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소식지
D야. 끝도 없이 내리는 비에 이 세상 가난한 삶들이 염려되는 날이다. 요즘 들어 부쩍 우울해 보이는 너와 긴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하필 오늘 너는 열림터 다른 친구와 싸우고 펑펑 울더니 방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는구나. 직장일과 수능 공부를 병행하기 시작한 지 어언 두 달, 생각했던 것만큼 어느 하나 쉽지가 않고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지?
3개월 전,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 생각난다. 네 방에 들어가니 너는 바이올린으로 여인의 향기 OST를 멋지게 연주해 주었지. 서툰 솜씨였지만, 한 눈에 네가 재능 많은 친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그때 나는 무척 긴장하고 있었는데 혹시 느껴졌니? 후후~ 열림터 야간활동가는 복지사인지 활동가인지, 늘 정체성 갈등이 끊이지 않는 외로운 자리이고 그래서 열림터 숙직방 창문이 더 커보였다는 전직 활동가의 말에 사실 자신감보다는 두려움을 더 크게 안고 시작한 일이었지. 얼마나 확신이 없었으면 이력서 내기 전에 난생 처음으로 사주팔자까지 봤다니까... 같이 사는 친구에게 ‘이 일의 좋은 점 리스트’를 적어 건네며, 내가 이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할 때 그 리스트를 보여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나선 첫 출근 날.
D야. 우리는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그 즈음 너는 열림터라는 공동체의 규칙에서 자유로워지려했고, 네가 압박으로 느끼는 말이나 행동을 대할 때마다 가해자인 아빠가 통제하려는 것 같다며 불편해했지. 활동가들은 그런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가 조심스럽기도 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통제가 없으면 불안하고 무언가 성취할 수 없을 것만 같다고 걱정하는 너를 보면서 가해자가 너의 삶에 드리운 그림자가 얼마나 깊은지, 나는 소리 없이 얼마나 분노했던지... 너를 계속 통제하다가 네가 성인이 되어 그 틀을 벗어나려고 하자 모든 지원을 끊어버리며 그걸 무기 삼아 또다시 너를 통제하려고 했던 ‘가족’이라는 이름의 가해자.
4월 어느 날이었던가, 넌 엄마랑 1년 만에 통화를 하게 되었지. 엄마 보고 싶다며 엉엉 울다가 내가 당할 때 엄마는 왜 날 보호해주지 않았냐고 따지자, 엄마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가해자를 두둔했지. 그날 너는 통곡을 하며 울었다. 엄마와의 관계 때문인지 너는 여자들은 다 널 질투하거나 싫어할 거라고 생각해 왔다며 여자들에 둘러싸여 사는 게 낯설다고 남자가 그립다고 했었어.
그렇게 많은 얘기를 나누며 잘 지내던 5월의 어느 날. 수능 지원 문제로 얘기를 나누다 네가 “선생님들이 내 인생의 방해물 같다”고 했을 때 허걱, 나는 놀랐고 내가 존중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흐르더라. 네가 뱉은 말의 무게감과 내가 받아들인 말의 무게감이 달랐기에 며칠 동안 널 보는 것이 힘들 정도로 그 말을 소화하기 쉽지 않았지. 다음 날 귀가 시간을 넘겨 들어와서 별로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벌칙 적으면 끝 아니에요? 선생님이 걱정하는 것까지 신경쓰기 귀찮아요.”하는 너에게 결국 나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화를 내고야 말았지.
D야. 그렇게 너와 내가 냉랭했던 며칠간, 이 야간활동가라는 직책이 열림터 식구들과 거리를 둘 새 없이 매일 부대껴야 해서 참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보니, 너 또한 야간선생님과 냉랭하다는 게 얼마나 불편할지...가족과 단절한 아픔을 가지고 맘 편히 쉴 공간 없는 너에게 열림터는 어떤 공간이어야 할까.
참, 벌칙 적으면 끝 아니냐는 너의 발언은 규칙과 벌칙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현재 규칙의 수위는 적절한지, 활동가들의 논의에 불을 붙였단다. (그러고 보면 넌 정말 활동가들에게 많은 고민꺼리를 던져주는 고민제조기!)
D야. 너는 많은 자원을 가졌고 네가 가진 자원을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또 너는 아무리 싸우고 관계가 틀어진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장점을 인정하는 줄 아는 사람이지.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너의 기질을 두고 어떤 동료는 나와 닮았다고 하더구나. 하지만 네 방에 붙어있는 전지에 깨알같이 적혀있는 너의 포부, 지금부터 다시 수능 공부를 해서 한의대에 들어가고 그 등록금을 내려면 8천만원의 빚이 생기고 돈을 벌어서 그 빚을 몇 살까지 다 갚을 수 있는지, 나라면 감히 꿈꿀 수 없는 그런 미래계획을 꿈꾸고 계획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너다. 그런 너의 에너지를 쳐내고 제한하는 방식이 아니라,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집중시키려면 어느 시기에 어떤 지원이 적절할지 고민이 깊단다.
그러고 보니 D야. ‘상처입은 한 마리 새’처럼 힘없고 날개처진 모습으로 열림터에 왔던 네가 이제는 활동가들에게 도전적으로 문제제기하는 것을 보면 네 마음의 힘이 많이 자란 것 같아 고맙고 기쁘다.(물론 서운할 때도 있어!) 어제의 너와 오늘의 너는 비슷해 보이지만, 1년 전의 너와 지금의 너는 많이 다르다는 것 아니? 그 사실은 열림터 활동가들이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큰 동력이기도 하다.
요새 나는 열림터가 다가올 새로운 3년을 어떤 마음으로 맞아야 할지 고민이 많다. 그동안 안정적인 운영에 적지 않은 시간을 들인 만큼 이제는 더 풍성해져야 할 텐데 말이지. 여성주의 운영철학을 견지하면서 생활인들의 의견을 더 많이 반영할 수 있는 열림터,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열려있는 열림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쿠, 머릿속이 복잡하다.
아...이제 와 돌이켜보니 지난 3개월간, 나에게 와서 나를 안고 나에게 너희의 얘기를 해 주고, 나에게 짜증을 내고 잠 못 들게 하고 말을 안 들어서 나를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고... 그러고 나서 또다시 웃어준 너희, 나를 희노애락의 바다에서 넘실대게 해 준 너희가 있었기에 내가 이 세상에서 또 한 계절을 살 수 있었네. 정말 그러네...
D야. 우리는 앞으로도 새털같이 많은 날들을 함께 보내야 한다. 우리는 또 싸울 수도 있겠지. 사람의 문제이기에 정답이 없고, 나는 또 후회하고 답답해하며 숙직 방문을 잠그고 긴 한숨을 쉬거나(매일 나의 한숨을 받아주는 고마운 숙직방!) “It's not about me."를 만트라처럼 외워야 할 때도 있겠지. 우리, 서로를 포기하지 말고 우리의 삶에 주어진 과제들을 함께 풀어나가며 또 지지고 볶아보자꾸나. 그게 바로 변증법적 관계(사람과 사람이 만나가는 모든 과정의 총체!) 아니겠니?
2011년 여름 숙직 방에서, 나랑