이유
-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알고 있는 / 활동하고 있는 멋진 친구에게서 소개를 받아서
- 남초 직장에서 이런저런 고초를 겪고 피해자들에게 연대하고싶어서
- 우회와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중 고민하다가 마음에 이끌려서
- 대통령 당선 이후 여가부 폐지에 대한 여론을 듣고
- 소장님의 강의가 인상 깊어서
-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교육, 행사, 자원봉사에 참여한 후 연이 닿아서
- 피해자로 도움을 받고 난 후 이를 다른 이들에게도 되돌려주고 싶어서
처음 보는 회원 분들이었지만 후원을 하게 된 계기가 다양하고 저마다의 사연이 녹아있어 즐겁게, 때로는 공감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페미니즘의 역사를 쭉 훑어보았는데요.
우리가 올라탄 페미니즘 리부트의 파도 라는 주제로
- 15년도~17년도 페미니즘 리부트
- 18년도~20년도 페미니즘 르네상스
- 21년도~23년도 총체적 불안의 시대
라는 키워드로 시대를 나누어 각 시대에 느낀 바들을 공유하였습니다.
15년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로 혹은 그 전부터
페미니즘 운동에 눈을 뜨고 본인의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던
이야기들을 들으니 다시금 가슴이 뜨거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집회에서 페미니즘 구호를 외치며
차도를 막고 우리들끼리 행진한 이야기,
실제로 집회에서 횃불을 처음 제작해보셨다는 이야기에서부터,
교내 여학생회에서 신나게 페미니즘 전성기 활동을 하셨던 이야기,
면전에서 혐오발언을 하는 사람과 용감히 맞서 싸운 이야기까지
나만 그런게 아니었어! 라는 행사명처럼
우리가 모두 함께였구나 하는 공동체적 소속감도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대의 흐름을 우리 안에서 개념적으로 다시 정리해보는 시간이라 의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듯 페미니즘의 불 타오르던 화력으로 우리 사회의 중요한 변화들이 있었고,
그로 인해 법제적으로도 발전하며 사람들의 인식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모두들 어려운 시간을 겪고 있는 듯 합니다.
21년도~23년도인 바로 지금, 우리들은 총체적 불안의 시대를 보내고 있다고 명명하였는데요.
끊이지 않는 백래쉬와 여성혐오 범죄들,
그리고 여성혐오를 슬로건처럼 내세워 기반을 세운 정부가 집권하면서
알 게 모르게 큰 무력감과 피로감을 느끼셨을테지요.
저 또한 그랬습니다.
부끄럽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그 이후 의식적으로 뉴스를 잘 보지 않았습니다.
일부로 흐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내 한 몸만 건사하는 근시야적인 사람이 된 것이지요.
그 부채감을 떨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으로 여성단체에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가까운 사람에게도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할 수 없는 주제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혹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내 안에서 말로서 표현되지 않은 (발화되지 않은) 이야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자리에서 그동안 이어왔던 활동들과 지금의 안부를 나누며
수용적인 분위기 안에서 들어주고 따듯한 분위기 안에서 공감해주시니
왠지 개인적으로는 자조집단에서 상담을 받은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덧붙여 활동가분들에게서 본진에서 싸울 때 지치지 않고 힘을 낼 수 있는 비결도 전해들었습니다.
-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얼마간은 뉴스를 멀리하고 속세를 등지며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져라.
- 경복궁, 서촌 등 좋은 서울의 산책길을 걷는다.
- 수영 등 운동을 한다.
- 피해자분들과 후원회원들을 직접 만나며 에너지를 얻는다.
- 귀여운 반려동물을 만진다.
와 같은 깨알같은 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가 시간을 보낸 후 어떤 모습을 하며 나이 들고 싶은지,
어떤 세상과 모습을 꿈꾸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무리를 했습니다.
나는 나중에 ~한 나이든 이가 되고 싶어!
- 정신을 똑바로 차린 나이든 이
- 산책길을 만들어 사람들을 쉴 수 있게 만드는 나이든 이
- 후배에게 좋은 사수가 된 나이든 이
- 귀여운 나이든 이
- 수영을 잘 하는 나이든 이
- 무사히 할머니가 된 나이든 이
- 빈맥을 가지고 오래 사는 나이든 이
- 혼자서 잘 지내는 나이든 이
- 결혼 후 출산을 하여 페미니스트를 세상에 한 명쯤은 내보내는 나이든 이
- 가부장제에 편승하지 않는 나이든 이
- 유쾌하게 산을 오르는 나이든 이
- 삼발이 의자를 만들 수 있는 목공을 잘하는 나이든 이
- 새로운 것을 항상 받아들이고 배울 줄 아는 비건 페미니스트인 나이든 이
- 활동가인 자신이 필요없는, 여성혐오와 성범죄 없는 세상에서 사는 나이든 이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마지막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들을 듣다보니
노년을 꿈꾸는 모습들이 귀엽고 아름다워서
모두를 응원하고 싶어졌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잘 살 수 있도록 우리가 더욱 살기 좋아야한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마음의 불씨를 잘 살려놓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누군가의 촛불이 꺼진다고 해도,
생일 촛불에 죽은 불씨를 옆의 불로 다시금 살려주듯
서로가 서로의 온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불씨를 크게 이어가고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도
무한한 화력을 지원해주고 싶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