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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개소이래 2010년 12월 31일까지 본 상담소에 접수된 상담은 총 44,303건(66,868회)이며, 2010년은 전체상담 2,227회(1,474건)중 성폭력상담이 총 2,054회(1,312건), 기타상담 총 173회(162건)이다. 전체상담 중 성폭력 상담비율은 1991년 66.5%에서 시작하여 20년 동안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이며 2010년에는 전체상담의 89%를 차지하고 있다.

 

 

 

2. 2010년 성폭력상담의 동향

 

 

 

1. 성인여성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지원책에도 눈을 돌려야

 

2010년의 피해자 성별·연령별 상담현황을 살펴보면 성인여성이 피해를 입은 성폭력 상담건수가 전체 성폭력 상담건수 1,312건 중 837건(63.8%)이다. 2008년 성폭력 상담건수 1,948건 중 1226건(62.9%), 2009년 성폭력 상담건수 1,430 중 229건(63.1%)과 같이 매년 60% 이상의 성폭력 범죄가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에도 2010년 한 해 동안 국가의 관심과 자원은 특정 아동성폭력으로 몰렸다. 2010년 개정된 성폭력 관련법만 보더라도 반성폭력 운동진영에서 오랫동안 문제제기를 해 왔던 음주에 의한 감경사유배제나 형사사법절자에서의 피해자 권리 및 보호방안등을 대폭 포용하고 있으나 이를 아동성폭력피해에만 한정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술과정에서부터 고소, 의료지원과 심리지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해바라기 센터나 원스톱 지원센터 뿐 아니라 성폭력전담수사반의 경우에도 성인성폭력 보다는 청소년·아동성폭력에 더 주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성폭력 피해자가 ‘힘없고 약하며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통념은 아동을 성인보다 더 중요한 보호의 대상으로 보게 한다. 가해자와 맞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성인여성은 상대적으로 피해자의 권리를 주장하기 힘들다. 실제로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지원하는 성폭력사건들 중에는 피해자가 보호 받을 만한 지 여부가 중요시 되는 사례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법정에서 증인으로 나선 성인 피해자에게 이전 성경험에 대해 물어보거나 심지어는 학벌, 사유재산정도, 부모님의 직업을 물어 본 경우도 있으며, 데이트 성폭력과 같이 가해자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성폭력은 수사과정 내내 고소 동기를 의심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무성적인 존재로 대우받는 아동피해자의 경우 성인여성피해자의 사례처럼 성적 의도나 평소 행실에 대해 묻지 않는다.

아동성폭력에 대한 국가의 관심이 제도의 정비로 이어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유독 성인여성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지원책만은 미비한 것이 아쉽다. 성폭력 피해자가 힘없고 나약한 존재일 것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나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성인여성피해자들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2. 낙태권, 쟁점의 한가운데 여성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나

 

2010년 한 해 동안 낙태와 관련된 상담이 크게 늘었다. 2009년 8건에 불과하던 낙태상담이 2010년 78건으로 훌쩍 뛴 것이다. 78건의 낙태관련 상담일지에는 성폭력이나 기타사유에 의한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의 안타까움과 절망이 구구절절이 묻어있다. 현재 국가는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 등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 관해서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은 어쩔 수 없는 ‘피해’이기 때문에 낙태가 허용되지만, 그렇지 않은 기타 사유에는 낙태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실제 임신상태에 놓여 있는 여성, 그리고 앞으로 가임가능성이 있는 여성에게도 공감 받을 수 있을까?

피임을 제대로 해도 임신이 되지 않을 확률을 백퍼센트 장담할 수는 없다. 또한 여성이 경제적인 문제를 감내하고 출산을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비혼여성에게는 편견이라는 문턱이 높게 자리하고 있다. 더군다나 임신·출산·양육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여성에게 지워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법낙태 단속이후 훌쩍 뛰어버린 낙태수술의 비용부담은 고스란히 출산을 선택하기 어려운 청소년, 비혼 여성,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여성들에게 전가 되었다. 청소년이 임신한 사실을 알고 상대방의 부모에게 알렸으나 낙태비용을 지불하기를 거부하여 상담소에 구조를 요청한 사례, 불법낙태 단속으로 임신중절이 어렵게 되자 한국성폭력상담소에 경제적 상황을 호소하며 성폭력사건은 아니지만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알려달라고 요청한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낙태를 생명에 대한 경시나 무책임한 태도의 결과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낙태권에 대한 문제는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을 하게 된 여성에게도 중요하다. 주목할 것은 기타사유에 의한 낙태관련 상담 회수가 많아질 때 성폭력에 의한 낙태관련 상담 비율도 덩달아 높아진다는 점이다.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의식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정작 피해자가 체감하는 편견의 벽은 아직도 높다. 그래서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은 합법적이고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합법낙태보다는 차라리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들지만 기록이 남지 않는 불법낙태를 선택해왔다. 그러나 대대적인 불법낙태 단속이 시작되자 성폭력으로 인해 임신한 피해자들은 피해사실을 숨기기 위해 대안적으로 불법낙태를 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더군다나 한 상담 사례에서는 성폭력으로 인해 임신이 되었다는 것을 안 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합법낙태를 하기 위해서 산부인과를 찾아갔을 때도 성폭력 사실을 입증할 수 있어야지만 시술을 해주겠다는 답변을 받고 시술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상담소에서는 2월 1건, 5월 1건의 사례에서 의료기관에 제출하는 성폭력상담 사실 확인서를 발급하기도 하였다. 임신이 진행되는 동안 하루하루가 버거울 여성의 호소보다는 낙태시술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공인된 보증서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 이다. 여성들에게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스스로 계획하고 최선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된 것이다.

여전히 ‘정조’ 중심의 사고방식은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에 관해서 ‘만’ 낙태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낳는다. 임신이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보호해주어야 할 상황과 보호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나누어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상황을 일률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공공연히 불법낙태를 눈감아주고 앞장서 피임을 장려하던 국가가 출산율 저하로 때 아닌 불법낙태단속에 열을 올리는 동안, 정작 쟁점의 한가운데 서 있는 여성의 목소리는 묵살되고 있다. 여성이 처한 상황과 각각의 이야기를 담지 못한 채 여성의 임신·출산에 대한 권리를 국가가 제한하고 통제하겠다는 움직임은 더 큰 사회적 후유증을 양산해낼 뿐이다.

 

 

3. 성폭력 관련법의 근본적인 맹점인 친고죄부터 바뀌어야

 

성폭력은 5대 강력범죄 중 하나로 가해자에 대해서도 엄중히 처벌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가해자의 인권문제에도 불구하고 전자발찌 소급적용, 성범죄자에 대한 약물치료요법에 관한 법 등 강력한 처벌 위주의 법안이 발의되었다. 그러나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상담사례들을 살펴보면 가해자에 대한 강력 처벌책이 피해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드러내고 고소를 결심하여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내기까지에는 많은 난관이 존재한다. 그 사이 많은 가해자들이 법의 테두리 밖으로 빠져나가 실제 처벌을 받게 되는 사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결국 국가에서 아무리 강력 처벌책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이는 일부 가해자들에게만 적용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상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대안으로 강력처벌을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가해자의 재범을 방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성폭력 관련법의 근본적인 맹점인 친고죄부터 짚어보아야 한다.

친고죄의 취지는 피해자의 명예와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런 발상은 ‘성폭력 피해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며 피해사실이 밝혀지면 피해자의 명예가 실추 된다’라는 통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친고죄는 합의만 하면 형사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해자가 합의를 종용하도록 하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형사를 계속해서 진행할지에 대한 고민을 떠안게 된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가해자의 딱한 입장을 생각해 달라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몰리는 것이다.

합의에 대한 압력은 수사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경찰 고소 후 대질 심문 중 피해자와 가해자를 한 공간에 남겨둔 채 ‘원만히 화해하고 합의해라’라고 합의를 종용한 사례나 피해자와 함께 동행한 사건지원자에게 ‘고소장 접수하기 전에 경찰관과 상의를 해라, 가해자도 피해자도 젊고 한창인데 아깝다’라고 충고한 사례, ‘가해자가 나이도 50이 넘고 한참 어르신인데 이런 것 가지고 처벌받게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고 피해자를 다그친 사례 등이 있다. 최근 성폭력이 이슈화됨에 따라 성폭력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수사 방침들을 재정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성폭력범죄의 비친고죄화 이전에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워 보인다.

합의를 종용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상정보가 유출되거나 사생활 침해 문제도 심각하다. 가해자의 가족들이 피해자의 직장으로 찾아와 고용주에게 피해사실을 공공연히 말하여 피해자가 직장을 그만두게 되거나 피해자의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합의를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하며 피해사실을 퍼트리는 등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친고죄의 목적이 피해자의 명예와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에 무리가 따른다.

성폭력범죄 중 강간치상 죄 등 일부만을 비친고죄로 두고 있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친고죄를 유지하는 명분이 피해자의 ‘명예와 사생활 보호’라면 불법의 정도가 높은 성폭력 범죄는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필요 없기 때문에 비 친고죄로 한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국가가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가 정당한 죄 값을 치르도록 처벌 하는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함으로서 피해자를 보호하겠다는 생각은 직무유기이다. 성폭력을 예방하고 수사기간 중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서 성폭력범죄의 비 친고죄화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것이다.

 

 

4. 일상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젠더 감수성 향상에 힘써야

 

지난 2010년 한해 유아 성폭력을 비롯하여 다양한 성범죄가 언론에서 이슈화되었지만, 여전히 성폭력이 낯선 ‘사이코 패스’에 의해 자행되며, 일상에서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편견이 존재한다. 이러한 편견을 전제로 삼을 때, 성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은 궁극적으로 단 하나, 즉 사이코 패스들을 강력하게 처벌하고 이들을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뿐이다. 일명 화학적 거세 근거 법 제정, 전자발찌 시행 대상 확대와 같은 정책은 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표8. 피해연령별 피해자와 가해자와의 관계>에서도 나타나듯 모르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은 전체 1,312건의 성폭력상담 중 151건인 11.5%밖에 되지 않는다. 성인의 경우 직장에서, 청소년의 경우는 학교에서, 어린이와 유아의 경우는 친족이나 친·인척으로부터 대부분의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은 많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늘 관계를 맺고 살며, 한 공동체 안에 속해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피해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보호와 가해자에 대한 과도한 처벌에 우려를 표시하는 것은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우리가 항상 마주하는 사회구성원이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극단적이고 대증적인 처벌 정책에만 관심을 모을 것이 아니라 성폭력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더 이상 만들어 내지 않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가정, 학교, 지역 사회 내에서 젠더 감수성을 향상하고 인간관계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장기적 교육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직장, 학교, 가정 등의 공동체에서는 먼저 성폭력피해자를 돕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논의하며 성폭력 발생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여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