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특집기획-포르노
이번 달에는 "포르노"를 다루어보도록 하지요.
포르노를 다루는 다양한 입장들에 대하여 쭈욱 설명하고 있는 글을 싣습니다.
출처는 지난 7월, 한국성폭력상담소 21세기여성미디어운동센터에서 주최한 <매체비평 교사연수> 자료집입니다.
"포르노그라피와 여성" 같은 글은 다음 기회에 싣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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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의 이해 : 포르노에 관한 다양한 이론적 접근방법
조종흡 (동국대 영화영상학부 연구교수)
1. 들어가는 말
포르노 산업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포르노의 종류는 책과 잡지, 비디오 그리고 영화 등 온갖 미디어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새로운 미디어 기술이 소개될 때마다 포르노는 신기술의 첨단 소프트웨어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확한 통계를 산출할 수는 없지만, 전문가들에 의하면, 전 세계 포르노 산업의 순이익이 영화와 음반 산업을 합친 것보다 많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최근에는 케이블, 위성, DVD, 인터넷 등 미디어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포로노의 확산은 거의 통제 불능의 상황에까지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이런 포르노의 확산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올바른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포르노의 사회적 영향에 관한 주제는 아주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아직까지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학자들의 뚜렷한 합의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철학과 정치적 입장에 따라 그 영향력이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사의 일부로 취급하는 학자들도 있다.
여기서는 포르노와 관계된 다양한 사회적 쟁점들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포르노의 개념을 설정해 보고, 이에 따른 포르노의 구분짓기를 통해 각기 다른 종류의 포르노가 어떤 사회적 영향을 야기 시키는지 그 차이를 이해한 다음, 이를 토대로 발전된 포르노에 관한 다양한 이론적 입장을 정리해보도록 한다.
Ⅱ.포르노의 역사
섹스는 역사상 최초의 예술적 대상 중 하나였다. 동굴 벽화나 도자기 그리고 조각품에서 성행위를 묘사한 그림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미 로마시대 이전에도 현대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성적 묘사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행위까지 포함해서)가 유행했다. 이것은 단지 서구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문명을 통해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예술 형태로서 인도나 중국에서도 성애에 관한 이야기가 유행하기도 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제임스 조이스(Joyce)의 <율리시즈>(1914)나 로렌스(D. H. Lawrence)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1928) 등의 문학작품과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또는 <카널 날리지>같은 영화가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나 결국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존중되는 선에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함으로서 이들 작품과 노골적인 포르노와 구분을 지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마광수와 장정일의 소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성행위를 묘사한 작품을 평가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예술작품이 추구하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시민자유가 결국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포르노가 잠정적으로 위험한 것으로, 따라서 법적 제제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란이 진행되는 동안 70년 대 이전까지만 해도 포르노에 관한 구체적인 사회적 효과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만큼 체계적인 연구가 미흡했다는 이야기다.
연구결과가 미흡하다고 해서, 포르노에 관한 견해가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다양한 의견들이 신념에 입각해 양산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종교계에서는 도덕과 퇴폐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고, 법조계에서는 포르노가 행동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몇가지 가정에 입각해서 그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 가정은 수간(bestiality)과 같이 사회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행동을 고무하는 것에서부터 강간이나 폭력을 유도하는 묘사가 포함된 다양한 상황을 망라한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여성계에서 포르노가 여성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비하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포르노 철폐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문제는 이들이 문제 삼고 있는 포르노의 정의가 각기 다르다는 사실이다.
Ⅲ. 포르노의 정의
바로 그런 이유에서 포르노를 정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주의주장의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포르노를 정의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페미니스트들은 자유주의 사상에 젖어 있는 문화 엘리트들의 포르노에 대한 방관자적 입장이야말로 포르노가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간접적인 이유라고 주장할 정도다. 그러나 포르노 정의에 관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포르노를 소프트 코어 포르노 (soft-core pornography)와 하드코어 포르노(hard-core pornography)로 구분하는데는 동의하고 있다.
소프트코어 포르노에서는 주로 여성의 몸이 전시되는 것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 잡지에 게재된 센터폴드(centerfold)를 들 수 있다. 여성의 몸 전체와 더불어 어느 특정한 몸의 일부가 강조되는 그림을 연출하는 소프트코어 포르노는 지극히 '여성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모델의 제스쳐 자체가 여성다울뿐만 아니라 그녀를 담아내는 사진 테크닉 또한 부드러운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조명과 프레임을 온화하게 연출해 모델의 여성미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세련되고 고상하게 표현한 여성의 이미지가 담긴 소프트코어 포르노 잡지에는 하드코어 포르노와 달리 고급 상품의 광고가 넘쳐흐른다. 꼬냑과 위스키, 벤츠 자동차, 소니 텔레비전 등 고급회사의 제품들이 아주 버젓이 선전되고 있다. 정치인들과 문화계 엘리트들의 인터뷰 기사가 포함되어 있고, 상품정보와, 성에 관한 어드바이스, 주류의 단편소설 등이 실리기도 한다. 소프트코어 포르노는 한마디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전략을 통해 기대하는 효과는 독자들로 하여금 소프트코어 포르노를 포르노로 여기지 않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일종의 계급적 구분인 셈이다. 소프트코어 포르노는 고급 예술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나체의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장소는 부와 특권이 나타나는 곳이다. 고급 맨션, 요트, 골동품 혹은 최신의 최고급 자동차, 이런 곳에서 모델은 활동한다. 고급스런 분위기로 여성의 나체가 주는 충격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 수준이 높고, 수입이 좋은 계층에서 소프트코어 포르노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드코어 포르노는 소프트코어 포르노의 반대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허슬러>나 <팃 토쳐(Tit Torture)>와 같은 잡지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하드코어 장르에서는 하나의 여성 모델이 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남자들이 동시에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소프트코어 포르노에서도 남성 모델이 여성과 함께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둘 사이의 가벼운 포옹이나 성행위를 묘사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반면에 하드 코어에서는 남녀의 성기가 클로즈업 되어 노골적인 성교의 장면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차이가 있다.
소프트코어 포르노가 여성의 몸을 엿보는 것(voyeurism)에 치중한다면, 하드코어는 남성 관객들로 하여금 구체적인 환타지를 생산토록 유도하고 또 더 나아가 포르노 속 주인공과 수용자가 일체감을 느끼도록 초대한다. 따라서 하드 코어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환타지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더욱 큰 문제는 하드 코어가 실제 성행위를 묘사하는 장면인지라, 그 경우의 수가 한정된 레파토리이기가 쉽고, 그렇기 때문에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성행위의 묘사가 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반여성적 행위에 수용자들이 일체감을 느끼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죄의식을 털어 버린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도매조키스틱(sadomasocistic)한 포르노, 특히 여성 주인공에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는 장르는 최근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여성운동가들에 의해 전면적인 타도 대상이 되고 있다. 여기서는 남성들이 여성을 일방적으로 지배함으로써 섹슈얼리티를 지배-복종이라는 권력의 행사로 재현하고 있다. 이는 섹스를 권력의 관점에서 주인과 하인의 시나리오로 표현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남성성이 주인이 되고 여성은 고작해야 폭력의 대상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거의 모든 경우, 포르노에서는 남성의 오르가슴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상품이다. 여기서는 발기된 남근, 여성의 성기, 그리고 삽입만으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문제는 포르노가 남성 시청자의 눈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따라서 억압적일 수밖에 없다는데 있다. 이렇게, 포르노는 남성의 생리적 고백 순간을 이미지로 재현한 것이 성에 대한 진실이라고 주장한다. 거대한 남근을 만족시키기 위해 여성의 수동성이 강요될 뿐이다. 여성의 육체는 오로지 남성의 배설로 표현되는 소비행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폭력은 남녀 사이에 나타나는 자연적 차이를 사회적, 문화적 의미로 바꿔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포르노가 이 과정에서 그런 비민주적이며 반여성적인 문화적 가치를 제공하고 있음은 말 할 나위가 없다. 바로 이 점을 많은 반 포르노 운동가들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Ⅳ. 포르노의 5가지 분류법
소프트코어와 하드코어의 구분이 모호한 상황에서 포르노를 구체적으로 분류할 목적으로 해악의 정도에 따라 5가지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는 하드코어와 소프트 포르노로 구분하는 것보다 훨씬 상세하게 분류한 것이며, 따라서 포르노의 종류를 규정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1. 제 1종 포르노 : 성적으로 폭력적인 포르노
채직과, 쇠사슬, 고문도구 등이 등장하는 사도메조키스틱한 주제를 담고 있는 포르노가 대표적인 경우다. 여기서는 실제로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모두 성적인 자극과 직접적으로 관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성적으로 폭력적인 포르노는 수용자들에게 공격적 반응을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또,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기가 쉽다는 것도 제시하고 있다. 이런 포르노에 장기간 노출되어 있는 수용자들은 성범죄에 대한 태도 변화도 가져온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은, 예를 들어, 강간범들의 범법사실에 대해 훨씬 관대할 뿐만 아니라, 강간을 당하고 있는 여자들이 실제로 그런 사실을 즐기고 있다는 '강간신화'를 믿고 있다는 것이다.
2. 제 2종 포르노
비폭력적 포르노이지만 퇴폐적이고, 억압적이며, 굴욕적인 장면이 포함되어 있는 포르노. 제 2종 포르노에서는 여성을 메조키스틱하고, 비굴한 존재로, 사회적으로 분별력이 없는 색정증 환자로 묘사하고 있다. 즉, 여성이 남성의 성적욕구를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살펴주는 장면이 담겨있는 포르노를 일컫는다
. 3. 제 3종 포르노
퇴페적이지 않고 폭력적이지 않은 포르노. 여기서는 남녀 두 사람이 등장해 서로의 합의하에 동등한 입장에서 성교나 오랄 섹스 또는 두 쌍의 남녀가 동시에 성행위를 하는 장면이 담겨 있는 포르노다.
4. 제 4종 포르노 : 나체
이는 단순히 인간의 나체를 전시한 경우를 말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3종과 4종 포르노에 대해서는 반사회적인 것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5. 제 5종 포르노 : 아동 포르노
이는 어린이들을 성적으로 착취해 제시한 가장 악랄한 형태의 포르노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어린이들이 실제로 어른이나 다른 어린이들과 성적 행위를 수행하도록 만든 다음 사진이나 비디오로 만드는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이는 아동학대의 차원에서 판단할 수 있으며, 실제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아동 포르노는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Ⅴ. 포르노에 관한 다양한 이론
그러나 포르노가 가지는 사회적 함의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그렇게 다양하게 존재하는 포르노에 관한 이론을 분류해 보면, 대체로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포르노의 무해론을 제기하는 이론과, 정반대로 유해론을 주장하는 입장, 그리고 이 둘 사이의 극단적 주장 사이에 선별적으로 포르노를 수용하고 거부하는 절충론이 있다.
포르노를 지지하는 이론적 입장은 얼핏 많은 사람들의 상식에 반하는 견해를 피력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포르노가 사회적으로 해롭기보다는 오히려 유익하다는 것이다. 섹스와 성적 흥분은 건강의 상징이고, 해방적이며, 따라서 사회적으로 해로울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담겨져 있는 하드 코어 포르노조차도 긍정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즉, 수용자들이 포르노를 통해 환타지를 생산하고, 이는 또 자신의 생리적 욕구를 대리로 충족시킬 수 있으므로 결국 현실세계에서 성범죄를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실증적으로 증명해 보이려는 시도가 실제로 있었다. 1960년 대, 덴마크에서는 음란물을 생산하고 분배하는 것을 제한하는 모든 법률을 철폐했다. 이 결과 관광과 포르노 산업은 붐을 이뤘고, 그 사회적 파장 또한 컸다. 섹스 범죄, 예를 들어, 강간, 엿보기, 어린이 학대 등이 즉각적으로 줄어들었다. 이런 추세는 법을 철폐한 다음 해에도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포르노의 유익론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후세 학자들은 이를 연구한 카진스키(Kutchinsky)의 논문에서 오류를 발견하고 즉각 포르노 무해론을 반박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단지 비폭력적인 성범죄만이 줄어들었을 뿐 강력 사건에서도 똑같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결국 이런 사소한 비폭력적 성범죄의 감소가 전체 통계에 영향을 미쳐, 마치 성범죄가 줄어든 것처럼 만들고 있다는 반론이다. 그러나 이런 반론에도 불구하고, 포르노 무해론은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이는 포르노가 반사회적인 성범죄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는 긍정적 주장을 펴는 것으로, 포르노에 관한 논의에서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이론은 성에 관한 보다 철학적인 입장에서 발달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라이히는 성이란 진실한 인간의 본질적 본능을 회복시키는 수단이며, 따라서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정의를 실현하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런 성욕을 억제시킴으로서 자본주의의 재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만약 건강한 본능이 자유롭게 행사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육체가 자본사회에서 행해지는 강제 노동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모든 사회악이 해소되고 해방된 사회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르쿠제 또한 본능을 적나라하게 벗기고 사회적 억압기제를 폭로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본질적 가치를 회복시키는 것이 곧 사회 민주화를 실현하는 첩경이라고 생각한다.
포르노를 옹호하는 이론적 입장은 또 원천적으로 인간의 존재론적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이에 따르면, 현대인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별로 뾰족한 생의 의미를 찾아볼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의 업무에 쫒기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조차 잊어버린 상태에서, 무엇인가 인생의 의미를 찾아야 할 부담을 느끼고 있는 현대인들은 그들의 공허한 가슴을 메워주는 유일한 수단으로 섹스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인들은 구조적으로 포르노같은 오락물에서 존재론적 의미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이런 학설에 대해 이견을 보인다. 포르노를 반대하는 이론을 펼치는 학자들은 포르노는 폭력적이며 따라서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반여성적 가치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론을 제시하는 대표적인 반 포르노 활동가로 캐서린 맥키난(Catharine MacKinnon)과 드워킨(Dworkin)을 들 수 있는데, 그들은 포르노야말로 여성들이 학대받는 모습을 나열해 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일축한다. 맥키넌에 의하면 포르노에 그려진 여성의 이미지는 지극히 부정적이고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구체적인 모습을 나열한다.
1)여자들이 단순히 성적 대상으로, 물건으로 또는 상품으로 제시되고 있다.
2)여자들이 모멸과 고통을 즐기는 성적 대상으로 제시되고 있다.
3)여자들이 심지어 강간과, 근친상간, 또는 다른 성폭력을 경험하면서도 이를 성적으로 즐기는처럼 묘사하고 있다.
4)여자들이 밧줄에 묶인 모습으로, 때로는 고문을 받는 고통스러운 형상으로, 즉 그들의 몸이 망가지는 순간에도 남성들 의 성적 환상을 만족시켜줘야만 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5)여자들이 취하는 굴복적인 자세, 마치 노예와도같은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6)여성의 몸을 부분으로 나눠, 특히 성기와 가슴 그리고 엉덩이 부분을 확대해서 제시함으로서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몸 전체가 부분으로 축소되어 재현되고 있다.
7)여성들이 물건이나 동물들에 의해 삽입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8)여성들을 타락한 모습으로 묘사하고, 굴욕적인 상황을 연출해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며, 고문을 당하면서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여줌 으로서 도착적인 환상을 유도하며, 불결하거나 열등한 모습을 띄고 남자들이 명령한대로 따르는 동물과 같은 존재로 제시한다.
재고의 여지없이, 반 포르노 운동가들의 입장에서 포르노는 여성에게 행해지는 소름끼치는 학대 이상의 그 무엇이 될 수 없다. 포르노의 연구 결과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포르노에서 강압적인 섹스를 자행하는 장면을 보는 남성들은 폭력적인 성적 환상을 갖게 되고, 그들의 행동 또한 포악한 것으로 돌변하며, 반여성적 태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결과를 실험 결과 도출해 낸다. 특히 강간을 이미 저지른 범인들이 단순히 섹스를 묘사한 소프트 포르노보다는 폭력과 섹스가 결합된 하드 코어 포르노를 선호한다는 사실은 바로 이런 반 포르노 운동가들의 주장을 뒷받침 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들을 비판하는 또 다른 그릅들은 포르노가 모두 맥키넌이나 드워킨이 주장하는 대로 여성에게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이들의 입장이 현실을 무시한 과장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포르노에서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경우가 더러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남녀의 성행위를 묘사하는 것에 그치고 있고, 또 대부분의 수용자들이 그런 소프트코어 포르노를 선호하고 있는 사실을 맥키넌과 드워킨은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일부의 페미니스트들은, 소프트코어 포르노와 하드코어 포르노의 구분이 필요하며, 우리가 반대해야 할 포르노는 남근 중심주의에 빠져 있는 남녀관계를 재현한 성행위라는 것이다. 만약 소프트코어 포르노가 단순히 성적 느낌만을 자극하는 것이라면, 그 자체로 배척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여성의 지위와 가치를 남성중심적 시각으로 판단한 이미지는 반대해야 할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Ⅵ. 포르노를 어떻게 반대할 것인가?
성의 문제는 단순히 생리적인 현상만은 아니다. 그러나 포르노를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 포르노가 주는 메시지는 자연현상으로서 생리적 고백을 관걕에게 전달한다는 것이지만, 또 남녀의 성적 본능을 어떤 문화적 가치의 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포르노는 주장하지만, 실상 포르노가 전달하는 의미는, 많은 경우, 남근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문화·사회적 가치인 것이다.
그러나 포르노에 나타나는 남근중심주의가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가치가 아니라 사회적 구성의 산물이라면 이는 수정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아무리 남성 우월주의가 본능적이고 생물학적으로 미리 결정된 현상처럼 보인다고 해도, 그들이 당연하게 요구하는 지배적 위치는 사회 문화적 과정을 통해 그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잠정적인 결과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남녀 관계는 보다 민주적인 모습으로 항상 되돌릴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포르노를 반대하는 운동가들의 포르노 비판이 남근의 공격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것은 문제의 핵심을 잘못 파악한, 잘못된 전략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남근을 비판함으로써 그것이 가지는 상징적 권위도 동시에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남근과 남근상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남근중심적 의미의 남근상이라는 개념은 현실적인 것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단지 모두가 원하는, 그러나 누구도 소유하고 있지 않은 허상일 뿐이다.
남근은 이와 반대로 실재적이다. 포르노가 남근상적인 이유는 남근을 보여줘서가 아니라 섹스에 관한 진실을 알고 있다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섹스가 단 하나만의 진실로 존재하는 것처럼, 그것도 남근의 쾌락만을 중심으로 이뤄진 것처럼 전제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만약 반 포르노 운동가들이 남근상을 비판하는 대신 남근을 공격한다면, 그들은 남성성의 진정한 힘의 원천을 잘못 파악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문제는 남근이 아니라 남근상인 것이다.
따라서, 일부 반 포르노 운동가들이 주장하는 남근중심의 포르노를 배척하는 운동과 더불어, 여성들이 남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포르노를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만약 이렇게 생산된 새로운 형태의 성문화가 다양성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라면, 즉, 남근이라는 하나의 기준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시각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일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