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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듣자, 온 몸과 마음으로 - 제15회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발화> 참여후기
  • 2024-11-27
  • 205



ⓒ 2024. 혜영


2024년 11월 23일(토) 오후 2시, 제 15회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발화>가 서교스퀘어에서 개최되었다. 총 여섯 분의 말하기 참여자께서 이끔이로서 멋진 발화를 들려주셨다.


약 세 시간에 걸쳐 진행된 말하기 내내 수많은 감정이 지나갔다. 분노, 슬픔, 고통, 다시 분노… 생존자분들이 겪어야 했던 상처와 고통을 말하실 땐 이가 악 깨물리고 손톱 자국이 나도록 주먹이 쥐어졌다. 그 아프고 힘든 시간을 지나 생존자로서 무대에 서주셔서 감사했고, 그 과정에서 필요했을 엄청난 용기와 강인함이 멋있었다. 무엇보다 그 시간들을 버텨낸 것만으로 너무 훌륭하다고, 고생하셨다고 전해드리고 싶었다.


우리 인간은, 모두 너무나도 다른 제각각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 인간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다. 그 공감이 조각 조각 파편화 되어있는 개개인의 삶을 이어주고 서로의 외로운 마음에까지 가닿게 하는 것이다.


항상 생존자분들께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도움이 될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를 통해 그 마음 자체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끔이들이 발화 도중 하나 같이 강조하셨던 부분 중 하나는, 피해 고백 이후 세상으로부터 받은 2차 가해의 아픔과 따뜻한 말에 대한 갈망이다. 세상의 냉담한 시선, 조롱의 말들은 피해자를 더욱 힘들게 하고 그들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울타리가 된다. 이 옥죄어 오는 울타리 속에서 피해자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계속 자책하고, 숨고, 스스로를 미워하고 망가뜨리게 되는 것이다. 성폭력생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시선과 말, 지지와 연대라는 한 이끔이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대회 중간 중간 모두가 한 목소리로 외쳤던 말이 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넌 잘못한 게 없어. 우리가 항상 네 곁에 있어.”


ⓒ 2024. 혜영


이끔이들의 말하기가 끝난 후, 응답이들의 발화가 이어졌다. 말하기와 듣기의 힘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끔이들의 발화 때도 그러했듯이 분노에서 터져나온 탄성, 괴로움을 쏟아내는 울음이 온 극장 안에 가득했다. 그러나 동시에, ‘치유’의 온기가 퍼져나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대회를 참관하길 너무 잘했다고, 이끔이와 한국성폭력상담소 측에 온몸으로 흐느끼면서 고마움을 전하는 응답이의 목소리에서 공감의 힘을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아픔을 고백했을 때, 그 아픔을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듣고 공감해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치유를 얻을 수 있다. 듣자. 귀로 듣고, 눈으로 듣고, 마음으로 듣자.


대회장 로비에는 생존자가 보내는 엽서를 전시해놓은 공간과 더불어 생존자에게 지지의 목소리를 담은 포스트잇 혹은 엽서를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이 엽서에 썼던 글을 다시 한 번 적어보며 후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안녕하세요, 종로구에 사는 누군가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가을만 되면 은행잎이 아름다운 걸로 유명한데요, 올해도 여지없이 은행잎이 온 동네를 뒤덮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앞날에 그 은행잎 같이 곱고 따뜻한 빛깔의 기억들만이, 그다지도 수북하게 쌓이길 바랍니다.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합니다. 진심으로요. 여러분 곁에도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여러분이 보지 못하는 곳에도 여러분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미지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 2024. 혜영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자원활동가 은경 님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