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5일(금),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회원소모임 <페미니스트 아무말대잔치(이하 '페미말대잔치')> 3월 모임이 진행됐습니다. 이번 모임은 앎, 나타샤, 푸른나비, 유자, 미래, 이음 총 6명이 참여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 공간의 약속. 그리고 한 참여자 분께서 나눠 주신 천혜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유행 이후 처음으로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정기 모임이었는데요, 이번 모임도 예전과 같이, "이 공간에서의 약속"을 다 같이 읽으면서 시작하였습니다. 다 같이 속도를 맞추기로 하고 소리 내어 읽어가는 도중, 한 참여자 분께서 손을 드시며, 의미를 되새김 할 수 있도록 읽는 속도를 늦추면 좋겠다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다 같이 남은 "이 공간에서의 약속"을 천천히 읽고 나서, 자연스럽게 언어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각자 선호하는 읽기 속도가 모두 다르다는 것, 소리 내어 읽었을 때 느리기는 하지만 생각하면서 읽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 어릴 때 책 읽기를 좋아하다 성인이 되고 나서 책 읽기의 재미를 잃어버렸었지만, 오디오북과 전자책을 동시에 읽고 보는 형태의 독서인, 몰입형 독서(immersive reading)를 접하고 나서 다시 그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습니다.
지난주에 개봉하였던, 엠마 스톤이 주연배우로 참여한 영화 <가여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했는데요, 영화에서 성노동이 노동으로서 가지는 특성을 표현한 것, 벨라(엠마 스톤)가 만나는 남성들마다 벨라를 통제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이슈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넘어가는 것이 인상 깊은 영화였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오프라임 모임, 이야기하는 동안 배고프지 말라고 준비되어 있던 주전부리>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한 참여자 분께서, 회사의 불공정한 부분을 문의한 소비자에게, 되려 공론화하겠다고 협박하는 거냐고 되묻는 경우를 보았다고 공유해주시면서, 이렇게 잘못을 지적한 사람을 반대로 공격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하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다 같이 고민해보다가, 피해자의 반응에 대한 가해자의 반응이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앞선 회사의 사례처럼 "너 나 협박하는 거냐?"라고 하는 가해자부터, "오히려 네가 가해자고 내가 피해자야"와 같이 말하는 가해자처럼,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이러한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한 남을 공격하고, 잘못된 행동을 지적한 행위의 정당성을 지우려는 모습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비슷하게,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백래시(backlash)에서,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재생산 권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감정인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이들의 행동이 재생산이 가능한 수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함에도 불구하고, 논리성이 매우 떨어지는 주장에 어마어마한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참여자 분께서 책에서 "사람들은 이성으로 판단을 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이성과 감정이 둘 다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논리적 근거를 토대로 판단을 한다고 착각하지만 대부분은 판단을 먼저 한 후에 그에 맞는 논리적 근거를 만든다."라는 내용을 읽으셨던 것을 공유해 주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최근에 성인 ADHD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는 다른 참여자 분께서는, ADHD의 제일 큰 특징이 지나치게 행복하거나, 슬퍼지거나, 화가 나는 등 감정 조절에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ADHD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감정의 기능에 대해서 공유해 주셨습니다. 감정은 사람의 기억을 체계화하고, 사람의 행동에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등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감정이 제대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느끼는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이성적으로 분석해서 정제된 감정들로 분리하고, 그 다음으로는 자신의 본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파악하고, 마지막으로는 이 행동들에 정제된 감정들을 알맞은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감정 조절에는 여러 단계의 의식적인 과정들이 필요한데, 이런 과정들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ADHD를 가진 사람들은 생물학적인 뇌의 차이로 인해서 큰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감정 조절을 어려워한다는 것을 공유해 주셨습니다. 감정은 행동을 계속해서 지속시키는 동력원이 되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에 감정이 연결된 경우, 행동 자체를 중지하려고 하기보다, 먼저 행동에 연결된 감정을 파악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감정을 만들어 내는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여 해결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참여자 분께서 재료를 직접 챙겨와 초콜릿/커피 향 나는 칵테일을 만들어 주시기도!>
다음으로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목격하고, 신고를 고민하거나 신고했던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나타나는 데이트폭력에서부터, 거주하는 곳 근처에서 발생하는 가정폭력까지, 정말 일상의 모든 곳에서 폭력이 일어나는 상황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로 경험을 나누며, 다양한 사실들을 서로 배워갈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경찰에 폭력이 발생하는 상황을 신고하기 위해, 전화를 할 필요 없이 112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만 해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메시지의 내용에 폭력이 발생하는 장소를 구체적으로 알려드려야 한다고 합니다.) 또한, 거주하는 곳 근처에서 발생하는 가정폭력의 경우라도, 경찰이 신고자의 거주지를 방문해서 신고 행위를 확인하는 일이 없고, 모든 경찰 신고는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여 조사를 할 경우 신고 회수, 신고 내용 등을 모두 참고할 수 있어서 신고를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또한, 많이 신고가 된 집은 경찰에서 경고장을 보내기도 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가정폭력과 데이트폭력은, 사적인 공간과 관계 안에서 발생해서 외부로 알려지기 어렵다는 점,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될 수 있다는 점, 정신적인 지배와 금전적인 지배가 같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매우 심각하고 위험한 상처를 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책을 통해 처음으로 실제 가정폭력 사례를 알게 된 것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인투 더 와일드(In to the wild)"라는 실제 사건의 뒷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인투 더 와일드"는 1992년 9월 6일, 미국 알래스카의 버려진 차 안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야위고 동사한 채로 발견된 한 젊은 사람(24세의 크리스 매켄들리스)에 대해서, 존 크라카우어라는 산악인이자 작가가 깊은 궁금증을 가지고 조사하기 시작하며,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정리한 책 입니다. 책과 영화에는 가정폭력이란 말이 전혀 나오지 않았지만, 이는 의도적으로 저자가 동사한 채로 발견된 크리스와 같이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크리스의 여동생, 캐린 매켄들리스의 의견을 수용하여 적지 않은 것 이였습니다.
캐린 매켄들리스가 가정폭력과 관련된 내용을 넣지 않았던 이유는, 부모와 여전히 화해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성공하며 유명해지고, 부모가 "아들을 잃어서 너무 슬프시겠어요, 아들이 부모에게 큰 잘못을 했네요."와 같은 사람들의 말을 들어도, "우리는 아들을 너무 사랑했을 뿐인데" 와 같은 말로 답을 하며, 절대 자신들의 폭력에 대해서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캐린은 남은 것은 진실일 밝히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해서, "거친 진실 (the wild truth)"라는 자신과 크리스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하게 됩니다.
캐린은 자신의 책에서, 자신의 부모를 괴물로 묘사하고 싶은 목적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실수를 하는 사람으로 묘사를 하고 싶다고 말을 하며, 자신의 기록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실수를 만들지 않기를 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언급합니다. 자신이 부모가 되고 나서, 자신이 하려는 행동이 부모의 행동을 떠올리게 할 때마다, 항상 그 반대로 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하면서, 아이에게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이(unconditional love), 자신이 경험한 조건이 달린 사랑과 물질적인 풍요를 넘어서는 진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자신의 이야기를 끝내게 됩니다. 캐린 매켄들리스가 원하는 것처럼, 가정폭력이 발생하기 전, 미연에 방지해서 가정폭력이 없어진 세상을 빨리 이루고 싶습니다.
이번 모임도 너무 즐거웠고, 오프라인 모임이라 그런지 시간이 더 금방 가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 잘 지내시고, 다음 달에 건강한 모습으로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후기는 본 소모임 참여자 이음 님이 작성했습니다.>
<다 같이 건배!>
페미니스트 아무말대잔치는 매월 세 번째 금요일 오후 7시-10시, 온라인 화상회의 ZOOM으로 진행됩니다(오프라인 모임은 분기별 진행 예정이에요).
다음 모임은 2024년 4월 19일입니다. 신규 참여자 대환영!
이번 모임에서 언급된 작품 목록:
"가여운 것들" (영화), 링크: https://en.wikipedia.org/wiki/Poor_Things_(film)
"백래시: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 수전 팔루디 저/손희정 해제/황성원 역, 링크: https://www.yes24.com/Product/Goods/57615860
"스티프트: : 배신당한 남자들 ", 수전 팔루디 저, 링크: 알라딘: 북펀드 - https://www.aladin.co.kr/m/bookfund/view.aspx?pid=2067
"몰락의 시간", 문상철 저, 링크: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3765592
"여성 ADHD:투명소녀에서 번아웃여인으로", LOTTA BORG SKOGLUND , 링크: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0470590
"인투 더 와일드", 존 크라카우어 저, 링크: https://www.yes24.com/Product/Goods/4368859
"<인투 더 와일드> 뒤의 거친 진실", 캐린 매켄들리스(크리스 매켄들리스의 여동생)/존 크라카우어 서문, 링크: https://www.audible.com/pd/The-Wild-Truth-Audiobook/B00O7YA2F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