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지원
폴짝기금은 열림터를 퇴소한 생존자('또우리')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기금입니다.
올해는 12명의 또우리가 프로젝트에 함께 하고 있어요.
자립의 과정에서 마주하는 경험과 변화하는 마음을 담은 또우리들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 여덟 번째 인터뷰는 사라입니다.
2024 또우리폴짝기금 인터뷰⑧ - 이유 없이 하고 싶은게 있다면, 해야겠다!
👩🌾은희: 작성해주신 자립 생활/자립 준비 계획을 잘 살펴보았어요.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많으시고 화실을 준비하는 것으로 계획하셨네요. 다른 일상은 어떠세요?
👩🎨사라: 처음 퇴소하고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영원히 혼자 살 줄 알았는데 어쩌다 우연히 지금의 반려자를 만나게 되었어요. 저랑 성향이 비슷하고 비슷하지만 다른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가끔 일을 끝내고 술 한잔 하면서 서로의 과거에 대해 주절주절 얘기를 해요. 취중진담 처럼요. 각자의 고통스럽던 과거를 그저 묵묵히 듣고 내 얘기를 쉼 없이 하는 그 시간이 참 좋아요. 대부분 사람들은 저의 얘기를 알게 되면 부담스러워 했는데 현재의 반려자는 너에게 있었던 일들이 내가 너를 만나고 사랑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던 사람이에요. 너무 감동이었어요. 반려자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제일 좋고 여전히 설레는 시간이에요.
👩🌾은희: 너무 훌륭하고 멋진 반려자를 만났군요. 함께하고 있지만 여전히 설레고 둘이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니 축하드립니다.
👩🎨사라: 지금 다른 가족으로는 키우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 강아지 한 마리가 있어요. 고양이는 반려자가 데려왔고 강아지는 함께 데려왔어요. 다른 종이라 정말 키우기 힘들어요. 혹시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시다면 좀 더 고려해 보세요. 힘들어요..! 그 외의 일상은 거의 반복이에요. 특별할 게 없는 일상이지만 그 어느 순간보다 마음이 제일 편안해요. 늘 긴장과 눈치에 싸우며 살아왔는데 그런 걸 안 해도 된다니! 반려자도 저처럼 지금이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순간이라고 해요. 이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둘 다 열심히 일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은희: 긴장하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또 서로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 그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어요.
👩🎨사라: 저희 올해 9월에 결혼식을 하게 됐어요. 낯 간지러운 "신부님" 호칭을 들을 때마다 가끔 현실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민망해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결혼 준비 너무너무 힘들어요.. 얼른 끝내고 쉬고 싶습니다..
👩🌾은희: 축하드립니다. 꼭 초대해 주세요. 그럼 두 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열림터를 퇴소한 다음 자립하며 좋았던 점과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사라: 좋았던 점.. 글세요. 솔직히 좋은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너무 힘든 시간이었어요. 제가 잘못해서 나갔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힘든 시간이었고 결국 집에서 쫒겨났어요. 그때 갈 곳이 없어 집 근처의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는데 그렇게 따뜻하고 맛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울고 있는데 주인 할머니가 왜 우냐고 달래주시던 생각이 아직도 나요. 지금이 있기까지 정말 많이 고생했어요. 숙식이 제공되는 곳에서 일하기도 했고, 남의 집에 얹혀살면서 지내기도 했어요. 어차피 인생은 혼자라며 묵묵하게 외로움을 견디며 지냈습니다. 따스한 집과 맛있는 밥, 나를 돌봐주는 선생님이 있던 열림터가 그리울 때가 많았어요. 같이 살던 언니, 동생, 친구들과 맨날 사고치고 그래서 선생님들이 많이 힘드셨을 거예요. 그래도 전 그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그늘 밖 사회로 던져지니 너무 어렵고 모르는 것 투성이더라고요. 과거로 돌아간다면 사고 안 치고 얌전히 열림터에서 완 퇴소를 할 것 같아요.
👩🌾은희: 많은 또우리들이 그렇게 얘기를 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다시 그날이 오면 또 버티지 못하고 나갔을 거라고 하기도 해요.
👩🎨사라: 맞아요. 이제 세상이 힘들다는 것은 아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그때 내가 배부른 소리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은희: 요즘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이것일까요? 하고 싶은 다른 후보가 있었을까요? 이걸 고른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라: 계획서에 적은 미술 말고 하고 싶은 것 진짜 많았어요. 여행도 가고 싶고, 내 삶의 이유 중 하나인 반려동물 건강검진도 필요했고, 바빠서 못했던 쇼핑도 있었어요. 근데 "여행이 가고 싶은 이유가 있어?"라고 했을 때 "응. 나는 요즘 힐링이 필요해. 놀고 싶어." 처럼 다른 하고 싶은 것엔 이유가 붙었는데 이상하게 미술을 하고 싶은 이유를 물어본다면 "그냥."이라고 밖에 답이 안 나왔어요. 그냥 하고 싶어서. 그냥 난 원래 좋아했잖아? 그래서 미술로 골랐어요. 이유 없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해야겠다 싶어서요. 살면서 이유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될 순간이 얼마나 있겠어요? 그래서 골랐습니다.
👩🌾은희: 멋져요. 또우리폴짝기금 사용 용도로 최고인 것 같아요. 사라가 본능적으로 원하는 것을 하면서 자신을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은 너무 필요하잖아요. 멋진 공간, 시간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기금 액수가 많지 않아 시작하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할거예요. 저희도 좀 아쉽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라: 그렇긴 해요. 하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계속 미루면서 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마중물이 되어주는 것도 큰 의미가 있어요.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은희: 저희도 감사해요. 다음 질문입니다. 시설을 퇴소한 성폭력피해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개인적인 요소도 괜찮고, 사회가 갖추었으면 하는 시스템을 제안해 주셔도 괜찮아요.
👩🎨사라: LH처럼 국민주거주택이 성폭력피해자들에게 단독으로 주어졌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 때는 없었거든요. 의식주 중에 제일 크고 중요한 주거 공간이 제대로 제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불명예스럽게 퇴소한 퇴소자에게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살면서 살 집 하나 없다는 게 사람을 구렁텅이로 빠지게 하는 것 같아요. 지금 저는 괜찮지만 과거의 저는 괜찮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월에 생존지원금을 소규모라도 좋으니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은희: 불명예스러운 퇴소자라니요. 당시에는 다 힘든 시간이기에 잘 준비해서 퇴소하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처음엔 서로 마음이 상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추억이 되기도 하고.. 사전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인터뷰하시면서 어떠셨어요. 힘들진 않았어요?
👩🎨사라: 좋았어요. 신났어요. 인터뷰가 아니라 하고 싶은 얘기를 맘껏 하는 시간이었어요. 제 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잖아요.
👩🌾은희: 오늘 인터뷰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요?
👩🎨사라: 활력입니다. 이곳에 와서 제 얘기를 신나게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활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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