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림터
  • 울림
  • 울림
  • 열림터
  • ENGLISH

공지/소식지

나를 돌보는 음식 : 카레
  • 2021-08-24
  • 434

나눔터 88호 I 돌고래

돌고래가 또우리폴짝기금으로 마련한 태블릿으로 그린 하루키친 ©돌고래

어쩌다 알게 됐을까
우연히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받았던가. 
종종 피드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다가 음식들이 맛있어보였고
사장님이 혼자 한다는 걸 알았을까
이 식당에 관심이 갔다.

매번 출근하기 전에 가고 싶어하다가
줌으로 하는 자기계발코스를 하고 어느 기분이 좋은 주말에
점심을 먹으러 갔었다.

가게에는 20대로 보이는 커플이 있었다.
사실 난 다른 테이블에 있었던 것 뿐이었지만,혼자 설레고 기분이 좋기도 했다.
‘좋을 때다~’

그 날 시켰던 카레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새우가 들어갔던 것 같고, 
카레와 밥을 리필 해주시겠다고 했고,
카레가 맛있다고 기억에 남았다.

그냥 일반적으로 먹던 노란 카레 가루나, 일본 카레 가루도 아닌 독특하고 깊고 진짜의 맛이었다.

아쉬운 건, 요즘 들어 위장이 많이 늘어난 나의 배에 조금 아쉬운 재료의 양이었다.
그래도 카레가 맛있었기 때문에 불평을 할 수가 없었다.
상큼한 양배추 피클도 맛있었다.

그렇게 맛있는 카레를 맛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자기계발코스를 이어갔고, 며칠이 지났다.

나는 20대 후반부터는 정말 혼자 살았던 것 같다.
그 전에는 같이 밥을 해 먹는 친구들이 같이 있기도 했었는데, 그 이후로는 내 식사는 내가 책임져야 했다. 평생 안 했던 일을 해보려니 너무 힘들었다. (어렸을 때, 학생일 때 나는 요리를 해본적이 없다.  엄마랑 동생들이랑 같이 도넛이나 만들어봤을 뿐.. 이 때 나는 내가 아이를 낳으면 어렸을 때부터 같이 요리도 하고 스스로 할 수 있게 많은걸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사려면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

요리를 시도할 때마다 느꼈다.
밥을 해먹는다는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요리를 잘 하는 친구들이 존경스럽기도 했다.
약간 다른 종자같아 보이기도 했다.

밥을 스스로 해먹으려면 준비해야할 것들이 많다.

1. 식재료 준비
2. 레시피 찾기
3. 요리하기
4. 식탁 차리기
5. 맛있게 먹기 + 인스타 업로드
6. 소화시키기
7. 설거지하기

이렇게 소소하게만 써도 7단계다. 

최근 1년~2년 안에는 소소하게 조리기구를 장만했다.
전자레인지, 에어프라이어, 믹서기.
근데 착즙기도 사고 싶고, 미니오븐도 괜히 사고 싶고, 요리도 장비빨 욕심이 생긴다는 걸 몸소 경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카레가 먹고 싶어졌다. 
그날도 어떤 자기계발코스를 줌으로 참가하던 주말이었던 것 같다.
점심시간에 맛있는 카레가 너무 먹고 싶었다.
건더기 양에 살짝 아쉬워했지만, 그 카레 맛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혼자 맘속으로 조용히 용서를 해준 다음,(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로 하고(음?) 다른 메뉴를 시도해보자며 가게로 향했다.( ^^)

그 날은 무슨 ‘치킨 버터 카레’이런걸 먹었던 것 같다.
치킨살이 부드러운게 너무 맛있었고,
카레 국물(?) 맛이 예술이었다.
나는 밥보다는 건더기랑 카레를 좋아하는 편인데, 
계속 먹다보니 밥은 여전히 많고 카레가 많이 남아있었다.

사장님은 접시를 보시고는 카레를 더 주실 수 있다고 하셔서 좋다고하고 먹었다.
(사장님이 챙겨주시는 게 좋았다.)
역시 카레가 예술이었다.

주방 한쪽으로 보이는 덱에 카레 가루통으로 보이는 통들이 잔뜩보였다.
솔직히 그통이 어떤 종류인지 적힌 글자는 못봤지만, 다양한 향신료이거나 카레가루(카레도 향신료이던가..?) 같아보였고, 그래서 주인분이 카레 고수로 보였다. 

그리고 여자분이 혼자 가게를 운영하고 계신게 멋있어보였고, 왠지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는 데, 카레 키트가 광고 종이가 세워져있는 걸 봤다.
얼만지, 몇인분인지, 어떻게 요리하는 건지, 여쭤보고, 다음날(일요일이었음)도 오픈하는지 여쭤봤다.
내일은 휴일이라고 하셨다.

‘헉, 나는 내일도 먹을게 필요하지.’ (냉장고에 마땅한 재료가 없었다. )

고민하다가 카레 키트를 샀다. 
키트는 코코넛밀크, 사장님이 야채와 토마토를 넣고 정성껏 끓인 퓨레(? 적절한 단어를 모르겠다..), 카레 가루 + 매콤한 이름모를 가루 + 통후추, 오레가노(무슨 초록잎인데 뭔지 모름)+ 카레 마지막에 뿌려먹는 후레이크로 구성이 되어 있다.

©돌고래

돌아오면서 행복한 고민을 했다. 
‘무슨 재료를 넣을까?’

순간 떠오른 재료가, 애호박, 브로콜리, 새우다.
애호박은 원래 좋아하고,
브로콜리는 예전에는 싫어했다가 좋아하게 됐지만 딱히 먹기가 힘들어서 이번에 넣어먹으면 맛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브로콜리는 카레랑 너무 잘 어울리니까!
그리고 냉동 새우!!
지금의 하우스 메이트에게 전수받은 요리 재료다.
(쿠팡에서 냉동으로 사서 손질해서 먹는 중이다.)

나중에 또 키트를 사서 요리를 해봤지만, 
재료가 너무 많으면 맛이 없다.
아님 어쩌면 내가 두부를 넣어서 그런걸까..

애호박, 브로콜리, 새우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코코넛 밀크가 들어가서 그런지 카레의 풍미도 좋았고,
키트로 요리해서 그런지 조리법도 간단했다.

종종 요리할 때 모든 요리는 라면을 끓이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물을 올리고,
주재료 라면을 준비하고, 
부재료로 파나 계란을 준비해서
함께 끓이고,
맛있게 끓으면
그릇에 담아서 먹으면 된다. 

©돌고래

물론 더 복잡하게 여겨지는 요리들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조리과정이 쉬운 것 같기도 하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외로워지고 안좋아진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집에 있을 시간도 많아져서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것 같다.
요리는 어떻게 생각하면 복잡하고 어렵고, 어떻게 생각하면 간단하고 뿌듯하다.
요리를 해서 먹을 때는 뿌듯하다.
괜시리 즐겁기도 하다.

온 세계가 혼란스럽고, 단절을 경험하기도 하고, 변화가 급격한 요즘에
카레 한 그릇으로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고 건강한 영양소를 공급해주면 어떨까?

누구보다도 우리가 스스로를 건강하게 돌볼 수 있는 힘을 가지길 바라게 되는 요즘이다.

©돌고래

🌿

<열림터 다이어리>는 연 2회(1월, 7월) 발간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회원소식지 [나눔터]를 통해서
생존자의 고유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 마련된 코너입니다.
따라서 교정·교열 외의 편집은 최소화하고 있으며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다른 글과 관점도 논점도 조금 다를 수 있음을 안내드립니다.
책자 형태의 [나눔터]를 직접 받아보고 싶으시다면 [👏후원으로 함께하기]를 클릭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