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국제 연대
이번 927기후행동정의 슬로건은 "기후정의로 광장을 잇자"입니다. 수많은 이들이 광장에 모였던 이유, 단지 정권교체만을 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상담소는 혐오와 폭력없는 성평등한 세상을 향해, 더 나아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요구는 어느새 묻히고, 불평등이 가져온 불안을 토양삼아 혐오와 차별이 자라고 있고, 기존 성장주의와 개발주의에 기댄 정치가 득세하고 있습니다. 이에 이번 927기후정의행진에는 광장에 나서서 목소리 냈던, 각계 각층에 있는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 연결되고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1. 기후위기 X 페미니즘
한국성폭력상담소는 2019년 ‘기후위기 비상행동’ 집회를 시작으로, 기후정의행진이 이어져오는 2022년부터 지금까지 연대해왔습니다. 간혹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기후위기도 가속되고,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건 맞아. 그런데 페미니즘과는 무슨 상관일까?'라고요.
2023년 9월, 페미니스트 기후정의 선언문이 발표되었습니다. 국내 여성/환경 관련 11개 단체가 만든 선언문으로, '가부장제적 자본주의' 구조의 무분별한 착취가 기후위기를 이끌었으며, 주류 남성이 아닌 사람들과 비인간종을 소외하고 배제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성중심의 경제 시스템은 ‘성장’과 ‘개발’만을 사회의 중요한 목표로 상정하였고, 그 과정에서 생태계는 무차별적으로 파괴되며, 사회적 소수자들은 노동시장에서 배제가 되었습니다. 여성, 청년, 성소수자, 비인간동물을 모두 포함한 페미니즘의 관점이 기후정의 담론에 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도 모두에게 동일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재난을 대비할 수 있는 정보와 기술, 자원 인력의 접근성, 그리고 사회문화적 규범은 집단별로 큰 차이를 만듭니다. 방글라데시 사이클로, 수마트라 쓰나미,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례에서는 여성들의 돌봄의 책임, 의복의 관습, 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여성의 피해와 사망률은 여성보다 높았다는 분석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재난은 특정한 집단에게 더욱 가혹하게 작용하기도 합니다. 폭염 속 온열질환이나, 한파 속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이주노동자의 사례처럼, 기후위기 영향은 '일상의 변화'라는 형태로 취약한 집단을 직접 위협합니다. 결국 기후재난은 사회적 불평등으로 드러납니다.
이 목소리를 시작으로 올해 2025년에도 60개의 단체, 301명의 개인이 927기후정의행진 페미니즘 선언을 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도 함께 했습니다.
<이제는 둔감의 시대를 끝내고 세상을 돌볼 때> 오랜 시간 자본주의는 지구를 자원으로 삼고 캐내어 이윤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심어 주었다.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나무를 베어내고, 바다 아래까지 가차 없이 그물을 펼쳐 물살이들을 끌어내고, 매년 천억 명의 동물들을 도축하는 산업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 잔혹함 위에서 인간들은 각자도생의 언명 하에 살아남기 위해 ‘함께 잘 살아가기’를 포기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둔감해지는 것 또한 자본과 시장의 주문이다. 우리는 페미니스트로서 그것을 온 몸으로 거부하고 돌봄과 연대의 관점으로 기후정의로 나아갈 것이다. 전지구적 전쟁과 학살의 현장은 기후위기와 분리될 수 없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집단학살로 고통받고 있고, 지난 2년간 이스라엘이 폭격과 학살로 발생시킨 이산화탄소의 양은 세계 100여개국의 연간 배출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한국석유공사의 자회사인 다나 페트롤리엄은 이스라엘로부터 가자지구 앞바다의 가스전 수탈 면허권을 땄다. 이는 기후위기가 단순한 자연재난이 아니라 식민주의적 약탈과 군사적 폭력이 결합된 구조적 폭력임을 보여준다. 더불어 한국은 세계 10위권에 이르는 거대한 방위산업을 보유하며,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을 유지·확장함으로써 기후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한국에서 일하는 수많은 이주가사돌봄 노동자들 또한 기후위기와 분리될 수 없다. 멈추지 않는 돌봄의 시장화로 글로벌 사우스의 여성들이 한국으로 ‘도입’ 되었고, 이들이 불안정한 체류 자격과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내몰리는 현실은, 돌봄의 위기와 기후위기가 동일한 자본주의의 토대 위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돌봄을 시장 논리로 환원시키는 사회에서 집단학살과 돌봄 위기, 기후위기는 여성과 소수자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여성, 소수자, 빈민, 비인간 동물, 이주민 등 취약한 존재들에게 불균형하고 교차적인 모양새로 고통을 드리운다. 전례 없는 폭염과 가뭄, 폭우는 모든 이의 삶의 전반을 위협하면서, 취약한 주거환경과 노동조건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숨을 가장 먼저 앗아간다. 이제는 둔감의 시대를 끝내고 세상을 돌보아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심어 놓은 ‘공정’은 속임수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살아 있는 자들의 당연한 속성으로서 취약성과 상호의존성을 인지하고 경쟁이 아니라 돌봄이 중요한 가치인 세상으로 전환해야 할 때이다. 지난 9월 11일, 새만금 신공항 건설을 취소해야 한다는 법원의 1심 판결이 있었다. 개발과 성장의 논리에 앞서 새와 사람, 수라갯벌을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연대의 힘이었다. 윤석열 탄핵을 외쳤던 광장에서 다양한 목소리와 존재들이 서로를 돌보고 연대하며 결국 승리로 이끌었던 것처럼, 우리는 세상을 더 돌볼 수 있다. 우리 페미니스트들은 ‘돌봄과 연대를 통해 자연과 인간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는 신념으로 9월 27일,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할 것을 선언한다. 2025년 9월 25일 927기후정의행진에 페미니스트로서 선언하는 60개의 단체, 301명의 개인 일동 |
2. 평등으로 가는 <공공성 행진단>에 합류하다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와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동맹'이 제안한 행진단으로, 불평등과 차별을 넘어 공공성 강화로 기후정의와 민주주의를 잇는 연대의 행진입니다. 다양한 형태로 반복되는 기후 재난. 많은 이들의 생명과 건강, 삶의 터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재난은 결코 모두에게 똑같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사회적 약자에게 더 집중적으로, 더 가혹하게 찾아옵니다. 단순히 재난경보 시스템이나 대피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만으로는 피해를 막기 어렵습니다. 재난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주거, 에너지, 의료, 돌봄 등 삶의 기본을 지탱하는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행진단에 합류하며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927기후정의행진 당일에 배포될 <927기후정의행진 평등으로 가는 공공성 행진단 특별호>에 각 단체들의 한마디를 싣는다고 하여, 내부 논의 후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은?!
1. 강간죄 동의여부로 개정하고, 가자 평등으로!
2. 불평등한 기후재난,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함께 성평등으로 맞서자!
가장 많은 득표를 차지 한 것은? 1. 강간죄 동의여부로 개정하고, 가자 평등으로! 였습니다. 하지만 담당자 마음대로 2. 불평등한 기후재난,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함께 성평등으로 맞서자!로 정했습니다.
3. 피켓을 만들자
'젠더통합적 NDC수립하라' 피켓이 돋보입니다. NDC가 무엇이지?
사전 워크숍으로피켓만들기를 진행했습니다. 최근 녹색전환연구소, 여성환경연대, 플랜 1.5와 함께 <2025 NDC 젠더 관점 워크숍>(후기보기) 에 참여한 동은 활동가가 만든 피켓입니다.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파리협정에 따라 각국이 제출하는 감축 계획으로, 한국의 기존 안은 국제적으로 불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현재 2035년 NDC가 새로 마련되는 과정에서,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65% 감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고 합니다. UN은 기후정책에서 젠더 통합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관련 논의가 부족하며, 특히 NDC 심의·의결과 점검을 담당하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남성 과대표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다고합니다. 여전히 젠더 관점이 부족한 기후 정책. 여성을 본질적으로 ‘취약한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이 아닌, 실제로는 젠더 불평등이 취약성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고려하고 여성의 경험과 행동을 새로운 사회 디자인의 기반으로 삼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후기 중 인상적인 부분 공유합니다. “젠더 관점을 반영한다는것은 규범화·위계화된 특정한 삶만을 인정하는 제도에 문제제기하는 일”
4. 927기후정의행진 당일이 되었다
- 사전부스
행진 참여자분들과는 본집회가 시작하는 3시에 맞춰 2시까지 모이기로 했습니다. 저는 사전행사를 보기 위해 좀 일찍 도착했어요. 꾸려진 부스들을 구경했습니다. 환경단체는 물론 다양한 시민단체의 부스가 있었습니다. 각 단체들은 어떻게 어떤 메세지를 전달했을까요.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건설노동자의 땅과 삶을 체험하며 폭염 속 권리 보장을 함께 지지하는 자리인 '건설 인생 네컷'을, <10.29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는 재난으로 스러진 모든 생명을 기억하며, 안전한 미래를 염원하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부스였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예술'과 걸맞게 '기후의와 표현의 자유를 함께 난다'는 취지의 부스를 꾸렸습니다.
- 오픈마이크
기후위기 속 시민들이 마주한 현실과 고민, 비판과 연대를 노래/춤/발언으로 표현하며 공정한 세상을 함께 고민하는 공간입니다. 야구팬인 발언자는 야구장의 물사용, 일회용품 문제를 이야기하고, 싱어송라이터께서는 자작곡으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노래했습니다. <마당극 민중의 부활!> 팀은 원타임의 '핫! 뜨거' 를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가사로 개사해 무대를 꾸렸습니다. 네 명이 만들어낸 퍼포먼스는 실로 인상적이었고, 현장의 열기를 한층 끌어올렸습니다. 한 기자님이 직접 멤버에게 뛰어가 개사 가사를 요청할 정도로 강렬한 무대였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이자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 중이며, 5년차 옥상 농부 수수가 오픈마이크를 통해 연대했습니다. 수수 활동가는 “같이 사는 친구와 옥상에서 무화과를 키우며, 날씨가 매해 이상해지는 것을 체감한다”고 말했습니다. 더워야 할 때 춥고, 추워야 할 때 덥고, 비가 영원히 내리거나 영원히 오지 않는 기후가 우리의 일상을 뒤흔든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후재난은 불평등을 증폭시킨다고 강조했습니다. 여성농민은 작은 규모의 영농으로 더 큰 피해를 입고, 지구온도가 1도 오를 때마다 전 세계 친밀관계폭력이 4.7% 증가한다고 했습니다. 코로나 시기처럼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들이 더 고립된 사례도 언급했습니다. 수수 활동가는 “기후위기는 곧 차별의 문제”라며, 정부가 민생과 경제를 이유로 차별금지법을 뒤로 미루는 것을 비판했습니다. “차별금지법은 평등을 촉진하고 빈곤과 폭력, 재난을 다루는 정책이며, 이것은 곧 민생과 생존의 문제”라고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마지막으로 구호를 외치며 발언을 마무리했습니다.
📢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 불평등한 기후재난, 성평등으로 함께 맞서자!
📢 기후정의로 세상을 바꾸자!
<발언문 전문> 안녕하세요? 저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하는 수수입니다. 오늘 평등과 기후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저는 같이 사는 친구와 옥상에서 무화과를 키우고 있습니다. 5년차 옥상 농부인 셈인데요. 날씨가 너무 이상하다는 것을 매해 체감합니다. 더워야 할 때 춥고, 추워야 할 때 덥고, 비가 영원히 내리거나, 영원히 오지 않는 일을 겪습니다. 기후재난으로 자연재해가 빈번해지자, 유엔식량농업기구는 ‘불공평한 기후’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실제로 여성농민은 영농규모가 작은만큼 더 많은 피해를 겪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농업뿐 아니라 사회 전 영역을 아우릅니다. 지구 온도가 1도 올라갈 때마다 전 세계에서 친밀관계폭력이 4.7% 증가합니다. 코로나로 모두가 집에 머무는 기간이 길었던 시기, 가정폭력과 친족성폭력피해자들은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기후 재난의 결과가 불평등과 만나 증폭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후위기는 차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토록 중요한 일임에도 정부는 기후위기도, 차별도 제대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해서 시민들이 합의를 이뤘다는 것을 보여줬더니, 이제는 차별금지법보다 민생, 경제가 우선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이 도달하고자 하는 평등은 빈곤을 해결하고, 폭력을 해결하고, 재난을 다루고, 삶을 도모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민생과 경제의 문제일뿐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평등을 촉진하는 반차별 정책이 기후정의에 필요한 까닭입니다. 구호 외치면서 발언 마무리하겠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불평등한 기후재난 성평등으로 함께 맞서자! 기후정의로 세상을 바꾸자! |
- 본 집회 및 행진
삼삼오오 모인 행진 참여자들. 다양하게 배포된 유인물을 보고 있는 란 활동가
오후 3시, 광장에 울려 퍼진 첫 목소리는 황인철 공동집행위원장이었습니다. 그는 “이곳은 겨울부터 봄까지 민주주의를 지켜낸 광장”이라 소개하며, 그때의 용기와 사랑을 다시 꺼내 오늘의 행진으로 이어가자고 호소했습니다.
이어서 참가자 모두가 다섯 가지 ‘평등 약속’을 함께 낭독했습니다. 나이, 성별, 성적 지향, 가족 형태, 장애 등을 이유로 서로를 차별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무대에는 기후위기를 몸으로 겪는 이들이 섰습니다. 25년째 농사를 지어온 농민은 “50년 만의 홍수, 100년 만의 폭염이 매년 반복된다”며 기후재난 없는 세상에서 당당히 농사짓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발전소 노동자는 두려움 속에서도 “기후위기를 막는 일과 노동자의 삶을 지키는 일은 함께 갈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청년·이주민·여성 등 12명이 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탈핵과 탈화석연료, 공공재생에너지 확대, 전쟁과 무기 수출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광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우리의 피켓. 행진가자 고고씽!
상담소는 평등으로 가는 공공성 행진단과 함께 1호차를 따라갔습니다. 여러 발언 중 팔레스타인 연대자 분의 발언이 절실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스라엘의 행위는 명백한 'genocide'입니다. 학살을 위해 쓰는 무기들은 엄청난 화석연료를 내뿜는 엄청난 기후위기의 주범입니다. 이 명분없는 전쟁의 목적은 자원 수탈. 한국정부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는 한국석유공사가 100% 지분을 소유한 다국적 기업 ‘다나 패트롤리엄’이 가자지구 해역의 가스전 탐사권을 따냈다고 합니다. 이 불법 자원 약탈에 참여한 것이지요. 이 수익은 한국에, 그리고 불법 자원 개발 동참에 대가로 이스라엘에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이에 우리가 더 모여 목소리 내야 한다고 하며, 10월 18일(토) 전국집중행동으로 집결하길 강력히 호소하였습니다.
당일의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번 927 기후정의행진에서는 국제 정세와 전쟁, 그리고 여러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기후재난이 결코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문제가 아님을 다시 한 번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 (상담소가 아닌)활동가 개인의 소회(준비 당시 고민 위주로...써봄)
올해의 기후정의행진의 행진단은 회원홍보팀이 진행을 맡았습니다. SNS홍보물을 만들고, 행진단을 모집하고, 참가를 독려하는 일까지. 해마다 반복되는 과정이어서인지 어느새 '연례행사'처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행진단을 꾸리던 중, 전술한 <평등으로 가는 공공성 행진단> 합류를 제안 받았습니다. 내부 논의 후 합류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최종적으로 담당자인 저의 의견을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연대는 당연하고 익숙했기에 자연스럽게 참여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작은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회원분들은 왜 ‘공공성 행진단’에 합류했는지 궁금해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곱씹어 보니, 이 고민은 결국 ‘공공성’이라는 개념을 페미니즘과 연결하기 어려웠던 제 개인적인 답답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이 물음표를 시작으로 제가 만든 홍보물 문장 하나하나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페미니즘과 기후위기는 이제 제게는 당연한 의제가 되었지만,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는 충분히 설득이 될까? '우리가 왜 여기에 함께 가야 하는가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등등... 고민을 하던 중, 호랑활동가가 작년 외부 회의에서 '기후위기와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발제한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급하게 발제문 좀 달라고 하여 읽어보았습니다. 호랑 활동가가 발제문을 작성하기 위해 참고했던 자료들도 찾아보고요. (해당 발제문은 비공개 자료라 공유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참 좋은 글인데 아쉽네요)
호랑 활동가는 발제문에서, 기후재난이 평등하게 다가오지 않는 현실을 짚은 뒤, 여전히 정부와 기업이 기술·자본 중심의 접근에 매달리며 ‘신기술 개발’, ‘그린워싱’에만 몰두하는 사이 피해자의 목소리는 지워지고 있다는 지적했습니다. 이는 딥페이크 성폭력 대응 방식과도 닮아 있다고 합니다. 기술적 차단 장치가 마치 해결책인 양 이야기되지만, 근본적인 권력관계와 성차별 구조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지점으로 연결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필요와 풍요를 평등하게 나누는 탈성장 사회, 인간과 비인간종 모두를 위한 돌봄 체제로의 전환. 반성폭력 운동과 기후정의 운동은 바로 이 지점에서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공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요. 다만 분명한 건, 누군가의 삶과 생존을 지탱하는 것이 개인의 힘이 아니라 함께 만든 제도와 공동체의 힘이라는 것. 그래서 공공성은 곧 평등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저만의 언어를 찾지 못해 행진단 홍보물에는 잘 반영하지 못해... 후기를 쓰며 앞부분에 기후위기와 페미니즘에 관한 설명을 덧붙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하지...) 이 고민이 곧 다음 연대의 언어가 될 거라 믿습니다.
이 후기는 회원홍보팀 겔라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