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으로서의 역할을 망각하고 있는 김용원, 이충상 위원을 강력히 규탄한다.
-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에 제출할 독립보고서를 조속히 통과시켜라 -
어제(3월 11일)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제5차 전원위원회에서 일부 위원들의 강한 반대로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 대한민국 제9차 정부보고서 심의를 위한 독립보고서(안) 채택> 안건이 통과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김용원, 이충상 상임위원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의 진상규명과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 진실과 정의 원칙에 기반한 배상 촉구’ 및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관련 내용을 독립보고서에 절대 포함할 수 없으며, 이 두 가지 내용을 삭제하지 않으면 독립보고서(안) 안건을 통과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본 안건은 2주 뒤 열리는 제6차 전원위원회(3/25)에 재상정된다. 이미 2주 전 제4차 회의(2/26)에 본 안건이 상정되었으나, 위원장의 업무추진비 결산안을 둘러싸고 위 두 위원의 의도적인 회의 지연과 막말로 인한 회의 파행으로 안건이 논의조차 되지 못한 바 있다. 독립보고서의 유엔 제출기한이 4월 중순임을 고려할 때 매우 시급하게 논의되어야 할 안건임에도 불구하고, 의결이 벌써 1달 반째 미뤄지고 있는 셈이다.
유엔인권 메커니즘에 있어서 국가인권기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1992년 유엔인권위원회는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파리원칙)을 결의안(1992/54)으로 규정하였다. 이 결의안에 따르면, 국가인권기구는 정부, 의회 등에 대해 자문의 역할로써 인권 보호 및 향상에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하여 의견, 권고, 제안 및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특히 필요시 새로운 입법, 현행법률의 개정, 행정조치의 시행이나 시정을 권고하는 것이 중요한 책무이다. 여성인권에 관한 국제헌법이라 불리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의 당사국 심의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보고서는 당사국의 인권 현황에 대한 명확한 정보와 분석, 관점을 제공함으로써, 위원회 위원들이 인권적 관점으로 사안을 깊이 판단하고 당사국에 권고를 함에 있어 중요한 참고자료로 기능해 왔다.
그럼에도 일본군성노예제문제와 관련하여 김용원 위원은 ‘현 국제정세에서 북한, 중국, 러시아로 이어지는 블록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필요한데, 자꾸 일본군성노예제 타령을 하여 반일감정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였다. 더욱이, 중국은 몇백 년 전 ‘처녀공출’과 같은 비슷한 성노예제를 자행한 국가인데, 이는 언급하지 않고 일본에 대해서만 성노예제 문제를 꺼내는 것은 균형을 상실한 관점이라는 궤변도 늘어놓았다. 차별금지법에 관하여 이충상 위원은 독립보고서(안)에 쓰인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여론이 높다는 통계’를 문제삼으며, ‘질문의 방식‘을 바꾸면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여론은 절반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예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논리로 ‘남성 성기를 제거하지 않고 여성 정체성을 가졌다는 사람이 여자 화장실에 들어오면 여자들이 놀랄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사례를 들었다.
일본군성노예제문제는 이미 유엔 자유권위원회, 고문방지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등 다수 유엔 조약기구들이 공통적으로 일본정부의 공식사과와 진실·정의에 기반한 해결을 수차례 권고해왔던 보편적 인권문제이다. 이 문제가 보편적 여성인권의 문제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십년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피해생존자분들의 용기있는 증언과 활동, 전시성폭력 문제를 여성인권의 문제로 의제화하기 위한 활동가들의 헌신과 투쟁이 자리하고 있다.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 또한 유엔 사회권위원회, 자유권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등 국제사회로부터 지속적으로 권고 받은 사항이며, 국가인권위원회도 이미 지난 2020년 국회에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의견표명과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더욱이, 인권 보호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기준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정부와 의회를 설득해야 하는 책무를 가지고 있는 기관은 바로 국가인권위원회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제1조에 명시되어 있듯이,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의 전원위원회에서 일부 상임위원들의 반인권적 망언이 계속해서 오고 가는 것이 매우 참담한 상황이다.
회의 시간 내내 이어진 두 위원의 발언은 거의 모든 내용이 여성인권에 반하는 망언이라 일일이 지적·비판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충상 위원은 정부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추진을 찬성하는 이유로, ‘인구절벽으로 나라가 망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본 정책을 도입해야 하며, 홍콩과 싱가포르 등지에서 일하는 동남아 여성 가사노동자들이 한 달에 70~100 만원 남짓의 낮은 월급을 받고 있지만 불평하지 않고 일하니 괜찮다’는 논리를 펼쳤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제도는 저출산의 근본구조는 외면한 채, 국적·인종 차별과 노동 착취에 기반한 사적 돌봄에 불과하다는 반인권적 해법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비판해야 하는 책무를 가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 이러한 망언을 공식 회의석상에서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의 여성인권·성평등 정책 퇴행과 여성운동에 대한 탄압 기조 속 한국 사회 많은 여성들의 일상과 노동 현장은 더욱더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27년째 OECD 국가 중 꼴찌를 기록하고 있으며, 돌봄과 가사 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거나, 공원에서 강간 살해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고 존엄을 지키며 일상을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인권을 개선하고 실현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들이 자신의 책무를 완전히 방기하고 회의석상에서 이러한 망언과 궤변을 늘어놓음으로써 차별과 배제, 혐오의 논리를 재생산•강화하는데 앞장서며, CEDAW 독립보고서(안) 의결조차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을 우리 여성·인권단체들은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으로서의 역할을 철저히 망각하고 있는 김용원, 이충상 상임위원은 앞으로 공식석상에서 반인권적·반여성적 언행을 당장 중단해야 하며,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에 제출할 독립보고서를 조속히 통과시킬 것을 촉구한다.
2024년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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