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3일부터 7월25일까지 이안젤라 홀에서 진행된 32기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이 긴 여정을 마쳤습니다.
7월 폭염과 장마의 한 가운데에서 17일간 오프라인으로 출석하면서 끊이지 않는 질문과 심도깊은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토론시간과 오이🥒를 좋아하던 27명의 수강생분들과 함께 페미니스트 지식과 연대에 흠뻑 빠졌던 지난 100시간!
100시간을 함께한 교육생들의 후기를 공유합니다:) 후기를 작성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첫번째 후기: 권진영
교육을 신청했을 때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학기 중 외면하고픈 수많은 과제 앞에 살짝 정신줄을 놓고 신청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페미니즘 언어의 확장을 갈망하던 참에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 커리큘럼이 마음에 들어 무작정 신청했던 것 같다. 입체적인 권력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폭력에 저항하지 못한 채 무기력해졌던 시간들, 폭력을 폭력이라 합의하지 못하고 놓쳐 버렸던 사건들이 나로 하여금 성폭력전문상담원 기본교육을 신청하게끔 만들었다. 막연하게, 무언가를 얻고 싶었다.
이 점진적이고도 충동적인 과정에서 간과한 것이 있다면 100시간의 무게와 나의 체력이었다. 특히나 나의 체력은 교육 기간 동안 있었던 여러 죽음 앞에 더욱 급속도로 고갈되었다. 분노는 때로는 간극을 담아 허망함이 되기도 하니까. 하루는 집에 돌아와 동거인에게 "여성주의 교육을 100시간 듣는 것은 참 힘든 일인 것 같다"고 말했더니, "사람이 뭐든 100시간을 하면 힘들다"는 대답을 들었다. "심지어 잠을 100시간 자도 힘들다"며. 큰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훗날 누군가에게 이 교육을 추천할 때 100시간이라는 숫자에 망설이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싶다. 함께 수강하는 동료들이 바로 옆에 있고, 그 공존과 연대의 감각이 더 많은 것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의 또한 하나도 빠짐없이 만족스러웠다. 강간죄에서 폭행·협박이 구성요건으로 있을 때 법은 되려 무엇을 용인하는지, 공소시효가 붙잡는 발목은 누구의 발목인지, 사회가 가정에 의탁하는 것은 무엇을 가리는지, 공동체의 거대함은 얼마나 개인을 외롭게 하는지, 청소년·장애·성소수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지, 구조 속 가장 조명받지 않은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있는지. 강의를 통해 해결하고 얻는 질문들이 100시간을 가득 채워주었다.
아직도 형언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를 얻었다. 7년 전 내가 도망치듯 빠져나온 그곳에 남겨둔 것, 두 달 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그 순간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혐오보다 단단한 것은 ‘우리’임을 100시간동안 느꼈다. 더는 어떠한 생명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동기가 생겼다.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알게 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막막하지 않다.
두번째 후기: 오승재
상담소에 가지 않는 일상이 낯설기만 합니다.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평일이면 부지런히 몸을 일으켜 이안젤라홀까지 걸음을 재촉하던 버릇이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저는 <일상을 회복했다>는 문장을 쓸 힘을 얻기 위해 교육을 듣게 되었습니다. 상담원으로서 다른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는 역량과 태도를 갖추게 된다면 성폭력 피해자로서 <일상을 회복했다>는 문장 또한 쓸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폭력 피해자로서 <일상을 회복한다>는 표현의 의미를 고민하면서 살아왔습니다. 피해 사실에 대해 말하고 행동하기를 결심한 시점부터 <일상을 회복한다>는 말이 곁을 맴돌았습니다. <일상을 회복하고 싶다>는 말을 쓸 때마다 어떤 순간에 이르러야 비로소 <일상을 회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명확한 답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언제인가 법적 절차를 끝마치면 <일상을 회복했다>는 소회를 밝힐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었습니다.
때로는 그 추측이 틀리지 않았는가 자문하기도 했습니다. 법적 절차를 거치면서 <일상을 회복했다>는 말과 멀어질 때도 많았습니다. 가해자에 의한 2차 피해는 물론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뤄진 강도 높은 경찰 조사 역시 회복하려는 일상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당시 일기에는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 대신 <나와 같은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만든 제도 안에 갇혀 있다>는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걱정과 조바심에 짓눌리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결국 <일상을 회복했다>는 문장을 쓰지 못하지는 않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고비마다 도움과 지지, 그리고 연대의 손길을 만났습니다. 덕분에 가해자는 응분의 형사 처벌을 받았고 법적 절차는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도 저는 <일상을 회복했다>는 문장을 쓰지 못했습니다. <온전한 피해 회복과 일상 복귀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로 대신할 뿐이었습니다.
한동안 노력 대신 무력(無力)을 택했습니다. 노력과 무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을 무렵에 상담소에서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노력의 방향으로 몸을 기울여보기로 마음을 먹고 수강을 신청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많은 힘과 지식, 용기를 얻게 될 것이라는 상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첫 강의 <여성인권과 반성폭력의 역사>부터 마지막 강의 <대상별 성폭력 상담실습>까지 수강하면서 조금씩 <일상을 회복했다>는 문장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의 성폭력 피해 경험에 멈춰 서지 않고 다른 피해자의 경험을 경청하는 법, 지원 방법을 고민하고 찾아내어 적용하는 법, 나아가 성폭력 피해를 야기하는 사회 구조와 문화를 바꿔내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을 보낸 덕분입니다.
물론 교육을 듣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교육 첫 주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진 일이 있습니다. 파스 하나 붙이고 교육을 듣다 통증이 심해져 병원에 갔더니 오른쪽 척골에 금이 갔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쳤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교육 내용을 제대로 필기할 수 없다는 사실에 속이 상했습니다. 더운 날씨 팔목에 깁스를 하고 다니려니 긍정적 생각보다 부정적 생각에 가까워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교육을 듣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부상을 입었다>는 말도 안 되는 자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교육을 마치고 정형외과에 갔는데 표정이 유달리 어두워 보인 모양입니다. 진료를 보던 의사가 지나가듯 말 한 마디를 건넸습니다. <부러진 뼈가 붙으면 전보다 튼튼해져요>. 의사는 <진료를 받으면서 밥과 약을 잘 챙겨 먹으면 금방 나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부러진 뼈가 붙듯 일상의 회복이 이뤄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 100시간은 부러진 뼈가 붙는 시간이면서 <변화하는 주체>로 거듭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일상을 회복했다>는 문장을 쓸 용기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곁에서 돕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게 해주었습니다. 반성폭력에 대한 진심과 열의를 가지고 같이 강의를 들었던 동료 수강생 여러분과 역시 같은 마음으로 강의를 해주신 강사님들 덕분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성폭력 피해자로서 <일상을 회복했다>는 문장 쓰기를 넘어 다음 용기를 내보기로 결심을 굳혔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다른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해 힘쓰기로 했다>는 문장을 쓰고 싶습니다. 그 문장을 쓰고 나아가 실천까지 하게 된다면 분명 올해 받은 교육 덕분일 것입니다. 어떠한 기회든 마다하지 않고 반성폭력 운동에 기꺼이 손을 보태겠다는 다짐을 나눕니다. 보다 많은 분들과 반성폭력의 용기 있는 언어를 써내려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