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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말하기 특집③] 생존자 다온님을 만나보았습니다
  • 202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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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말하기 특집, 그 마지막으로 성폭력피해생존자 자조모임 '작은말하기'에 3년 간 함께 해온 다온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작은말하기 특집①] 작은말하기 담당 활동가와 만나보았습니다!

[작은말하기 특집②] 생존자 푸른나비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기자단 틈의 은유입니다. 8월 친족성폭력 생존자 푸른나비님과의 인터뷰에 이어, 작은말하기와 3년간 인연을 이어온 다온님을 만나보았습니다. 다온님은 다온이 순우리말로써 자신에게 보다 즐겁고 기쁜 일이 다가올거라는 소망을 담아 본 닉네임을 지었다고 소개해주셨습니다. 


1. 작은말하기에 나와야겠다 결정한 어떤 동기가 있으셨나요?

작은말하기를 알기 전에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뉴스가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입장을 말해주는 뉴스였어요. 다시 그 뉴스가 떠오르게 된 것은 시간이 많이 흘렀고 따로 심리상담을 많이 받고 있을 때였는데, 혼자서 자조모임을 만들어볼까? 아니면 그런 모임이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 상태였어요. 제 친구 어머니가 성교육센터에 계신데 그 선생님께 여쭤본 적이 있는데, 제게 작은말하기를 얘기해주셨어요. 그때부터 작은말하기에 대해 알아봤는데 마침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이 되는 거더라고요. 그렇지만 참가할 용기는 없었는데 상담을 계속 받던 중에 상담사 선생님께서 자조모임을 한 번쯤은 나가도 괜찮을 거 같다고 해주셨어요. 그렇지만 자조모임에 가게 되면 부정적인 감정도 생길거고 그에 따라서 좋지 않은 것도 생길 수도 있겠지만, 한번 고려를 해보라고 하셨고 작은말하기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2. 작은말하기에 참여하기 전 기대하신 바가 있었을까요? 어떤 마음으로 처음 임하게 되었는지 나눠주세요. 

처음에는 긴장도 많이 했고, 두렵기도 했지만 설레었던 것도 있었어요. 제가 성폭력에 대한 상담을 받는 것을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시절에 작은말하기를 알게 되어서 다른 생존자를 만나는 것이 어렵기도 했고, 우리가 함께 얘기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참여했던 기억이 나요. 막상 작은말하기에 참여했을 때, 연령대가 다양해서 놀라기도 했어요. 사실 제 나이 또래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훨씬 어린 분들도 있었고 훨씬 나이가 많은 분들도 계셨거든요. 그 분들을 만나고 한편으로는 ‘나이가 들어서도 내 상처가 치료되지 않으면 어쩌지’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시간이 흘러서 ‘다른 사람한테 도움이 될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길 수도 있겠다’ 라는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3. 작은말하기 이외의 공간에서 다온님의 경험을 말한 적이 있나요?

저는 상담을 통해 제 경험을 얘기하게 되었는데, 저의 피해 경험을 말했을 때 그때 상담사 선생님이 성폭력에 대한 기준을 잘 모르셨어요. “이것은 성추행이고, 저것은 성폭행”이라고 말씀을 해주셨지만, 제가 나중에 성폭력상담소에서 성폭력에 대한 교육을 따로 받았는데 그 설명이 틀린 정보였어요. 우리는 아직까지도 성추행은 만진 것, 성폭행은 삽입 유무로만 단순히 생각하는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인식이 명확하지 않은 게 아쉬운 부분이에요. 제 피해경험도 시간이 흐른 후 성폭력에 대한 교육을 통해 성폭행이었다고 인식하게 되었으니까요. 상담의 공간을 제외하고는 아직 제 경험을 말한 곳은 없지만, SNS를 통해서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시를 쓰고 있어요. 


4. 다온님의 경험을 말하게 되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렸나요?

8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처음 코로나 이전에 작은말하기에 참여했었는데, 코로나가 확산되고 난 이후로는 마스크 쓰고 만나기도 하고, 줌으로도 만나기도 했어요. 저는 많은 얘기를 하진 않았지만, 몇 번 모임을 나가다가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 그 이후로 조금씩 얘기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작은말하기는 12월에 파티를 열거든요. 저는 거기에 저를 위해서도, 다른 생존자를 위해서라도 꼭 참여했었어요. 

말하기 이전에 저는 울기 바빴고 화도 많이 났어요. 감정의 기복이 많았던 때여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제가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악기 연습실에서 계속 울기만 정도로 학교라는 공간도 정말 스트레스였고 게다가 연습실에서 늘 혼자 있었는데 매번 울고 화내고 불안하고 또 다시 우는 일만 반복되었어요. 어느 날에는 담임선생님이 제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서 왜 우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는데, 그때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그냥 괜찮다고만 했었어요. 그 뒤에도 하도 제가 울기만 하니까 “네가 이렇게 힘들면 학교에 나오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라. 네가 가고 싶은 곳을 가보고, 하고 싶은 걸 해보면서 너를 위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참 감사했었죠.


5. 다온님의 경험을 다른 사람한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어떤 힘으로 가능할까요?

제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우선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이 사람과 얘기했을 때 안전감이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도 따지고, 이 사람이 내 경험을 함부로 얘기하는 사람이냐 아니냐도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는 일부러 개명을 했는데 개명을 한 뒤로는 제 경험을 잘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어요. 개명한 이후로 제 이야기를 하게 될 때, 제가 아니라 ‘이 아이가 그랬을 때’라고 표현해요. ‘이 아이가 어떤 삶을 살았는데’ 이렇게 얘기해요. 가끔 과거의 감정이 와도 ‘아, 네가 왔구나’ 지금 제가 원하는 저의 모습이 있다면, 지금의 제가 과거의 ‘이 아이’를 보내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 의식이 사실은 제가 저에게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훨씬 제 마음이 편해졌달까요. 상담을 가면 워낙 ‘너 자신을 사랑해라, 보듬어줘라’ ‘뭐를 하고 뭐를 해라’ 얘기하잖아요. 개명한 이후로는 제가 이름이 ‘두 개’다 보니까 그 과거의 이름을 불러 위로해주는 힘이 생겼어요. 

개명을 해야겠다는 건 순전히 제 의지였는데, 그 무렵에 갔던 2박 3일 집단상담에서 제대로 저를 위로해봤다고 할까요? 어떻게 했냐면 명상을 했었어요. 명상 할 때 진행하는 선생님께서 ‘어릴 적 나로 돌아가볼까요’ ‘어떤 순간으로 돌아가볼까요?’ 이런 뉘앙스의 질문을 하셨어요. 제가 곰 인형을 좋아하거든요. 명상하면서 힘들었던 저를 떠올렸는데, 그 아이는 제가 좋아하는 곰 인형을 안고 있었어요. 저는 그때 저에게 ‘미안하다’라는 얘길 처음 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절 사랑하지 않았고, 사실 많이 미워하고 혐오했거든요. 그래서 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마음의 소리를 처음 들었어요. 그리고 ‘나 많이 힘들었겠다’ 이렇게 말한 적이 생전 처음이어서 많이 울었고, 위로도 함께 했어요. 지금도 제가 많이 힘들 때 그 방법을 쓰거든요. 스스로 명상을 시작하고 제게 질문해서 과거의 저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상담을 다녀온 이후로 새롭게 살아갈 힘이 생겼고, 개명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의지가 확고해져서 스스로 작명소에 가서 제 손으로 제가 원하는 이름을 골라 아버지께 보여드렸어요. 어머니는 네가 개명하고 싶어 했으니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셨었고요. 


6. 작은말하기에 참여하면서 얻은 것들이 있을까요?

작은말하기는 12월마다 파티를 하는데, 거기서 ‘나한테 선물하기’ 행사가 있어요. ‘나한테 어떤 선물을 하지?’ 그때 저에 대한 고민을 처음 해봤고, 그때부터 저를 알아가려 하게 되었어요. 그 행사 이후로 제가 좋아하는 것과 제가 갖고 싶은 것,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용기 또한 생겼어요. 작은말하기 통해서 친족성폭력을 알리는 팀이 있는데, 제가 직접 나서진 않았지만 참여 하기도 해요. 그리고 저는 감정을 조절하는 것도 작은말하기 통해서 배웠어요. 다른 생존자들이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으면 제 감정도 함께 올라오거든요. 감정을 누르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저는 하도 많이 울다 보니까 누르는 힘이 필요하기도 했어요. 그 당시 워낙 감정의 기복이 컸었고, 한번 폭발해 버리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화를 내기도 하고 제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니까. 정말 누르는 힘이 필요했고, 그렇게 작은말하기 통해 릴렉스하는 힘을 길렀어요.


7. 작은말하기 참여 당시, 다른 생존자분들 얘기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셨어요?

제가 예전에 다른 생존자들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내용에 기분이 상했던 적이 있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그 당시에는 작은말하기에 참여한 게 극 초반이었고, 불쾌했었나봐요. ‘와 이런 얘길 하는구나.’ ‘이런 얘길 적나라하게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제가 그 감정을 컨트롤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8. 작은말하기에 정의내려본다면?

‘두려운 쉼’. 처음에 작은말하기에 오신 분들은 대부분 불안해하고 두려워하지만, 그러면서도 내면에서는 쉼을 얻고 싶어하는 분들이 다수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두렵지만 쉼표의 공간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제가 작은말하기에 참여할 초반에는 매월 열심히 갔었는데, 생존자들이 있는 공간이 저한테는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나마 제게 안정된 공간이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또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할 공간이 없었거든요. 가족에게 얘기를 해도 “또 그 얘기냐. 끝난 얘기를 왜 또 하느냐” 이런 분위기였어요. 일대일 상담을 받는다고 해도, 저는 상담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상담사에 대한 신뢰를 갖기도 어려웠어요. 그래서 나랑 맞는 상담사를 만나야 하는데 그런 상담사를 찾기가 오래걸렸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 끝에 마지막으로 작은말하기에 가보자! 오죽하면 이런 심정으로 찾아갔었으니까요.


9.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자기 상처를 굳이 숨기거나 억누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물론 저도 상처를 누르고 있고 숨기고 있어요. 하지만, 이걸 너무 누르고 있다 보면 한번은 터져버리거든요. 그때는 걷잡을 수 없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굳이 숨기려 말고, 가능한 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누군가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저같은 경우도 정말 많이 참았다가 감정이 터져버린 적이 있어서 이 기간에는 치료하기도 굉장히 힘들다고 느꼈었거든요. 왜냐하면 이미 빵 터져버렸고, 내가 여기서 어떤 행동을 할지도 모르겠는데 병원에 가는 것도 도움 안 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한,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이라도 ‘나 힘들어. 나 건들지마. 냅둬’라고 말해보는거예요. 꼭 내 피해상황을 말하라는 게 아니예요. 나의 상황을 미리 알린다면 서로 편안하지 않을까. 제가 터득한 방법이예요. 



  다온님은 악기를 전공한 경험과 함께 음악치료를 공부하고 있으며, 본인 역시 성폭력생존자이지만 다른 생존자들에게 음악치료로 한 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나눠주셨습니다. 음악으로는 피해사실에 대해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되고, 자기 이야기를 가사로 멜로디에 실어서 노래할 수 있다고 얘기해주시는 다온님. 그녀는 이미 다른 생존자들에게 마음을 열어 치유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자원활동가 기자단 틈의 은유 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