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1일, 일본의 와세다봉사원의 스터디투어팀이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찾아주셨습니다. 먼저 한국의 반성폭력운동과 상담소의 역사, 그리고 미투운동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들에 대해 브리핑을 한 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래는 방문해주신 분들께서 질문해주신 것, 그리고 상담소에서 답변한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Q. 현재 활동하는 상근자는 몇 명인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가?
A. 부설기관 포함해서 17명이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여성폭력이 종식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활동하고 있다. 19년 3월에 활동을 시작한 사무국의 닻별 활동가의 경우 대학교에서 4년간 반성폭력운동을 하고 상담소 인턴활동을 거쳐 상담소와 함께 하게 되었다.
Q.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이후 남성의 인식 변화를 위한 접근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A. 이 사건 이후 많은 2030여성들이 각성하여 페미니즘에 관련된 단체들을 만들고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 중 불꽃페미액션이라는 단체에서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Q. 상담소의 재정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A. 상담소의 예산 운영 원칙이 있는데, 전체 예산의 50% 이상을 정부에서 지원받지 않는 것이다. 이는 상담소의 재정자립을 위한 것이고, 때로는 정부와 협력하기도 하지만 정부를 감시하는 NGO의 자립성과 색깔을 유지하기 위한 방침이다. 그래서 후원회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래서 활동가 모두가 바쁜 가운데 기금마련 업무에도 힘쓰고 있다. 활동가는 해마다 5명의 후원회원을 모집하는 것이 원칙이고, 올해도 후원의 밤 행사를 예정하고 있다.
Q. 열림터에서는 몇 명이 생활할 수 있는가?
A. 최대 10명이 생활할 수 있는데 가능한 7-8명 정도만 생활하도록 하고 있다. 열림터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70% 정도가 친족성폭력 피해자이고, 연령대는 10대에서 20대 초반이 가장 많다. 정부정책상 열림터에서 생활이 가능한 기간은 1년인데, 경우에 따라 연장도 가능하다.
Q. 한국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A. 주로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보통 1회성으로 진행되며 학교 측에서 자율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교육의 질이 담보되지 않는 편이다. 비디오를 틀어놓고 학생들에게 시청하게 하는 방식으로 교육하는 학교도 있다. 정작 알고 싶은 건 알려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학생들도 있다. 교육부에서 성교육 표준안을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지만, 이것 역시 성폭력에 대한 통념이나 성별이분법을 강화하는 내용이라 문제가 있다. 그래서 상담소에서는 ‘포괄적성교육권리보장을위한네트워크’에 참여하여 성교육 표준안 폐기 및 새로운 성교육안을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Q. 성문화운동팀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는가?
A. 가부장제적 성문화를 바꾸는 활동을 하는데, 구체적인 활동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현재 ‘피해와 생계 사이’라는 성폭력 생존자가 만들어가는 회복과 치유 과정에 대한 연속집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진행한 집담회의 주제는 ‘성폭력과 싸우는데 내가 들인 비용’이다. 법정 대응에 소요되는 비용이나 산부인과, 정신과 등의 병원비 뿐만 아니라 생존자가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소요되는 실질적인 비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직장 내 사건의 경우에는 높은 확률로 피해자가 퇴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입이 줄어들거나 끊긴 상태에서 내가 영위하던 일상의 고정비용 뿐만 아니라 말그대로 행복한 상태가 되기 위해서 추가로 소요하는 비용들, 이를테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여행을 간다든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새로 찾는다든지, 운동을 시작한다든지 등 일상을 붙잡을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것들을 하는 것에도 모두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Q. 한국에서는 성폭력 관련 법제도 제·개정운동이 활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의 과제는 무엇인가.
A. 일본도 그렇지만 한국 역시 폭행·협박이 있어야만 강간죄가 성립하는 구성요건을 두고 있는데, 현재 이를 ‘동의 여부’로 바꾸기 위한 강간죄 개정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208개 단체 가 모여서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를 진행하고 있고 또 법조인, 법률가, 활동가들이 모인 전문가회의를 구성해서 구체적인 법안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 안에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이 목표이다.
Q. 개소 이후로 현재까지 8만여건이 넘는 상담을 했다고 하셨는데, 경향성이나 변화 추세가 궁금하다.
A. 상담소가 1991년에 개소했을 당시에는 성폭력을 전문으로 상담하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상담을 상담소에서 진행했다. 그러나 현재는 장애, 청소년, 사이버성폭력 등 각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상담소들 역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상담 역시 분화되고 있는 경향이 있다. 상담소에서는 해마다 상담통계를 통해 각 해의 경향성을 분석하고, 또 연구소에서도 주요한 주제를 선정해 상담경향을 분석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와세다봉사원 스태프 측에서 일본의 여성들에게 보내는 연대의 메시지를 요청하셨습니다. 여기에 열림터의 사자는 “어떤 피해를 입으면 여성들은 자책하는 경향이 있는데, 당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당신이 그때 취한 행동이 최선이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답했고, 지리산은 “미국여성, 영국여성, 스웨덴여성이 할 수 있으면 한국여성도 할 수 있고, 한국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면 일본여성도 할 수 있다.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자.”고 답했습니다. 앞으로도 한일 양국의 여성인권운동의 연대가 지속되기를 희망하며 글을 마칩니다.
<이 글은 사무국 닻별, 연구소 주리가 함께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